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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당신 진짜 골프가 재밌어서 치나?

나 이거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나 몰라
골프에 열중이던 한 남자가 근처에 지나가는 장례 행렬을 보더니 갑자기 모자를 벗고 묵념을 하더란다. 동료들이 의아해 물으니 ‘자기 마누라의 장례’라 예를 갖춘 거였단다.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온다는 조크다. 미국에 사는 한인 중년 남자들중엔 실제로 주말의 골프모임 때문에 일주일을 버틴다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골프는 취미나 운동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다. ‘나 이거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나 몰라..’ 이들의 '골프예찬'은 끝이 없다. 골프장이 널려있는 미국에선 아주 흔한 얘기이며 당연한 얘기다.


한국에서 골프치기
얼마전 한국의 친구에게 한국시간 토요일 오전에 전활 했는데 마침 골프장이란다. 동반멤버들이 모두 동창들이고.. 그래서 돌아가면서 그들과도 통화를 했다. 면면이 그런대로 화려하다. 다들 대기업 임원들이시란다. 근데 가장 궁금한거.. 돈은 누가 내지?

한국에서 골프족이 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한번 나갔다오면 최소 삼사십만원은 족히 깨질거다. 반나절 놀고 들어오는 운동으로는 과격하게 비싸다. 내기골프라도 친다면 여기에 몇십만원이 더 추가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골프는 웬만한 직장인이 자기 돈내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런데도 친구들과 골프를 치는 내 동창들.. 물어보니 경비는 ‘각자 부담’이란다. 그렇다면 이거 여간 금전적 부담이 아니다. 친구들과 일요일 반나절 놀면서 몇십만원.. 자식새끼들 뒷바라지에 등골이 휘고 있을텐데 이정도 금액은 상당한 출혈이다. 물론 회사의 임원들이시라니 나중에 알아서 정리한다면 모를까. ㅋ


골프가 재밌었나? 아니다. 그냥 폼잡았던 거였다.
나는 ‘운이 좋아’ 30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골프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내게 권하던 사람이 하나 있었지만 기회가 닿질 않아 시작은 못하고 있던차에 업무를 빙자해서 시작하게 된거다. 하지만 화려한 건 아니었다. 일요일 새벽 3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동반 라운딩할 사람들 집으로 차례대로 가서 태우고 골프장에 도착해서 라운딩하고, 그들이 맥주로 뒷풀이 할 때 콜라 마시면서 버티다가 한사람 한사람 집까지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던 '운짱' 신세였지만, 그래도 난 그게 더할나위 없이 즐거웠다. 골프를 친다는 것만으로 꿈만 같았던 거다. 당시 한국의 유명 골프장엔 내 또래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클럽하우스에서 내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곤 했었다. 저 새파란 색끼는 뭐야?.. 골프장에 드나 든다는 건 내게 가슴 벅찬 자부심이었다.

틈만 나면 아도 주변사람들에게 골프를 권했었다. ‘처음 육개월정도가 고비이지 그 산만 넘으면 오입보다도 백배는 더 재밌는 게 골프’라고 떠벌이고 다녔었다. 입만 열면 골프얘기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이틀동안 72홀을 연속으로 돌았는데.. 골프는 말이지 인생의 축소판이란다..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하지만 이건 권유가 아니었다. 유치하기 짝이없는 과시욕이었다. 내가 골프를 하고 있다는 걸 자랑하기 위한 허세였던 거다. 당시 100을 겨우 깬 주제에 골프가 그렇게 재미있을 턱이 없었다. 무슨 운동 좋아하냐고 누가 물으면 난 최대한 겸손한 척 하면서 ‘골프와 스키’라고 대답했었다. 돈이 없어 자주 하지도 못하면서 대답은 그렇게 했었다. 그러면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게 더 재밌어요?’ 그러면 나는 늘 '골프가 더 재밌다'고 대답했었다.


