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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조기은퇴 1 - Work Hard, Retire Young!

Work Hard, Retire Young!
한적한 시골 고속도로를 달리다 앞서가던 낡은 픽업트럭의 뒷 유리창에서 봤던 글귀다. 열심히 일해서 일찍 은퇴하겠단다. 빙긋 웃고 지나쳤었지만 차를 달리는 내내 이 말이 머리에서 맴돈다. 아직 은퇴라는 걸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왜 이 말이 머리에서 털어지질 않지?


인생이란 눈산을 오르는 것
군대시절, 동계훈련 기간 중 높은 산 위에 텐트를 치고 있다가 밥을 가지러 산 밑으로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눈이 몹시 많이 쌓여있었지만 그래도 목적지까지 별로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문제는 올라가는 일이었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데도 중간에 조금이라도 헤매면 전혀 다른 능선을 타고 다른 봉우리로 향하기 일쑤였던거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밑으로 다시 내려와서 다시 올라갔어야만 했었는데..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능선.. 다시 내려가서 새로 시작.. 이러길 몇차례, 지치기 시작했다. 

밥 안온다고 아우성일 고참들이 떠올랐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중간중간 수도 없이 확인하며 올라갔다. 꽤 높이까지 올라와서 알았다.. 또 아니다. 

근데 너무 높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그곳에서 우리 텐트가 있는 곳을 직접 겨냥해서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아보였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는 줄 알았다. 눈이 허리만큼 쌓인 계곡을 건너 '밥통을 짊어지고' 산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게 힘들었다. 초죽음이 되었었다.

이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수도없이 확인하며 길을 올랐는데도, 가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채 다른 능선, 전혀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 되는 이 황당함.. 오십즈음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이걸 거다.

그간 지나온 인생이라는 것이 바로 이 눈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다는 거. 무심하게 발 한번 잘못 딛은 걸로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생각지도 않던 일을 하며 살게되더라는.


지천명
몇살쯤 되면 사람이 가장 높은 고지에 오르게 될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대개 나이 쉰 무렵이 아닐까싶다. 그 무렵이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대개 자기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지의 언저리 즈음에 있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 인생의 정점이 바로 그곳이라는 얘기다. 나이 쉰은 분발해서 더 높은 곳에 오르거나, 새로운 걸 시작하기는 너무 늦은 나이인 것이다. 

그러던 차에 문득 눈을 들어 다른 곳을 보니 사람들이 열심히 오르고 있는 다른 고지들이 보인다. 그중엔 내가 올라가고 싶었던 고지도 있다. 저기로 갔어야 했던건데.. 하지만 다시 내려가 새로 오르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산허리를 가로질러 가기엔 너무 지쳤다. 그냥 가던 길로 가는 수밖엔 없어보인다. 하지만 내가 가던 길엔 더 이상 올라갈 데도 별로 없는데다가 끝까지 가봐야 별로 대단한 희망이나 인생역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나이가 비슷한 어떤 놈은 벌써 미국 대통령까지 해먹고 있는데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원.. 늦었구나. 이제 뭘 하든 내 인생에 달라질 게 별로 없구나..

나이 쉰이면 지천명이라고 했다. 知天命, 하늘의 뜻(命)을 안다니 이거 무슨 뜻일까? 사람들은 이 말이 나이가 쉰살 쯤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통달하게 된다는 뜻으로 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실제론 간담이 서늘해지는 무서운 말이다. 그 나이가 되면 비로소 제 팔자를 현실로 인정하게 된다는 말, 즉 그 나이에 비록 ‘한 끗발’ 올리지 못하고 있더라도 이제 포기하고 살라는 얘기다. 자기 주제를 알고, 분수를 알게 된다는 얘기, 더 확실하게 와닿게 말하면.. 나이 쉰에 비로소 지 꼬라지를 알게된다는 얘기.


조기은퇴
그래서 Work Hard, Retire Young! 이 머리 속을 맴도는 거였다. 내가 이 나이에 언어 불편한 미국에서 해봐야 뭘 더 이룰 수 있겠는가. 하는일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돈이 안벌려도 그 일을 꼭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루고 싶은 원대한 목표가 아직 있어 의욕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떱떠름했지만 이거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래! 바짝 열심히 일해서 일찍 은퇴하자. 그리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통나무 흙집 짓고 살자. 내 입으로 들어갈 거 웬만하면 내가 다 심어서 키우고, 부지런한 개들 따라다니면서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자. 하지만 그렇게 자연을 벗삼아 뛰어 노는 것도 재미나겠지만 계속 그렇게 한적하기만 하면 좀 심심하기도 하겠다.

집 마당에 초경량 항공기 띄울 2백미터짜리 활주로도 내고, 호수에 젯스키도 띄워놓고, 뒷산에 눈썰매장도 만들어놓자. 가끔 사람들 모여 음악회도 열고,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해외여행 댕기자. 이렇게 재미난 전원생활 하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블로그에도 올려 사람들과도 나누자.

그래 이런 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해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거 다 해보려면 무릎 튼튼하고 팔다리 힘이 좋아야겠다. 그래.. 이제 어느정도 知天命 했으니, 욕심 버리고 Retire Young 하기로 하자.

근데.. 현실적으로 얼마 가지고 언제?


→ 조기은퇴 2 – 현실적으로도 꿈 꿔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