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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한인들의 우울한 자화상 1 - 난 한국사람들이 젤 싫어

‘난 한국사람들이 제일 싫어’ 

한인들이 참 자주 하는 말이다. 자기도 한국사람이면서 한국사람이 제일 싫고 절대로 한국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니, 이거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혹시 한국사람이 싫다고 말하는 이 사람이 누가 보든 고고하고 옳바르든가? 또 한국애랑 결혼하지 않겠다는 애가 미국에서 나고 자라 돌이킬 수 없는 완전 미국아이든가? 아니었다. 대부분 이민 2세나 1.5세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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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에선 유학생 주재원의 가족들과 이곳에서 아주 사는 사람들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잠시 ‘들렀다 가는 사람'들이 아마 양반상놈 가르듯 한인들을 가르고 자기네가 양반인양 행세를 했었던 모양이다. 여기 눌러 사는 사람들을 한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밀려난 사람으로 취급했을테니까. 당연히 ‘이곳에 아주 사는 사람’ 들이 그 꼴을 좋게 보았을 리는 없고.. 그런 그들간의 반목이었겠다. 하지만 요즈음엔 주재원 유학생 가족이 대부분 눌러 앉고, 또 이민연차가 짧은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니 이제 이런 반목과 갈등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의 한인사회엔 어떤 반목과 갈등이 아직 남아있을까?

사람들이 모여 살면 어디서든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이민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기성세대 vs 신세대간의 갈등(신구이민자들간의 갈등), 교양없고 무식한 사람들 vs 배운 사람들간의 갈등, 그외 이념갈등, 종교갈등, 지역갈등 등을 아직도 볼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곳(남의집 숟가락 갯수까지도 서로 안다는 작은규모 한인사회)일수록 더 심하다고 한다. 이중 드러나지는 않으면서 가장 심한 것은 아마 ‘이민 신구세대간의 갈등’이 아닌가 싶다. '난 한국사람이 제일 싫어' 는 일정부분 이렇게 이민 구세대들이 타겟이다.

과거 이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했었던 것이 ‘생계형' 이민이라면, 요즈음에 오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도피형 교육형 혹은 희망형’ 이민이라고 여긴다. 한국에서 먹고 살게 없어서 온게 아니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즉 한마디로 자기넨 질적으로 틀리다는 거다. 따라서 이들간엔 나이에 따른 세대차이뿐만이 아니라 사고방식, 기본소양, 생활양식등 모든 면에 있어서 철저하게 상이한 면이 존재한다. 후세대들은 기성세대를 돈밖에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 깔보고, 기성세대들은 신세대를 철부지라고 한심해한다.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이런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니 물과 기름이 되는건 당연하다.  

이들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한마디로 말하면.. 과거 생계형으로 이민왔던 구세대가 ‘쪽팔린다’라는 거다. 많이 배우지 못한데다가 고생하며 살아온 구세대들에게 안타깝게도 교양과 에티켓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실제로 많기는 하다. 그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교양이 모자라는 '생계형 이민세대'는 나중에 도착한 '도피형 이민세대'들의 눈엔 웬수로 보이기도 한다. 

무식한 늙은이들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한국에서 와는 달리 이곳은 다른 민족 다른 인종들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는 곳이다. 따라서 외국살이에서는 동족 구세대들의 추태가 결코 관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저들 때문에 자기까지 똑같은 어글리 코리안 이미지로 비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거다. 남보기 창피한 구세대 한국사람이 싫다는 건 사실 이해가 된다.

(반면 구세대들은 자기들을 부끄러워하는 이 신세대들이 괘씸하고 서운하다. 그 아이들이 이민와서 편하게 사는게 다 누구덕인데. 다 우리가 수십년 터 닦은 덕인줄도 모르고.. 지구상 어디에서나 신구세대간 갈등은 있다. 이민 신구세대간의 이 갈등 역시 약간 다르긴 해도 어차피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난 한국사람이 제일 싫어’라는 이 말의 대상은 이민구세대들만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궁금해하던 부분이 바로 이거였다. 이 ‘난 한국사람이 제일 싫어’는 세대를 초월해서 무차별적으로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스무살짜리 애에서부터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전 세대를 망라해 서로 서로 ‘제일 싫은 한국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교양없다고 경멸하는 중국인들보다도 더 질낮은 한인들이, 쳐다만 보고 있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울컥대는 그런 한인들이 세대를 초월해서 주변에 바글바글하다는 뜻일까?

실제로 상당수 한인들이 그렇게 어글리하다는 말은 맞다. 사실이다. 근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한국사람들이 제일 싫어’ 란 말을 입밖에 내는 사람이 내가 보기엔 과히 교양있어보이지 않더라는 거다. 때론 똥묻은 놈이 겨묻은 놈 나무라는걸로 보이더라는 거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서로 ‘난 한국사람들이 제일 싫어’ 라고 하는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는 처음 한국에 다녀왔던 후배의 얘길 듣다 우연히 풀렸다.

‘한국가서 보니까 한국사람들 다리 정말 짧더라..’

업무상 다리가 쭉쭉빵빵한 흑인 남미인 백인들만을 보던 그 후배가 갑자기 한국에 가서 한국인을 보자 한국인들의 다리가 상당히 짧음을 새삼스럽게 알고 놀랐다는 것이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곳 길거리에서 한인들의 하체가 빈약하고 다리가 짧다고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근데 오랜만에 한국에 갔던 후배가 똑 같은 얘길 얘기하고 있었다. 무릎을 쳤다.

그렇다. 착각이었다. 우린 모두 그렇게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거였다.

TV와 주변에서 늘 보는 외국인들처럼 내 다리도 긴 걸로, 내 머리칼도 출렁거리는 걸로, 내 옷차림도 항상 말쑥한 걸로, 내 표정도 늘 방글거리는 걸로, 내 목소리도 항상 경쾌한 걸로, 내게도 늘 향수냄새만 나는 걸로, 내 행동거지도 절대 에티켓에서 벗어나지 않는 걸로.. 이렇게 착각하고 있는 거였다.

백조떼 틈의 오리가 자긴 백조라고 알 듯, 염소떼 틈의 양이 자긴 염소라고 알 듯 우린 스스로를 전혀 보지 못한채 다른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자기가 백조인줄 아는 오리가 다른 오리를 보곤 목과 다리가 짧다고 업신여기듯, 자기가 염소인줄 아는 양이 다른 양을 보곤 턱수염 없다고 업신여기듯.. 우린 어이없게도 제 꼬라지는 모르는 채 자기랑 똑같은 한인들을 업신여기고 있는 거였다.

난 늘 화난사람처럼 무섭게 굳은 표정이면서, 난 매사에 무뚝뚝한 말투이면서, 난 김치먹고 입가심도 잘 안하면서, 난 유행지난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면서, 난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잘 지키지 않으면서.. 이런 주제에 다른 한인이 그러는 건 귀신같이 찝어내어 '난 한국사람들이 제일 싫어. 도대체가 교양이 없어' 하는 거였다.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상원하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대통령이 어떻게 뽑히는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사는 동네와 자기가 하는 일외에는 미국의 시스템에 대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미국애들도 인간이하의 쓰레기가 많다는 걸 애써 모른체 하면서.. 그저 미국을 부러워하며 미국보다 못한 한국을 업신여기는 거였다. 그게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자격지심' '착각'이었다.


→ 한인들의 우울한 자화상 1 – 난 한국사람들이 젤 싫어
→ 한인들의 우울한 자화상 2 – 바나나? 난 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