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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내 마음의 삼천사.. 미국 태고사 2

LA에는 이미 가을 기운이 오고 있었으니 아무리 덥기로 악명높은 모하비나 테하차피도 이젠 가을 기운이 조금은 왔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모하비와 테하차피는 찜통이었다. 화씨 98도, 섭씨 37도의 기온이다. 덥다라기보다는 뜨겁다라고 느끼기 시작하는 온도다.
 
(영어 좀 한다는 사람 '뫄제이브'라고 읽으려 들겠지만 이거 '모하비'라고 읽는다)
 
모하비 사막에서 테하차피로 갈라지는 곳엔 이상한 곳이 하나 있다. 처음엔 난 이게 에드워드 공군기지인줄 알았다. Edward AFB라는 표지판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아니다. 에드워드 공군기지는 조금 더 가야 있단다. 그럼 공항인가? 공항도 아니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공군기지도 아니고 공항도 아닌데 왜 비행기들이 잔뜩 있느냔 말이다.

알고보니 중고 비행기 매매시장이었다. 퇴역한 크고 작은 중고 비행기 수백대가 이곳에 널부러져 있다. 가끔가다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있는데 아마 Test Drive인 모양이다. 중고 비행기 매매시장이 있는 나라, 미국이구나.. 싶다.


미국 서부의 사막지역엔 어디나 어김없이 대가리가 뭉텅뭉텅 잘려나간 듯 보이는 이런 나무들이 있다. 이게 자슈아 트리(Joshua Tree), 즉 여호수아 나무 되겠다. 여호수아, 성경에서는 아마 굉장히 유명한 인물인 걸로 알고있다. 미국 서부의 사막지대엔 관목들 사이로 이 여호수아 나무들이 꽤 많이 있다. 이 관목숲과 자슈아트리 군을 뒤로 하고 테하차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산들. 근데 예사롭지 않다. 온 산에 미친년 머리마냥 수수깡 같은걸 잔뜩 꽂아놓은 것 같다.

멀리서 봐선 뭔지 전혀 모른다. 가까이 다가가야 뭔지 안다.

풍력발전기들이다. 성냥개비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한개 한개가 엄청나게 크다고 한다. 십몇층짜리 건물 높이라고 하든가. 미서부지역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일년내내 무지무지한 바람이 부는 지역이라고 한다. 여기가.

개중에 개인소유들도 꽤 있다고 하던데.. 앞으로 투자가치가 상당히 있을 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수천개의 이 풍력발전기 단지가 끝날무렵에 드디어 태고사로 가는 길이 열린다.

관목숲은 여전하지만 자슈아 트리들은 보이지 않고 제법 나무형태를 갖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길을 따라 5분쯤 가다보면 한 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너무 건조하다 보니 먼지가 하도 많이 일어 제한속도가 15마일이다. 주변에 큰 도시도 없고 나무도 물도 없는 이런 곳에 수십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도대체 뭐하면서 먹고 사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목축을 하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 어떻게 먹고 사느냔 말이다. 사람들이 돌아댕기는 것조차 한번도 본적 없다.

사람들은 없지만 늘 우릴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얘네들이다. 얘네들이 우릴 기억할 리는 없지만, 우린 얘네들이 우릴 알고서 반기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상근이도 있다.

우린 늘 이곳에서 이 개들과 한동안 노닥거리다 태고사로 간다. 상근이는 늘 우리를 뛰어넘을듯 펄적대면서 좋아한다. 허긴 좋아하는 건지 우릴 잡아 먹으려는 건지는 잘 모른다.

숲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숲의 냄새는 약간 풍기기 시작한다. 이런길을 다시 5분쯤 꾸불꾸불 가다보면 만나는 곳, 태고사. LA근교에서 유일하게 한국식으로 지은 한국 절이다. 한국에서 장인들과 건축자재들을 직접 모셔다가 한국식 그대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무지하게 많이 드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받아서 그걸로 충당했다고 한다. 무량스님이.

보다시피 한국의 삼천사와는 비교도 할 수없는 모습이다. 건물이라곤 달랑 세개. 왼쪽 관음전, 오른쪽 종각, 그리고 종각뒷쪽으로 보일듯 말듯 하는 대웅전. 물이 없는 곳이라 풀과 숲이 없어서 주변 경관이 삭막하다. 아무리 겨울엔 비가 온다고 하지만 나무들이 어떻게 이 뜨거운 여름을 버텨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종각에 가려진 대웅전의 모습은 이렇다.

아무리 대웅전 앞이지만 풀과 나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삭막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나무들을 가꾸느라 가느라단 물 호스를 연결해서 작은 묘목들을 키우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이 물들은 아마 이 물통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에 오는 비를 모두 담아두었다가 일년내내 쓰는지, 아니면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쓰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 물통 세개가 태고사의 수원지중의 하나임은 분명해 보였다.


태고사가 달랑 건물 세개인걸로 알다가 지난번에 갔을때 우연하게 숨겨져 있던 건물 하나를 더 발견했다. 꽤 여러번 그 절에 갔었으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전혀 몰랐었다. 대웅전의 뒷쪽에 숨겨져 있었던 보물.. 이걸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야채와 내가 한동안 크게 소리를 내면서 감탄하고 웃었었다. 한국에서부터 내가 젤 좋아하던 곳 산신각. 부처님은 너무 멀고 훨씬 가까운 산신령님. 


옆뒤에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이걸 옆앞에 서서 보면


초라해도 너무 초라하다. 집값은 한 백원정도? 한평이나 될까.. 두사람이 들어가면 내부가 꽉 차는 느낌이다. 허긴 불자들은 절에 왔으면 부처님 계신곳엘 갈테니 산신령 모신곳이 넓을 필요는 없겠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 코딱지나마라도 만들어 주신게 고마울 따름이다. 산 이름은 모르겠지만, 테하차피 산이라고 한다면 바로 '테하차피 산신령'이 계신 곳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이 산의 산신령으로 와 계실 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산신각 앞에서 정체 불명의 동물 하날 봤다. 이곳에서 움직이는 동물은 이놈이 처음이다.


뭐가 동물이란건지 잘 안보이겠지만 실제로 눈으로 볼때도 그렇다. 이놈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도대체가 그냥 흙바닥인지 동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흙이 아닌곳에 이놈이 섰다. 그래서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자세히 보니 벌레가 아니라 도마뱀 종류 같았다. 돌 바로 윗쪽에 있는게 바로 이 동물이다. 그나저나.. 잘 보이지도 않는 이 동물을 내가 어떻게 발견했을까? 아마 산신령님이 우리에게 무슨 할 얘기가 있으셨나 보다. 근데 들은 얘긴 없다.

산신각에서 다시 대웅전으로 돌아 나왔다. 그곳에서 태고사 전체 전경이 보인다.


이게 다다. 이 외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계곡도 없고 폭포수도 없고 약수터도 없다. 시원한 숲도 없고 울창한 산도 없다. 이게 진짜로 태고사의 전부다.

하지만 이 황량한 태고사
내게 한국의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곳, 내 마음의 聖地, 내 마음의 삼천사.. 미국 태고사다.

→ 내 마음의 삼천사.. 미국 태고사 1
→ 내 마음의 삼천사.. 미국 태고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