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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동성결혼 합헌을 따지는 나라 vs 간통죄 합헌을 따지는 나라

주민소환제(Recall)와 주민발의안(Initiative)제도, 그리고 아직 보진 못했지만 국민투표(Referendum)라는 것까지 합쳐 이 셋을 미국 ‘직접민주주의’의 3대 제도라고 부른다.

주민소환제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았다. 근데 이놈이 사기꾼인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하는 꼴을 보니 무능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처럼 복창이 터져도 그놈의 임기가 끝날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나? 아니다. 방법이 있다.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성과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주민들이 의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투표를 통해 그놈의 모가지를 날려버릴 수 있다. 썩어빠진 국회의원들, 그 쓰레기들의 한심한 짓거리들을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쳐다봐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답답한 현실 생각하면 정말 꿈 같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부럽기 짝이없다. 내 조국 대한민국에 이런 제도가 있다면 있다면.. 몇해전 캘리포니아의 데이비스 주지사가 이 소환투표에 의해 모가지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때 새로 뽑힌 주지사가 지금까지 연임에 성공한 'Governator'다.


주민발의안
소환제도만큼이나 유권자들에게 통쾌하고 시원한 제도가 하나 더 있다. 유권자들이 직접 법안을 상정하고 직접 찬반투표로 헌법이나 법안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제도다. Proposition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50개의 주 전체가 이 제도를 모두 시행하는 건 아니지만 캘리포니아는 이 주민발의안 제도가 아주 활발하다. 너와 나 같은 보통주민들이 직접 법을 고치고 만들수가 있다니 이 역시 우리로선 꿈도 꾸기 어려운 제도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의회는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정치꾼들과 기업들의 로비각축장이었다고 한다. 딱 지금의 우리나라다. 그래서 정치꾼들의 싸움과 이익집단들의 입김에 넌덜머리가 난 일부 개혁주의자들이 시민들이 의회나 정부를 직접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대단한 것을 고안 했는데.. 그게 바로 ‘썩어빠진’ 의회를 건너뛰고 주민들이 직접 법을 입법하는 제도, 주민 발의안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발의안이 상정되기 위해서는 60만명 이상의 지지서명을 받아야 하며, 이게 통과되려면 50%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이 주민 발의안은 수백 수천만의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 발의안에는 정치꾼들이나 이익집단들이 영향력을 행사 할 여지가 적다. 게다가 주민발의안은 투표를 통해 통과되면 즉시 법이 된다. 그래서 공약을 남발하고 곧 모른체하는 의원이나 주지사를 뽑고 속아서 분통더뜨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정치행위이다.

믈론 좋은 취지와는 달리 여기에도 어두운 면이 분명히 있다. 일반 시민들이 발의하는 진짜 소중한 법안들은 대부분 지지서명 기준에 미달해 탈락하는 반면, 기업들과 같은 이익집단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 해 지지서명을 모으고 티비 광고를 하기 때문에 상당수 발의안들은 이러한 이익집단들의 돈 잔치장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발의안은 간접민주주의의 폐혜를 가장 잘 보완하는 훌륭한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거때마다 주민발의안에 대한 찬반 선거광고가 티비에 넘쳐난다. 광고만 봐서는 그게 좋은 발의안인지 나쁜 발의안인지 알 수가 없다. 법안들마다 주민들간의 이익이 첨예하게 상충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다 일장일단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법안은 진보주의자들이 반대하고, 진보주의자들의 법안은 보수주의자들이 반대한다. 그래서 법안의 투표결과는 늘 박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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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캘리포니아가 이 주민발의안 하나 때문에 시끄럽다. Proposition 8.

바로 동성결혼(Gay Marriage)에 대한 내용이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지난 2008년 5월 15일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판결을 했었는데 이걸 다시 무효화해서 동성결혼을 금지해야 한다는 발의안이다. 뭐 동성결혼?.. ‘동성애’라는 개념도 역겨운데 그 동성애자들이 정식으로 결혼하는 걸 주 대법원에서 합헌판결을 했었다고? 대다수 한국인들에겐 기절초풍할 내용이다. 보수적인 유교문화와 보수적인 기독근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인들은 이 동성결혼에 대해 거부감이 특히 크다. 

나도 사실 동성애에 대해선 보수적으로 단호했었다. 변태색히덜.. 그러나 소위 그동안 '진보주의자'라고 자청하는 동안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그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동성애자들을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하려고 노력중이었다.'패륜'이나 '변태'로 혐오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상태였다. 따라서 장애인들을 배려하듯 그들도 배려해줘야 한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런 동성애자들의 동거를 '음성적'으로는 허용할 수 있다고 봤었다.

그러나 아무리 진보적인 척 노력을 해봤지만 그들의 '법적 결혼'까지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었다. 이건 뭐 거창하게 전통적 관례와 사회적 통념, 종교적 신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띠바 그게 안 받아들여졌었다. 남자끼리 법적으로 부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심정일 테니, 그래서 이 주민발의안은 쉽게 통과될거라고 생각했었다. 동성결혼 합헌판정 무효..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의외다. 이 주민발의안을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다. 즉 동성결혼을 그냥 인정해 주자는 여론이 더 높은 것이다.

영국의 다이애나가 애인과 바람을 피우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도 그 여자를 추모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영국인들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듯, 동성결혼을 하게 해줘야 한다는 미국인들도 참 이해할 수 없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리버럴하다고 부러워해야 하나
패륜의 나라라고 부끄러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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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국에서 '간통죄'가 또 다시 헌재에서 합헌판결을 받았단다. 개인들의 간통에 대해 앞으로도 여전히 국가가 다른 할일은 제쳐두고라도 '꼭' 나서시겠단다. 19세기 부족장회의에서나 따졌을법한 일을 21세기의 국가가 아직도 따지겠단다.

내가 게이들의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듯 간통죄 폐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다. 따라서 누구 의견이 맞고 틀림을 떠나 내 의견이나 그들의 주장이나 똑같은 국민들의 의견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법을 어겨 축재를 했어도 대통령이 되는데 문제가 없는데 여염집 남녀는 떡 한번 잘못치면 철창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 왜곡된 형평문제를 따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주민발의제가 있어서 간통제 합헌여부를 찬반투표에 붙였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하는 것도 아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나라의 할일은 태산같이 쌓였는데도 남녀의 배꼽 밑 일을 국가차원에서 간섭하겠다는 우리나라. 그런 쓸데없는 간섭들이 많아야 기강확립이 된다고 여기는 우리나라. 개인들의 사생활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여기는 우리나라. 개인의 특색이나 창의성보다는 집단의 문화가 민족 번영의 길이라고 여기는 우리나라. 군대문화가 뼈속 깊이 박혀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나가는 우리나라. 주민소환제나 주민발의제는 없으면서 남녀 이불속 떡치는 범위를 국가가 정해주고 간섭하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우리나라.

윤리와 도덕이 서있다고 자랑스러워 해야 하나
세상 변하는 걸 전혀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라고 부끄러워 해야 하나


비슷한 시기에 닥친 동성결혼 합헌판정에 대한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과 내조국 대한민국의 간통죄 합헌판정이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