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들

오늘 아침, 차를 세우고 주차장에서 걸어오는데 빌딩 현관쪽에서 남자들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와서 보니 70대 남자와 40대 남자가 현관 앞에서 다투고 있다. 아침 7시 15분, 이 이른 시간에 이 두 남자 왜 이러는 걸까? 빌딩 앞 도로에 자동차 한대가 비상등을 켠 채 세워져 있길래 접촉사고 때문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매일 새벽 신문사에서 빌딩 현관에 놓고가는 '신문' 때문이었다.

70대 노인이 자동차를 타고 와서 그 신문을 몰래 뭉텅이로 가져가는 걸, 빌딩 입주자인 40대 남자가 출근길에 본 모양이다. 한두 부라면 모른 척 했겠지만 너무 많이 가져가자 ‘이 건물 사람들 보라고 신문사에서 갖다 놓은건데 그렇게 왕창 가져가시면 되겠냐’고 한마디 했을 거고, 그러자 이 노인네 ‘이게 어찌 이 건물 사람들만 보라는 신문이냐, 아무나 보라고 갖다놓은거지’ 이러면서 시비가 붙었던 듯.

근데 그 40대 남자.. 내가 조금 아는 사람이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고 인사도 공손하게 잘 하는 사람이다. 절대로 길거리에서 다른 이와 다툴 사람이 아니다. 반면 70대 노인.. 교양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무대뽀 ‘가스통 할배’의 전형적인 얼굴이다. 그 둘간 시비의 발단이 어땠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아니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가져가면 어떡해요?’
‘이 신문이 니꺼냐?’

존댓말과 반말이 명확히 구분된 한국어, ‘무대뽀’ 연장자는 아랫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바로 '반말'을 해버린다. 그러면 존댓말을 쓰던 아랫사람도 노인네의 반말에 열 받아 말투가 슬슬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그에 더욱 열받은 노인네는 더 심한 말과 욕, 대표적인 언사가 ‘이 새꺄 니 에미애비가 이렇게 가르치더냐?’.. 이정도 되면 아랫사람도 참다참다 반말을 하기 시작하고.. ‘후레새끼 넌 에미애비도 없냐’.. ‘나이 쳐먹은 게 자랑이냐’.. 뻔하디 뻔한 스토리보드다.

싸움이 끝난 현관..
노인이 집어 던진 흙으로 온통 난장판이다.

---

그래. 상황이 뭐였든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맞다. 하지만 말이다..

어렵사리 갖추던 예의를 버리게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 많다. 미국에 사는 한인 노인들중에 특히 이런 노인들이 많다. '무식했던' 노인들이라도 간접교육을 계속 받으며 조금씩 '교양이 보이는' 노인으로 개선되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선 '무식했던' 노인들이 미국에 오는 순간 모든 것과 차단되며 모든 계발이 딱 멈추기 때문에 사는 내내 '여전히 무식'하다. 게다가 거기에 어줍잖게 미국물까지 잘못 들었다. 냄새나는 생선에 가짜 향수를 뿌린 격이다. 보기에 딱한 정도를 넘어 역겹다.

그들의 무교양 무도덕은 눈 뜨고 보기 힘들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손발이 오그들 정도다. 그들에게 공중도덕이나 예의범절은 없다. 아니 그런 ‘개념’자체가 아예 두뇌에 입력된 적이 없다. 그들에게 '배려'를 기대하는 건 김정일이 스스로 권좌를 내어놓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무망하다.

소위 한인사회 지도급인사라는 자들도 다르지 않다. 자칭 올드타이머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무식한데다 욕심이 과해 노망이 난' 늙은이들이다. 한인회, 노인회, 평통.. 무식하고 욕심많고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들의 패악질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미국땅에서 한국인 이미지에 똥칠을 하는 대표선수들이다.

학교공부를 하지 못했던 건 절대 허물이 아니다. 아무리 無學이었어도 인생을 살면서 충분히 有識해져 아름다운 분 참 많다. 일부 무식한 채 남아있는 노인들.. 좋다. 너무 먹고살기 힘들어 그렇게 無識한 거라 치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노력은 했어야 했다. 만약 노력도 힘들었다면 최소한 그걸 부끄러워하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들은 이런 걸 전혀 모른다. 오히려 낫살을 드실수록 기세가 더욱더 등등해 진다. 무식해서 점점 더 용감해 진거다. 정상적 교양을 가진 사람들이 감당해 낼 수 없다. '차라리 치매로 누워있는 것이 더 보기 좋을' 역겨운 이 늙은이들을 어찌 당해낸단 말인가.

---

마음을 가다듬는다. 좋은 반면교사 아니신가. 나 자신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깊은 산 샘물이나 한여름 산위에서 부는 바람같은 어른, 말씀을 듣노라면 마음 깊은 곳에 땡- 하고 종소리가 나게 하는 어른, 절제된 경륜으로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는 그런 어른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