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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 금융위기 1 - 마약조직의 위기겠지

1. 십몇년전 한국에서 한 대기업의 해외전환사채 발행 프로젝트(해외에서 투자자금을 끌어 모으는 Road Show)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다. 물론 금융업무에 참여한 건 아니라 로드쇼에서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영상물 제작을 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증권회사가 별일을 다 한다는 거. 당시 그 프로젝트의 주관사가 한 증권사였던 것이다. ‘아니 증권회사에서 이런 일도 하나?’ 증권회사 하면 주식 매매 수수료로 먹고 사는 그런 쁘로카 회사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증권회사가 기업의 해외 전환사채 발행의 로드쇼를 총괄 기획 진행하고 있었다. 홍콩 런던 쮜리히에서 차례대로 열렸던 그 로드쇼. 당시 그걸 진행하던 그 증권사의 본사 및 해외지점 직원들, 참 어지간히도 폼들 잡았었다.

그들 중 한명과 호텔 로비에서 둘이만 있게된 어색한 상황이 있었다. 그걸 모면하고자 건성으로 물어봤었다. ‘증권회사가 원래 이런 일도 하는 겁니까?’ 그의 대답은 자세했다. 증권사의 업무가 원래 주식 위탁매매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게 많댄다. 그가 몇가질 얘기했었는데 그중 Investment Bank 라는 것도 있었다. 이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때 ‘증권회사 얘길 하다 웬 뱅크?’ 이랬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로는 그게 세계 선진 금융계의 추세이며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했었다. 그러나 금융이란 것을 근본적으로 ‘돈놀이’라고 무시하던 나는 속으로 그랬다. 증권이나 팔아드셔.


2.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가수가 음반을 낼 때 음반회사에서 미리 가수 소속사에 어음을 발행해 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 어음을 알아서 '깡'해서 자금으로 쓰라는 얘기였다. 해당국장에게 그 얘길 들은 우리 큰대빵, ‘우리가 거지냐? 쪽팔리게 음반회사 어음 받아서 깡해서 쓰게. 그럴바엔 차라리 우리가 어음을 발행하지.’ 그러나 난 어음이란 것에 대해 거부감이 워낙 심했었다. 좋은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가 자금이 없어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어 은행에서 고맙게도 자금을 융통해주는 제도라고는 하지만 상당수의 회사에겐 이 어음이 ‘독배’가 되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 은행과 어음 발행 약정을 맺었다. 아마 거래은행 지점장의 부탁으로 그리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어음을 발행하지는 않았다. 이삼년쯤 후, 대빵이 농반진반으로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한달에 한번씩 하는 대빵회의에서 회사매출 보고하기가 쪽팔리단다. 다른 대빵들이 피식 피식 비웃는거 같대나? 업종의 특성상 다른 대빵들에 비해 매출규모가 비교도 할 수없이 작은 것은 당연했지만 쪽팔려하는 대빵의 입장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리가 대행하고 있던 모기업의 옥외광고를 우리회사 매출로 잡자는, 즉 모기업에서 옥외광고회사로 직접 끊어주던 어음을 우리회사 앞으로 끊어 우리 매출로 잡고 광고회사엔 우리 어음을 주자는 아이디어. 금액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수백억정도였던 것 같다. 대빵이 욕심낼 만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역시 독배였다. 투자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자금을 들이고 싶어할 만큼 당시 업계 최대 최고의 전도 유망했던 회사는 매출 욕심이 빚은 이 어음 장난 때문에 무너졌다. 금융이란 이름을 가진 고리대금업의 농간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3. 한국사람은 여윳돈이 있으면 부동산 투자를 하지만 미국사람은 여윳돈이 있으면 대부분 펀드에 투자한다는데 이게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자산운용 방법이라고 한다. 이 붐을 타고 LA 한인타운에서 ‘연 최고 50%, 최저 30% 수익률 보장’을 내세우며 FIG라는 투자금융회사를 차려놓고 투자자들에게 펀드상품을 팔던 놈이 있었다. 연 50% 수익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심을 가져야 하건만, 어찌된 일인지 A는 이곳에 쌈지돈을 투자했다. 근데 매달 연 30% ~ 50%에 해당하는 수익금이 또박또박 구좌에 입금되었다. 세상에 이런 거저먹는 투자가 없었다. 그래서 A는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FIG에 투자하도록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자기가 직접 펀드 운용자로 나서기로 했던 모양이다. 자기도 회사를 차려놓고 투자자를 모아 그 자금을 FIG에 투자 하고 FIG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중간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약간 떼려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한동안은 잘 굴러갔었나 보다. 이렇게 A가 펀드 운용으로 매달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는 소문을 듣고 A를 오래도록 알던 B가 찾아와 자기도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7만불을 A에게 맡겼다. 그러면서 자긴 매달매달 수익금을 받지 않을테니 그것을 전부 재투자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FIG라는 금융사. 년 50% 의 수익을 낸다는 것은 애당초 모든 게 사기라는 뜻. 투자원금에서 뽑아 주는 거면서 마치 펀드 운용으로 난 이익인 것으로 해서 투자자들을 계속 끌어모으던 전형적인 사기 금융회사였다. 한탕 해서 크게 모으고 몇년 깜방가서 살다가 숨겨논 돈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살겠다는.. 그렇게 모인 돈이 자그마치 천 8백만불이었다. ‘연 50% 수익’이라는 말도 안되는 유치한 광고를 믿고 무려 천 8백만불의 자금이 모였다. 엔간히 모였다고 생각했는지 드디어 FIG는 잠적하고. 가짜 이익금에 홀려 수만불씩을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졸지에 돈을 날렸다. 물론 그 사기꾼은 잡혔지만 원금을 찾을 길이 없었다. 원금의 상당부분은 수익금 명목으로 투자자들에게 이미 되돌려 준 상태였고 나머지는 깊숙히 숨긴 이후이기 때문이다.