근데 당신은 골프가 진짜 재밌나?
근데 이거 거짓말이었다. 실제론 골프가 그렇게까지 재미있진 않았었다. 오히려 스키가 골프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물론 골프가 재미없는 건 아니었지만 골프에서 중요한건 재미가 아니라 허세였다. 미국에 와서 보기플레이를 하는 동안에도 솔직히 미치도록 재밌진 않았다. 하지만 말은 언제나 '정말 재밌다'고 했었다. 물론 이 글을 읽는분 개중에는 '니 실력으론 당연히 아직 골프 재미를 모르지' 이러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과연 그럴까?

솔직히 대답해보자. 당신.. 골프, 이거 진짜 ‘재미있어서’ 치나? 당신이 미국이나 호주에 사는 분이 아니라면, 아마 대부분 한국의 평범한 중년 골퍼들의 솔직한 대답은 No 일 것이다. ‘접대를 위해, 인맥을 쌓기 위해’ 이거나 그게 아니면 ‘폼나 보이려고, 기죽지 않으려고’ 무리해가면서 쫓아다니는걸 거다. 골프를 해야 '성공한 남자'소릴 들을 것 같아서 그냥 따라하는 걸거다.

물론 골프가 정말 재밌다는 사람들도 실제로 많다. '90 깨면서 돈 잃고, 80 깨면서 직장 잃고, 70 깨면서 가족 잃는다'는 말처럼 골프에 심각하게 빠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겐 골프가 진짜로 재미있을거다. 골프가 이렇게 재미있는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공도 치는데 이깟 땅바닥에 가만있는 공 치는 거야..’ 이렇게 쉽게 시작했다가 평생을 공부하고 연습하며 투자하게 되는 게 골프다. 그래서 '그동안 한게 아까워서.. 지기 싫어서..' 이러다 골프에 중독된다.

난생 처음으로 파3홀 티샷이 백스핀을 먹고 홀컵쪽으로 거꾸로 굴러오던 날.. 난 그날의 감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 나도 이게 되는구나..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싱글이 되겠구나.. 아마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단계 올라섰을 때의 그 희열. 

하지만 골프는 언덕을 올라가는 리어카 같아서 앞으로 밀지 않으면 바로 뒤로 밀린다. 즉 연습하지 않으면 골프는 바로 망가진다. 이렇게 되면 재미는 커녕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래서 매일 레인지에 가서 두어 빠께스 공을 치고 일주일에 한번이상은 꼭 필드에 나간다. 골프가 재미있다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평범한 당신은 아니다. 일년에 서너번 나갈까 말까한 당신에게 골프는 그 정도로까지 재미있지는 않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치는 동안 망가진 골프실력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설령 치는 동안엔 재미있다고 느끼더라도 재미에 비해선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 아깝다고 생각한다.


골프가 재미없는 사람도 있다
골프가 재미있는 사람도 있지만, 골프에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아무리 재미를 붙이려 노력해봐도, 스코어가 보기를 넘어 싱글로 향하고 있어도, 여전히 골프의 재미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야구나 농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한다고 전국민이 다 좋아해야 하는 건 결코 아닌 것이다. 해야 한다니까, 또 업무적으로 해야 하니까, 골프를 해야 폼이 좀 난다니까.. 재미는 없지만 이렇게 억지로 골프를 치는 사람도 많다. 끌려가듯 골프장에 나가는 사람도 많다.

남자가 담배도 못피우냐? 남자가 술도 못 마시냐?.. 젊은시절 남자들이 숱하게 하는 말이다. '중년남자라면 꼭 골프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이와 똑같다. 재미도 모르면서 남들 따라 골프를 찬양하는 건 마초의 강박관념일 뿐이다. 골프를 치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히 멋지고 훌륭하다.


스트레스 투성이, 골프
골프란 스포츠는 너무 비싸다. 회사의 회원권과 경비처리가 없다면 한번 출혈로 한동안 고생해야 하는 초귀족 스포츠다. 내 돈을 내고는 기껏해야 일년에 서너번 마지못해 나가는 정도일 거다. 그리곤 한동안 그 출혈로 고생하고. 서로 말로만 ‘공한번 쳐야지’ 해놓고 누가 나서서 약속잡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골프치러 나가는 날엔 마누라 눈치보이고.. 이거 현실아닌가?

