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3. 06:03

오심논란을 즐기는 FIFA


지난주 6월18일 미국과 슬로베니아 전, 0-2로 뒤지던 미국이 후반 2-2 동점을 이루고 얼마후 ‘에두’가 역전골을 터뜨렸다. 조 선두가 되어 미국이 16강 진출에 바짝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골이 주심에 의해 노골로 선언되었다. 오프사이드? 몸싸움에서 반칙? 미국으로선 참 아깝게 됐네.. 그러나 여러 각도의 화면을 반복해서 봤지만 반칙이 될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중계 해설자도 그것이 왜 노골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심에게 달려가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주심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골이 터지기 직전 에두가 파울을 저질렀다는 거였다. 이거 100% 오심이었다. FIFA도 인정했다. 심판을 징계하겠단다. 그러나 경기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6월 21일 브라질과 아이보리 코스트 전, 후반 5분 1-0으로 앞서던 브라질의 공격수 파비아누가 그림 같은 골을 터뜨렸지만, 리플레이 화면으로 보니 그는 그 과정에서 두 번이나 손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심판은 이걸 못봤다. 브라질은 이 골 이후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고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오심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경기 종료 2분 전, 골을 잡으려 카카에게 돌진하다가 가슴께를 슬쩍 부딪힌 상대선수가 느닷없이 얼굴을 감싸쥐고 쓰러졌다. 명백한 쑈였다. 하지만 심판은 카카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앞서 파비아누의 핸들링을 보지 못하고 브라질의 골을 선언했던 게 아이보리 코스트에 몹시 미안했었던 모양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 = 무슨 수를 쓰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
월드컵의 경우엔 주심의 잘못된 휘슬하나가 4년을 기다려온 선수와 국민들을 뒤집어 놓는다. 앙금을 남겨 국가간 반목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심이 한번 터질때마다 세계 축구팬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심논란을 해결할 너무나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도 FIFA 나으리들께서 그걸 외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나 뭐라나..

경기 내내 쉴새없이 이어지는 짧은 순간들을 심판이 모두 포착하기는 절대 불가능하다. 따라서 축구에서 오심은 있다. 사람은 당연히 실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수들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건, 선수들에게 ‘어떻게든 눈속임을 하라’는 면죄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모든 구기 스포츠 중에서 골이 가장 적게 나는 경기다. 더럽게도 골이 안난다. 오늘 새벽처럼 7-0 이라는 스코어도 나지만 툭하면 0-0 이다. 따라서 한골의 의미가 각별하다. 어떻게든 심판의 눈을 속여서라도 반칙을 하려는 이유다. 심판만 속이면 벼락스타가 될 수 있는데 누가 그 유혹에서 자유롭겠는가.

그래서 어떻게든 심판의 눈을 속여 핸들링을 하거나 상대방의 파울을 유도다. 슬쩍 손을 대 공을 확보한 다음 슛을 날린다. 안 걸리면 한골 넣은게 되고, 걸리면 그저 옐로우카드 한장이다. 월드컵에서의 한골은 선수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천금 같은 기록이다. 옐로우카드 한장과 당연히 바꾼다. 또 상대방 진영을 돌파하다가 수비수가 많이 모여서 돌파가 어렵다 싶으면 여지없이 몸을 내던져 발목을 감싸고 나뒹군다. 심판이 속아주면 페널티 킥을 얻어 한골을 넣고, 심판이 속지 않으면 그저 그만이다. 평생 선수자격정지라면 모를까 경고 한장정도로는 선수들의 유혹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월드컵은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보고 있다.
축구경기중 교묘한 핸들링으로 골을 넣는 것이나, 치졸한 오버액션으로 페널티킥을 얻어 골을 넣는 것을 세상사로 본다면.. 불법으로 검은 돈을 벌거나, 상대방에게 누명을 씌우고 내가 물질적 이득을 얻는 것과 똑 같은 행위다.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월드컵 경기 시작때 선수들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온다. 굳이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미래에 대한 어떤 상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어른들이 축구에서 정정당당하지 않다면 과연 이 어린아이들이 월드컵을 보면서 뭘 배울까? '세상을 살면서 정직하게만 살면 실패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권모술수, 모함, 사기를 저질러야 이긴다.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것을 배우고 있다.

