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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고? 천만에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걱정 마. 궁즉통이라고 했어. 궁하면 통하게 되어있어’

나도 이 말을 자주 썼었습니다. 절처봉생이니 궁즉통이니.. 둘이 서로 비슷한 말인줄 알았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일요일, '제빵왕 김탁구'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 말을 원뜻과는 전혀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팔봉선생이 제자들에게 말하던 중에 이 '궁즉통'과 비슷한 말을 인용한 거였습니다. 궁즉통 통즉변 변즉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예전에 성철스님 때문에 유명해졌던 말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당연하디 당연한 이 법어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선사들은 알 수 있을까요? 천만에. 아무리 부처라도 이 말만 가지고선 무슨 뜻인지는 모릅니다. 이글이 도대체 어떻게 튀어나온 말인지 앞뒤 주변의 문장이 더 있어야만 이 말의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은 이거였습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山是山 水是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山不是山 水不是水)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다 (山是水 水是山)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山是山 水是水)

근데 여기서 중간부분을 떼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만 알려졌던 거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이 평범한 말에 대해 해설이 무성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이라느니,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라는 말이라느니, 불교의 가르침이란게 원래 이딴식으로 쓸데없는 말장난이라느니.. 


하지만 잘려나간 앞과 중간의 말을 같이 들여다보니 뭔가 감이 좀 잡히는 것 같습니다. 심오한 뜻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무차별’의 경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 하는 말 ‘색즉시공 공즉시생.. 생과 사가 다르지 아니하고..’ 이런 말들과 비슷한 맥락의 말. 물론 우리 같은 범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경지의 말은 아닙니다. 




'궁즉통' 기다리다 '궁즉멸'할 수도
‘궁즉통’도 이 경우와 비슷합니다. 말의 앞뒤를 떼어 버리곤 원래의 뜻과 전혀 다른 의미로 이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이 말의 원류는 주역의 계사하전(繫辭下傳)이란 곳에 있었습니다.

易窮則變,變則通,通則久. 通變則無窮,故可久也.

보시다시피 원전엔 ‘궁즉통’이란 말 자체가 아예 없다. 중간을 잘라내고 앞뒤를 갖다 붙여 멋대로 만든 말이 ‘궁즉통’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 엉터리 조어로 주역을 운운하며 ‘세상일이란 궁하면 저절로 통하게 되어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인 겁니다.  

위 원전을 해석하면.. 세상의 이치란 궁극에 달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통하게 되며, 통해야만 오래 간다. 이렇게 변하고 소통하면 궁함이 없는 상황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즉 바꿔말하면 ‘궁하면 스스로 변해야 하고, 그렇게 자신이 변해야 비로소 통하게 되어 궁함을 면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던 '궁즉통-궁하면 통한다'와는 의미가 천지차이입니다. ‘변화’라는 중요한 중간단계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궁하면 저절로 통하게 된다’는 인식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궁즉통'을 믿고 상황이 변하길 기다리며 나태하게 굴다간 대개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궁즉멸’할 수도 있는 겁니다.

‘주역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공자님이 주역을 가르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자기성찰’이었다고 합니다. 왜 주역을 가르치면서 자기성찰을 강조했을까요? 주역은 세상의 이치인데.. 공자가 그랬던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안다해도 스스로의 노력이 없거나 오해가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가르치려는 것이었겠습니다. 



청년에게
그렇다면 '궁즉변'의 변은 무엇이 변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국제경기? 국내경제상황? 부동산시장? 상대방의 마음? 아닙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봅니다. 곤경에 처했다면 마음부터 변해야 하는 겁니다. 

이십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그리 ‘어려운 시기’에 있지 않고, 다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걱정하는 건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전혀 변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직 궁의 상황이 아닌데 그는 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바심을 냅니다. 근데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변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변 상황이 바뀌기만을, 자꾸 어디로 떠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아마 '궁즉통'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봐야 본인이 변하지 않는 한 자신이 처한 상황은 결코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니 나아지지 않는 정도가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았던 상황이 '주관적으로' 더욱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가 몇번 거듭되면 젊은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자신감'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잃으면 희망도 잃기 쉽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굳이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여기고 있다면, 그가 명심해야 할 이치는 '궁즉변'입니다. 즉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가짐부터 변화시켜야 하는 겁니다. 마침 그 기회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 기회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꾸 어디로 떠날 생각만 하고 있답니다. 

궁이 아닌 상황을 진짜 궁으로 몰아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