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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교포 - 우린 검은머리 외국인

이민간 형제자매와 한국의 형제자매간 사이가 갑자기 틀어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뭐 여러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부동의 1위는 바로 ‘부모가 편찮으실 때’다. 병든 부모님을 곁에서 직접 수발해야 하는 한국의 자식들과 외국에 버티고 안 들어오면서 주둥이로만 걱정하는 자식들간의 불화다.

오랜 병수발에 심신이 지친 사람들 입장에선 전화만 자꾸 해대며 참견하는 외국의 형제는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병든 부모마저 '철이 없는' 경우엔.. 노인네는 외국의 자식과의 통화해서 한국 자식의 흉을 보며 자기 처지를 과장해서 하소연한다.'니 형이 돈 아깝다고 나 병원에도 안 데려가' 이 얘길 전해듣고, 그럴리는 없다는걸 알지만  잠시 흥분하고, 곧 노인네의 터무니없는 노망질임을 서로 확인한다. 하지만 어디엔가 앙금이 남는다. 그래도 소홀한게 있으니 저러시겠지..‘철딱서니 없는 부모에 의한 자식 이간질’의 전형이다. 

하지만 설사 노인네가 이렇게 노망이 들어 철딱서니 없이 군다 할지라도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형제들끼린 상황을 짐작하며 서로 말조심을 한다. (물론 철없는 부모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바로 전화해서 흥분하는 철없는 자식도 있긴 있다.) 또 떨어져있는 자식에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하는 정상적인 노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니 사실 이렇게 부모의 이간질로 형제간이 갈라지는 황당한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겠다.

하지만 부모님도 정상이고 형제간 피차 '우아한' 경우라 해도 가끔은 사소한 말 실수는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각자 처한 상황을 이해하니까 이런 작은 말실수가 바로 문제가 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게 조금씩 쌓이다가 어쩌다 신경 날카로운 상황에선 간혹 강도가 조금 높은 말실수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평소엔 참아 넘기던 그런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는 경우가 있다.

'걱정만 많은' 외국의 형제가 한국의 형제에게 타박을 한 것을 '심신이 지친' 한국의 형제가 바로 맞받아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겠다. 부모님 모시기를 개떡같이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너 잘 걸렸다.. 못 들어오는 심정을 이해해 전화 참견질을 그동안은 참아주고 있었는데 너 잘 걸렸다..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지만 아무리 배려를 해도 서로가 처한 현실상황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이해하고 이해해주다.. 참고 참다가.. 사소한 말에 말이 서운해서 기어이 서로 대못질을 하고야 만다. 뱉어놓은 즉시 후회를 하지만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는 상황에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때 부모의 유산문제라도 겹쳐지면 형제간이 원수지간 되는 건 시간문제다.

가뜩이나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아 가족임이 희미해지는 차에
부모님의 와병은 또 다른 의미에서 크나큰 위기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에게 우롱..’
BBK특검이 수사결과 발표때 했던 말이다. 법률적인 용어대신 이들은 희한하게도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선정적인 표현을 썼었다.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 표현은 김경준 한놈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해외 동포 전체에 대한 불신감의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아 말조심 해야겠다..’ 그동안 블로그에다 고국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던 내가 딱 이 경우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외국에서 버티고 안 들어오면서 주둥이로만 참견하는 이기적인 형제자매'

결코 조국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었는데.. 우습지만 배달의 혼이 뭔지 이제서야 느끼기 시작하는데.. 조국을 떠나니 비로소 진짜 애국자가 되었는데.. 아무리 이렇게 하소연 해봐야 조국의 형제들에겐 결코 이해받지 못할 우리들만의 상황임을 인정해야 했다. 니들이 외국 나간게 뭐 때문인데? 여기 싫다고 나간거 아냐? 그런 주제에 뭐 조국에 대해 할말이 있다고.. 그렇게 걱정되면 들어들 오셔, 밖에서만 떠들지 말고..

조국에 대한 우리들의 쓴소리가 뒤늦게 깨달은 조국사랑에서 비롯되고, 조국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만, 조국의 국민들에겐 그게 다 배신자들의 비겁한 넋두리로 들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 힘든 부모님 병수발을 직접 해보기 전엔,
병든 부모를 두고 외국에 묶여있는 참담한 생활을 해보기 전엔,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비록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라고 여기고는 있지만.. 아무리 조심스레 얘길 해도 괜히 조국의 기분만 상하게 할것이 뻔하기 때문에, 부득이 한동안 한국 뉴스를 끊기로 했다.

고국의 형제들에게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우린,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