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9. 06:32

돌잔치.. 제발 니들끼리 하면 안되겠니?

백일잔치
위생도 불량하고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많이 죽었었다. 특히 사계절 기후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첫 환절기에 아기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첫 환절기는 대부분 태어난지 두어달 안짝에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만약 아기가 백일동안까지 살아남았다면 그것은 가장 위험한 고비인 첫 환절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를 위한 축하행사를 열었는데 이게 백일잔치다.


돌잔치
아이가 드디어 첫 생일을 맞는다. 첫 환절기는 물론 세 번의 환절기 모두를 무사히 넘겼다. 따라서 태어난 아기가 첫돌을 맞는다는 것은 성장 초기에 맞이하는 모든 고비를 모두 무사히 넘겼다는 뜻이다. 당연히 크게 축하할 만 하다. 게다가 한돌을 맞은 아이는 아장아장 걷기도 하고, 자기의 의사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드디어 ‘사람구실’을 하기 시작하는 때인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고비를 모두 넘기고 사람구실을 하게 된 아이를 축하해 주는 행사, 이게 돌잔치다.



요즘애들은 잘 안죽는다
100년전 우리나라의 영아 사망률, 물론 정확한 통계수치는 아니겠지만, 25%~30%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어난 아기 넷중 하나가 젖도 못 떼고 두어달 만에 죽었단다. 이러니 '백일'이 기쁘지 않고 '돌'이 기쁘지 않을 수 없었겠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요즈음은 어떨까?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영아사망률은 세계 최저수준인 0.3%이다. 천명이 태어나면 그 중에 세명 정도만 죽는다는 것이니 이건 거의 다 살아남는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상황이 이러하니 아기가 백일과 돌을 넘겨 살아남았다고 기뻐해야 할 필요는 이미 전혀 없다. 백일과 돌잔치의 원래 의미가 무색해 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백일잔치'를 하는 집은 없다.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꼬물락거리는 아기를 보여주자고 손님을 부르기도 뭐하고.. '민폐'라는 걸 본인들도 잘 안다. 괜히 백일잔치 벌이면서 사람 불렀다간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근데 '돌잔치'들은 여전히 한다. 물론 예전과 같은 의미의 돌잔치는 아니다. 사랑스런 내 아기의 첫 생일이니 그냥 그걸 예쁘게 마련해주고 싶어 벌이는 것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내 아기의 첫 생일을 축하하고 미래를 축복해 주길 바랄 것이다. 당연하다. 그래서 가까운 가족들 모시고, 가까운 친구들 불러서 내 아이의 첫 생일잔치를 열어준다. 좋다.



민폐 청구서
근데 말이다.. 이 돌잔치를 자기 집이 아닌 연회장이나 호텔을 빌려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걔네들 가족이나 친구가 수백명일리는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큰 장소를 빌렸다는 건 사돈의 팔촌부터 거래처 미스김까지 불러 모으겠다는 거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은 그 잔치에 오지 말래도 간다. 문제는 아기와 별로 관계가 없던 다른 사람들이다.

아기가 태어난 줄도 몰랐었는데.. 어떤 사람이 불쑥 자기 아이 돌잔치에 오라는 초대장을 준다. ‘청구서’다. 안다. 그래 접대비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굳이 밥 먹으러 오란다. 토요일 점심시간이다. 왔다갔다 하다보면 휴일하루가 다 깨지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든 부조만 하고 잔치엔 가지 않으려고 하는 찰나 ‘가까운 사람들만 불렀으니까 꼭 오셔서 식사하고 가세요’ 이 소릴 듣고 안 갈 수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식도 잘 모르는 사람이 부르면 귀찮은데 하물며 돌잔치야.. 이거 심각한 '민폐'다.



돌잔치는 '행사'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토요일 점심 12시 30분 행사 장소에 갔다. 마침 저녁 7시 반에 숭실OB 공연엘 가야하니 집을 나서는 게 그나마 덜 억울하다. 그나저나 토요일 낮에 왜 이렇게 돌아댕기는 사람들이 많은가? 그렇게 오래걸려 행사장에 도착했다. 