또 중년의 남자들, 연습 자주 못하고 몸마저 투실투실해지면 스윙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팔만 가지고 스윙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예전에 티비에서 보던 김종필이나 김영삼의 엉터리 스윙을 닮아간다. 물론 ‘자기 폼은 안 그런 줄’ 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터놓고 서로 얘기해 보라. 당신도 분명히 김종필 김영삼의 개폼을 닮아가는 중이다. 끊임없이 코치에게 교정을 받지 않는 한 아마추어 골퍼는 망가지는 폼을 피할 수 없다. 머리는 타이거우즈인데 몸은 김영삼인 거다. 이건 구력이 쌓일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교정자체가 아예 불가능해 진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연습도 안하고 개떡같은 폼으로 칠바엔, 오로지 구력으로 스코어만 유지하면서 칠 바엔.. 아예 안치시는 게 좋겠다. 이런 우스꽝스런 중년 남자들이 '골프를 예찬하며 찬양하며' 필드에 몰려다니는 건.. 다른 사람들에겐 심각한 시각적 공해다.ㅋㅋ

또 골프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어깨와 팔꿈치와 허리의 부상위험이 잔뜩 있는 위험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둔한 몸 생각지 않고 멋진 피니쉬를 하려다간 허리나 어깨가 바로 나간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번 다치면 최소 육개월은 고생해야 한다. 몸이 아프니 운동을 더 못하고. 그러다보니 몸은 더 둔해지고.. 악순환이다.

한국인들에게 골프는 경쟁해야 하는 스포츠다. 몇개 치세요? 물으면 자기의 역대 최고성적이 평균 스코어인양 얘기한다. 라운딩을 하면서 끊임없이 상대방과 나를 비교해야 한다. 상대방 샷이 좋으면 박수를 쳐주지만 속이 쓰리다. 돈이 걸린 퍼팅에선 가슴까지 조여온다. 샷이 망가진 날엔 골프채를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장 레인지 티켓을 끊고 스윙교정에 들어간다. 집착이다.

이렇게 골프장에 나갈 때마다 따라오는 마누라 눈치걱정, 돈 걱정, 스코어 걱정, 망가진 폼 걱정, 부상 걱정.. 비록 골프가 재미있고 폼은 나는지 몰라도 그에 수반하는 스트레스와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굳이 비싼 돈내고 이렇게 스트레스 감내해 가면서 해야 할 만큼 골프가 당신 인생에 중요한가? 골프가 그렇게 재미있나?


골프에서 벗어나자
아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의 골프'는 그 정도로까지 재미있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또 골프장 나가는 게 경제적으로 버겁다면.. 이제 과감하게 골프에서 벗어나보자. ‘골프 하세요?’ 이렇게 누가 물으면 ‘요즘은 어깨를 다쳐서 못합니다’ 해버리고 그냥 썰만 풀자. 홀인원을 몇번 할뻔 했었네, 이글은 수도 없이 잡고, 알바트로스도 한번 잡을뻔 했었네, 한때 전성기 땐 싱글도 쳤었네.. 증명해야 할 필요없으니 이거 얼마나 편한가?

매일 레인지에서 코치와 연습하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필드에 나간다면 모를까.. 일년에 겨우 서너번 필드에 나가는 정도라면 굳이 골프에 코가 꿰여있을 이유가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라. 골프를 꼭 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는 것은, 담배나 술을 남자의 필수자격쯤으로 여기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하면서, 남들이 좋대니까 나도 좋은 줄로 알면서.. 이런 거다.

골프는 성공한 중년남자의 필수스포츠가 결코 아니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여러가지 스포츠중의 한가지일 뿐이다. '그래도 한국에선 골프를 해야.. 골프를 못치면 비지니스가 안돼서..' 이 착각.. 당신부터 빨리 털어버려라. 세상엔 골프 말고도 할게 너무나 많고, 세상엔 골프를 치지 않는사람이 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무거운 짐 내려놓듯, 골프.. 인자 고마하자. 적어도 한국에서는. 
은퇴가 낼모레인데.. 돈 아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