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15. 07:39

한인들의 우울한 자화상 2 - 바나나? 난 모과다

얼마전 이곳 한인신문에 UCLA내 한인학생들에 관한 기사가 하나 올라왔었다. 그 대학에 다니는 한인학생들간에 패거리가 형성되어 갈등이 있다는 기사. 제목만 보고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 내용은 바로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 vs ‘한국에서 태어나 건너온 이민 1.5세 학생’ vs  ‘유학생’들간의 갈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즉 ‘완전 미국애’, ‘어정쩡한 미국애’ 그리고 ‘토종 한국애’들간에 학교내에서 서로 갈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나온 단어들.

Banana (바나나)

껍데기는 노란데 속은 하얀 바나나. 아시안들 중 미국에서 태어난 2세나 미국화된 1.5세들, 그외 유난히 미국화된 척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백인들보다는(물론 지나치게 백인흉내를 내는 황인종은 당연히 같잖게 보일 터이니 백인들도 이 말을 쓰긴 하겠다) 같은 아시안들끼리 더 많이 쓰는 말이라고 한다.

FOB (팝)

이 말은 바나나들이 반대로 유학생들이나 늦은 이민 1.5세들을 깔보며 부르는 말이다. Fresh Off the Boat이다. 막 배에서 내린 촌뜨기라는 뜻이다. Plane도 아니고 Boat다. 난민이나 거지 취급하는 뉘앙스다.

같은 한인 학생들끼리 이렇게 갈라지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서로 이질감이 강하다는 뜻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같은 민족이면 더 정을 느끼고 친하게 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동족일수록 바나나들은 재수없고 팝은 어글리하다는 걸 절감한다. 바나나들은 영어만 쓰지만 한국말을 알아 듣는다. 바나나새끼.. 가 뭔지 안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fobs들도 fobs가 뭔지 안다. 이들은 같은 한민족이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지만 서로를 ‘싸가지 없는 것들’ ‘존나 따지는거 많은 것들’로 부르며 경멸하게 된다. 인종문제로 비화될까 조심해야 하는 이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껏 함부로 대한다. 같은 민족이라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서로에게 기대하던 게 많았기 때문에 서운함과 분노가 더 크다. 노사갈등보다 노노갈등이 더 해결하기 어렵고 치유가 어렵듯, 동족간 갈등도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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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애랑은 절대 결혼 안해’ 
2세 젊은애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근본이다. 난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법적으론 미국인이지만 속은 한국인인가? 겉으론 한국인이지만 속은 미국인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불쌍한 변종? 도대체 난 누구인가?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끊임없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젊은 2세 아이들이 미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인임을 지키려하면 맞닥뜨려야 하는 수많은 귀찮은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언어에서부터 문화 모든것에 이르기까지 지독한 노력과 끈기로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너무 어렵다. 그래서 결국 그런것들에서 회피하기로 한다. 그냥 100% 미국인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이것이 그들이 찾은 해법이다. 영어도 못하면서 잔소리만 심한 부모님과의 지긋지긋한 대화를 피할 수 있고, 한국인이라서 지켜야 하는 여러 귀찮은 것에서 저절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바나나가 되기로 한다. 이왕이면 결혼도 못난 한국애들보다는 미끈한 다른 인종이랑 해서 인종개량하는 게 좋겠다고 여긴다. 따지는 한국애들보다는 쿨한 다른 인종이 차라리 좋다고 여긴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걸 점점 더 잊으려하고 감추게 된다. 이들이 바로 바나나들이다.

반면, 죽었다 깨어나도 100% 미국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fobs에게 이런 100% 미국화가 가능한 아이들은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다. 그래서 속으론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론 ‘뿌리도 모르는 것들,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미국사람 흉내내고 싶어서 환장한 것들’이라 욕한다. 이 아이들 역시 심각한 모순상황이다.역시 정체성 고민에 빠진다. 난 누구인가? 오히려 2세아이들보다 더 심하다. 미국에 살건만 결코 완전한 미국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딱한 처지.. 그냥 한국인임을 지닌 채 살아가기로 한다. 이것이 그들이 찾아낸 해법이다.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히고 스스로 족쇄를 채운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그들의 행동반경을 넓히고 자신감을 획득한다. 그들은 뜻이 같은 2세 아시안들과 스스로들을 이렇게 칭하기 시작했다.

Mango (망고)

겉도 노랗고 속도 노랗다는 과일이다. 내가 먹어본 망고는 연두색에 가까웠었는데 원래는 노란 게 더 많은 모양이다. 어줍잖게 백인흉내를 내기보다는 자기들의 정체성을 자기들의 뿌리에서 찾자는 2세와 1.5세 아시안들의 신선한 발상이다. 그래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인임을 오히려 알린다고 한다. 어차피 바나나가 되어봐야 겉은 영원히 노랄터이니 이게 영악한 선택일런지도 모른다. 진짜로 아시안임이 자랑스러운 건지 아니면 생존하기 위한 방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이들은 스스로의 뿌리를 자랑스러워 하며 스스로를 망고라고 칭한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한 내 느낌은.. 이것 역시 자격지심의 한 단면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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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 같은 사람들은 뭘까?
백날 노력해봐야 바나나는 커녕 바나나 비슷한 흉내도 내지 못한다. 언어의 장벽으로 모든것에 습득의 한계가 '절망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땅에서 꽤 살았으니 fobs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자신만만한 망고도 아니다. 영어가 짧고 정보가 짧아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고, 바나가가 되어가는 자식들과 숱한 갈등을 일으키지만 영어가 짧고 미국문화에 서툴러 그냥 속으로 참고 있는 사람들. 미국에 살되 속은 그대로 한국인인 나같은 사람들.

모과

난 토종 모과다.


→ 한인들의 우울한 자화상 1 – 난 한국사람들이 젤 싫어
→ 한인들의 우울한 자화상 2 – 바나나? 난 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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