A와 B의 다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B는 그간 한번도 수익금을 받은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A가 자기 돈을 FIG라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인지는 전혀 몰랐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양쪽 다 업무적으로 잘아는 사람이라 등 떠밀려 내가 중재에 나섰었지만 둘 사이의 의견차가 너무 커서 결국 이들은 법정으로 갔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기꾼의 말에 놀아난 이들을 보는 내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돈놓고 돈먹을려다가 꼴 좋다.’


4. 미국에 증권회사(Securities Firm) 라는 이름의 회사가 아예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엔 천편일률적으로 무슨증권 무슨증권.. 이렇게 나래비로 늘어섰는데. 대신 미국엔 각기 독특한 다른 이름의 금융사가 증권위탁매매를 한다고 했다. 게다가 그 금융사들은 증권위탁업무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자산 관리, M&A, 부동산투자, 기업상장, 부실기업인수 등 별의 별 일도 다 한다고 했다. 돈 되는 돈 장사는 뭐든지 다 한다는 뜻이겠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의사, 법조인 그리고 월가의 금융인이라고 한다. 의사나 법조인을 꿈꾸는 건 세계가 공통이지만 월가 금융인? 좀 의외였다. 은행원이 어떻게 의사나 법조인과 직업 선호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월가의 금융인 그냥 은행원이 아니었다.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젊은 직원이라도 일만 잘하면 연봉 몇백만불을 받는다고 했다. 회사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많은 수익을 올리길래 직원 연봉이 수백만불일까. 그들은 틀림없이 위험스런 돈놀이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더니 요즈음 미국에서 초대형 금융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때 신문에서 봤다. Investment Bank.. 바로 십몇년전 런던의 한 호텔로비에서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들은 그 업무영역이었다. 세계 선진 금융계의 추세라던. 근데 그 ‘투자은행’이 요즈음 부실로 무너지고 있다. 똑똑한 젊은이들을 진공청소기처럼 쓸어가 돈놀이꾼으로 전락시키던 월가, 아주 쌤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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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이 좋아하는 건 바로 ‘돈’이다. 누구에게나 Money is everything 이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거 맘대로 먹고, 갖고 싶은 거 맘대로 갖고, 가고 싶은 데 맘대로 가고, 여자까지도 가질 수 있다. 돈 때문에 매일매일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그럴듯한 인생의 목표를 얘기해도 사실 인간들의 공통 인생목표는 돈이다. 돈을 향한 이 탐욕은 건강을 잃어도 없어지지 않고 죽어서까지 자손들에게 옮아간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근데 인류에게 돈이라는 게 아예 없던 시절이 있었다. 부락 부락으로 모여 살던 시절, 각자 자기네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서로 바꿔가졌다. 생선을 잡아 채소와 바꿔먹으면 되었고, 소금을 캐어서 곡식과 바꿔먹으면 되었다. 설령 그게 잘 안되면 싸움을 해서 빼앗아 오면 되었다. 참 단순해서 속 편하던 시절이었겠다. 그러다가 집단의 규모가 커져 이런 물물교환이 번거로워지면서 돈이라는 게 생긴거다. 재화와 재화를 직접 교환하다가 그것이 영 불편해지자 돈이란 보증서를 만들어 돈을 매개체로 이용한 것이었다. 돈의 임무와 역할은 이게 다였다. 재화(&용역)과의 교환증서.