돌잔치 '행사장'..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뭐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썩을년.. 아예 입구에 부조금 받는 테이블이 떡하니 있다. 거기 줄 서서 돈을 냈더니 경품 추첨 티켓을 준다. 잘하는 짓이다. 아기 돌잔치에 경품잔치나 벌이고.. 이렇게 사람 많을줄 알았으면 부조만 하고 안 오는건데.. 하지만 이왕 점심때이고 하니 밥은 먹고 가야겠다.

하지만 배고픈 손님들 불러놓고 한동안 밥줄 생각은 안 한다. 행사시작 30분이 넘도록 목사가 예배를 본다. 중간 중간 찬송가 부르고. 그게 겨우 끝나니 이번엔 아이의 사진과 비디오를 십여분간 상영한다. 엄마 아빠도 잘 모르는데 그런 그들의 아기 비디오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박수 쳐주고 웃어준다. 억지로.. 드디어 끝났나 했더니 이번엔 아이 할아버지가 나와서 기도를 또 하신단다. 하나님 아버지 어쩌고 저쩌고.. 아멘. 드디어 식사시간이다.

사람들이 많으니 어르신들부터 먼저 드시게 하잰다. 그래 그래야지..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웬걸 늙은 거 젊은 거 할거 없이 한꺼번에 다 나가서 줄을 선다. 띠바 인간들 수준하고는.. 하염없이 이십분 정도 기다린 끝에 제일 마지막으로 겨우 음식 한접시를 채워 자리로 돌아온다. 뻔한 케이더링 음식, 맛도 드럽게 없다. 그래서 ‘맛 드럽게 없네’ 말 하려는 찰나,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음식 어떠세요?’ 묻는다.  '맛있네요' 거짓말 하고선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데 그 아줌마.. 아기 외할머니시랜다. 띠바 큰일 날 뻔했다.^^



공병우 박사의 유언

첫째, 생명이 위독한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동거가족 또는 보호자는 다른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위독 사실을 일절 알리지 말고, 의사의 지시에만 순종할 것.

둘째, 내가 죽으면 누구에게도 일절 알리지 말고, 장례식이나 추도식 같은 것도 일절 하지말 것. 내 주검은 다음과 같이 처리할 것.

1. 조직 또는 장기중 다른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적출하고, 나머지 시체는 병리학 또는 해부학 교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의과 대학에 제공할 것.

2. 위와 같이 할 수 없을 때는 사후 24시간 이내에 화장 또는 수장을 한다. 만약 법적으로 화장 또는 수장이 불가능할 때에는 가장 가까운 공동묘지에 매장한다. 단, 매장할 때에는 새옷으로 갈아 입히지 말고, 입었던 옷 그대로 값싼 널(관)에 넣어 최소 면적의 땅에 매장한다. 시체는 현장에서 100킬로미터 밖으로 운반을 못한다. 현 거주지로부터 100킬로미터 밖에서 사망하였을 때는 가급적 현지에서 위의 방법으로 처리한다. 여행 도중 바다나 강물에 익사하였을 때는 수장으로 삼고, 시체를 찾아내지 말 것,

3. 죽은 지 1개월 후에 가족, 친척, 친구에게 내가 죽었음을 알릴 것. 설사 매장이 되었을 경우에라도 화장한 것과 같은 경우로 알고 사람들에게 묘지의 위치를 알리지 말 것. 화장을 하였을 때엔 남은 재를 몽땅 버리고, 조금이라도 남겨 두지 말 것.

셋째, 나의 유형무형의 재산이 있을 경우는 신체장애자들, 특히 앞 못 보는 장님들의 복지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가족과 법적 집행인과의 협의에 의해 처분할 것.

...

공병우 박사가 작고하기 10여년전 쓰신 이 유언이 떠오르는 토요일이었다.

돌잔치는 니들 가족 친구끼리만 모여서 하세요. 제발..


* 환갑잔치 칠순잔치도 마찬가집니다.^^ 안 하는 것이 좋지만 '굳이 하려거든' 가까운 가족 친지들끼리 모여 조촐하게 합시다. 사돈의 팔촌까지 사람들 모아서, 밴드 부르고 요란하게 하는 노인잔치.. 보기에 참  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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