심판들이 오심을 하고선 고집을 부리고 있을 때, 전세계 시청자들과 어린이들은 수십번도 더 반복되는 문제의 장면을 보면서 그 판정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물론 FIFA도 같이 보고 있다. 그러나 한번 내려진 심판의 오심판정은 요지부동이다. 여전히 오심도 경기의 일부란다. '범죄도 세상의 일부'라는 가르침이다. 어린이들이 이걸 학습한다.


오심을 줄이는 방법
오심을 개선할 방법자체가 없다면 어쩔 수 없겠다. 하지만 방법이 분명히 있다.
심판의 숫자를 늘리고 비디오판독제만 도입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 

축구와 같은 크기의 경기장에서 같은 11명이 뛰는 미식축구에서 심판은 모두 8명이다. 축구장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경기장을 쓰는 야구에서는 심판이 모두 6명이다. 하지만 축구는 심판이 3명이다.(공식적으론 선수교체하는 사람 포함해 4명) 그 중 2명은 경기장 안에 있지도 않다. 라인 밖에서 오프사이드를 보는 것이 주임무인 사람들이다. 결국 그 넓은 축구 경기장 안에 심판은 단 1명이다.

다른 구기종목 중 심판이 3명인 종목이 바로 농구이다. 하지만 농구장은 축구장에 비해 훨씬 작다. 축구장이 110 x 75 (8,250 제곱미터)인데 비해 농구장은 28 x 15 (1,680 제곱미터)이다. 그 작은 경기장에 선수들도 10명에 불과하다. 또 농구의 부심들은 축구의 선심들처럼 오프사이드를 보는게 주임무인 사람들이 아니다. 주심과 똑같이 경기의 내용을 보고 휘슬을 분다. 농구도 이럴진대 축구는 그 넓은 운동장에 22명이 뛰면서도 심판은 단 1명이다.

축구경기엔 감독의 챌린지 제도도 없고 비디오 판독 제도도 없다. 아무리 억울해도 그냥 당해야 한다. 간단하게 화면만 리플레이 해보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FIFA는 여전히 그걸 금지한다. FIFA는 여전히 ‘오심도 게임의 일부’ 라며 고집을 부린다. 왜 그러는 걸까? 

그들의 대답은 단순하다. 경기의 맥을 끊지 않기 위해서란다. 여러 심판들이 서로 상의를 하거나 비디오판독을 하느라 경기가 중단되면 경기의 맥이 끊긴다는 거다. 그래서 축구엔 작전타임조차도 없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하려해도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게 모두 다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서란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지만 일단은 그런가보다.. 하자.


수상한 FIFA
우리나라에서 축구라는 종목은 이중성을 가진다. '인기종목'이면서 동시에 '비인기종목'인 것이다. 동네 여기저기서 축구를 하는 사람은 많은데 프로 축구리그는 한없이 썰렁하다. 간단하다. 축구라는 게 직접 하는 건 재미있지만 보는 건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드컵만 열리면 대한민국은 축구 하나로 전 국토가 들썩들썩한다. 집단광기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스포츠 애국주의'가 나라 전체를 뒤덮는다. 우리나라에 축구라는 종목이 명맥이 끊어지지 않는 유일한 젖줄이 바로 월드컵이다. 월드컵이 없다면 대한민국에서 관전 축구는 벌써 고사했을 것이다.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축구리그는 다 이와 비슷하다. 이렇게 축구리그가 찬밥인 이유가 뭘까? 아주 간단하다. 티비중계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축구 티비중계가 없을까? 이것도 간단하다. 경기 중간에 광고를 내보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작전타임도 없고, 비디오판독도 없기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는 시간이 없다. 광고를 붙일 수 없으니 방송사로선 축구중계를 잘 하지 않는다.