그러다 인류가 은행이라는 걸 발명했다. 돈을 많이 가진 어느 한 사람에게 모인 돈을 위탁 받아 필요한 곳에 배분하기 시작했다. 남아도는 돈을 가져다가 돈이 당장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준다. 돈이 늘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전체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때 은행은 ‘빌리는 놈’에게 돈을 좀 떼어 ‘빌려준 놈’에게 준다. 이게 이자다. 일반 사람들은 돈만 모이면 은행으로 가지고 간다.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서 좋고 이자까지 쳐서 주니 좋기 때문이다. 빌리는 놈은 이자를 물더라도 급하게 돈을 쓸 수 있어서 좋고 빌려준 놈은 이자 받아서 좋다. 은행은 빌리는 놈에게 뗀 이자를 그대로 빌려준 놈에게 주는 게 아니라 상당부분은 자기가 갖고 나머지를 준다. 고상한 용어로는 ‘예대마진’이라고들 한다. 자리에 앉아 돈을 중개만 하고서도 돈을 번다. 돈을 빌리는 놈이나 빌려주는 놈보다도 더 많이 돈을 번다. 뭔가 잘못되었다. 열심히 일한 놈보다 앉아서 쁘로커 짓을 한 놈이 돈을 더 벌다니. 이게 돈 장사, 돈 놀이, 돈 놓고 돈 먹기다.

우리 세상을 이루는 본질은 열심히 농사짓는 사람, 열심히 물건을 만드는 사람, 열심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근본으로 이들이 일을 잘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당연히 근본이 되는 사람들이 대우받아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은 약간 쳐지는 대우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세상은 근본이어야 할 사람들은 한쪽으로 치이고 이들을 모시고 도와주던 머슴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죄다 머슴에 불과한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한다. 사회와 경제의 실권도 결국 금융이라는 머슴이 쥐게 되었다. 주객전도 본말전도가 도를 넘어도 너무 많이 넘었다. 근본은 무시당하고 쭉정이들이 판을 친다.

돈을 혈액에 비유하고 금융을 혈관에 비유하곤 한다. 경제가 돌아가는데 그만큼 금융의 역할이 막중함을 말하는 걸게다. 피가 멈추면 생체가 바로 죽듯이 기업에 있어서 금융의 중요성도 결코 그에 못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은행이 돈줄을 끊으면 웬만한 기업은 바로 망한다. 이런 드러운 상황은 사람의 혈액 공급을 밖에서 다른 이가 관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안재환 자살도 일정부분 이런 상황일 거라고 한다. (물론 자기가 자살을 해버리면 정선희가 어떤 참혹한 일을 겪을지 뻔히 아는 그의 자살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현대 경제사회의 대다수 기업과 상당수 개인의 피는 이렇게 다른 이가 밖에서 관장하고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개인과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은행이라는 머슴이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금융을 혈액과 혈관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완전히 틀렸다. 돈과 금융은 혈액과 혈관이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돈이나 금융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던 시절, 인류는 훨씬 더 건강했었다. 혈액과 혈관이라는 이 비유는 금융이 자기 스스로 지어낸 과대 미화 비유다. 그럼 금융의 본질은 뭘까?

금융은 마약이다.

쾌락을 위한 것이든, 의학적 용도이든 마약은 원칙적으로 안쓰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약에 빠져든다. 너무 급해서, 너무 아파서.. 그러나 한번 마약에 중독되면 사람은 그 마약 없인 단 한시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마약 판매상이 그걸 눈치채게 되면 그때부턴 마약 판매상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 이게 지금의 세상이다. 금융이 전세계를 쥐고 흔드는.

마약판매상이 꼬드겨서 사람들을 마약에 중독시켰다. 그래놓곤 마약을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팔아먹는다. 사람들에게 고리대금업자가 돈을 융통해 주었다. 그래놓곤 돈 제때 안 갚는다고 사람을 괴롭히고 죽인다.

그러던 마약상 몇놈이 밤길에 맞아 죽었다.
그러던 고리대금업자 몇놈이 하도 쳐먹어 배가 터져 죽었다.

이거 아주 잘 죽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