근데 좀 이상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몰려있을 FIFA 가 이런 걸 모르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축구리그가 살아야 FIFA도 사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FIFA는 그 오심 논란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FIFA 는 '월드컵'을 먹고사는 공룡
세계 최대 조직하면 1945년 설립하여 현재 192국이 가입한 UN을 떠올리지만, 최대조직은 따로 있다. 바로 FIFA다. 1904년 설립 208국 가입의 국제축구연맹(FIFA)은 역사와 규모에서 UN을 능가한다. FIFA 가입국은 IOC의 205국보다도 많다. (국제육상경기연맹 IAAF의 212국보다는 적다. 하지만 IAAF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월드컵 대회 하나만 달랑 운영하면서 FIFA가 초우량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개최지결정권’과 ‘TV중계권’, 그리고 ‘공식후원권’때문이다. FIFA는 이 세가지 권력을 활용하여 전세계 국가, 미디어, 기업들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린다. 보유 현금자산이 무려 15억 달러라고 한다. 사실 월드컵은 별거 아니다.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일 뿐이다. 하지만 FIFA는 이 월드컵을 세계가 열광하는 스포츠 축제, 올림픽을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로 키워냈다. FIFA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이다.

마케팅의 성패는 전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밑바탕이다. 월드컵이 인기가 없으면 ‘개최지결정권’과 ‘TV중계권’ ‘공식후원권’도 모두 휴지조각이다. 따라서 FIFA는 이 월드컵의 인기를 유지하는 게 지상의 목표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똑 같이 4년만에 한번 개최되는 대회이지만 넘버원 이벤트는 단연 월드컵이다. 참가국수나 규모면에서 월등한 올림픽이 왜 마케팅효과 차원에선 단일종목 대회인 월드컵에 뒤질까? '사람들의 관심'이 올림픽에 비해 월드컵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아무나 못 나간다
FIFA의 첫 작품인 1930 월드컵은 예선도 없이 13국만이 본선을 치렀었다. 그러다 예선이라는 걸 도입한 1934월드컵에서 무려 32개국이 참가했으며 1954월드컵에는 45국, 1958월드컵 56국, 1966월드컵 74국, 1974월드컵 99국, 1978월드컵 107국, 1986월드컵 121국, 1994월드컵 147국, 1998월드컵 174국, 2002월드컵 199국을 거쳐 이번 월드컵 예선에는 204국으로 드디어 200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늘어난 예선 참가국에 비해 본선 출전국은 1978년까지 16개국, 1994년까지 24국, 1998월드컵부터 겨우 32국으로 병아리 눈물만큼 확대됐다.

올림픽과는 차원이 다르다. 참가 의사와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참가할 수 있는 올림픽과는 관심차원에서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올림픽의 경우엔 평소에 거의 잊고 지내다가 대회 직전에야 관심이 일어나지만 월드컵은 다르다. 경쟁이 심해진 만큼 월드컵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대회 지역 예선이 시작되는 구조다. 월드컵이 올림픽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잡은 결정적인 이유다. 끝없는 관심.


FIFA의 노이즈 마케팅
그리고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FIFA의 노이즈 마케팅이다. 대륙별 개최지 선정, 대륙별 본선 티켓숫자로 항상 논란을 일으킨다. 2002년 과열경쟁을 유도시켜 한국과 일본에 공동개최권을 준 것도 그렇고, 대륙별 티켓숫자로 항상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열받게 만드는 것도 그렇다. 유럽과 북중미엔 왜 그렇게 많은 티켓을 주느냐, 왜 호주가 아시아로 붙었느냐..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과 북한, 호주를 열렬히 응원하는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 아시아 티켓숫자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고, 그래야 우리나라가 다음 월드컵에 나갈 기회가 넓어지니까. 우린 FIFA의 이런 작전에 놀아나 흥분하고 열받고 열광한다. 나도 그중의 한명이다.

이런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에 ‘오심’도 있다. 아무리 돈을 써도 거둘 수 없는, 그래서 FIFA가 결코 버릴 수 없는 엄청난 마케팅 성과가 나는 것이다. 한번 오심이 있고 나면 해당국가는 물론 전세계 언론이 들썩인다. 하지만 이거 FIFA가 바라던 바다. 월드컵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티비앞에 불러 모아 오심논란에 같이 참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축구리그가 고사하든 말든, 전세계 축구팬이 FIFA를 성토하든 말든, FIFA는 월드컵의 인기만 유지하면 된다. 그것만이 지상의 과제이다.


이래저래 우린 월드컵에 빠져든다. 거리를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붉은악마의 지도아래 열맞춰 구호를 외치며 열광한다. 4년을 기다려 온 월드컵에 열정을 쏟아붓는다. 집단광기라고 흉이 잡혀도, 군사국가에서나 보는 스포츠 애국주의라고 탓을 당해도 우린 월드컵에 열광한다.

참 놀라운 FIF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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