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미국 Asian들의 복잡한 인종 정서

'사람 좋은' 멕시칸
‘한인보다 멕시칸이 더 편하다’ 많은 한인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멕시코인들을 만만하게 얕잡아 본다는 뜻이 아니다. 화난 인상과 퉁명스런 말투에 무례한 한인들보다는 ‘사람 좋은’ 멕시칸들을 상대하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한인들에게 시달리던 한인업소들중에 영업의 주 타겟을 아예 히스패닉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

물론 언어장벽때문에 '필요한 말'만 하기 때문에, 또 인종이 다르니 매사에 서로 조심하기 때문에, 또 한인과 그들과의 관계가 대부분 보스와 직원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걸 감안하더라도 멕시코인들이 우리 한인들보다 훨씬 낙천적이고 순수하고 밝다는 것은 확실하다. 무뚝뚝한 사람보다 인사 잘하고 잘 웃는 사람을 편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히스패닉은 분명히 우리의 좋은 친구이며 소중한 고객이다.


이율배반
나는 예전부터 약자와 장애인에 대해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뭐 대단한 이념이나 신념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의리의 돌쇠’성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강자에 머리 숙여선 안되고, 약자는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ㅋㅋ 따라서 미국에 온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약자인 멕시코인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도와줘야 할 사람들..

근데 몇 년전 사무실을 지금 이 곳으로 옮기면서 이 생각이 조금 흐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층에 ‘라티노 장애인 권익단체’가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 직원도 장애인이고 그 외 수많은 라티노 장애인들이 그 사무실을 방문한다. 약자, 장애인들과 매일 직접 부딪히며 생활하게 된 것이다.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싱크는 설거지 찌거기로 툭하면 막히고, 음식물 쓰레기로 꽉 찬 휴지통에선 휴지들이 넘쳐나 바닥에 널려있고, 대변기 주변엔 ‘사용한’ 휴지들, 바닥 배수구에 소변을 보고 물로 씻어 내리질 않으니 악취가 코를 찌르고..

‘몸이 많이 불편한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라고 생각하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청소를 했다. ‘더러우면 더 더럽게 사용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 이기 때문에 그래서 늘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하지만 이 기특한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 띠바새끼들.. 몸이 불편한거야 머리가 불편한거야..’

그랬었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약자 장애인에 대한 애틋한 생각은 ‘그들이 가깝게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히스패닉계에 대한 생각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좋은 친구이고 소중한 고객인 것은 그들이 우리와 일정부분 떨어져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동네로 그들이 우루루 이사를 오거나, 그들이 우리와 경쟁관계가 되거나 혹은 우리보다 앞서나가게 된다면.. 우리가 히스패닉계에 가졌던 좋은 이미지는 사라지게 된다.


우린 멕시코 최하층 빈민들을 본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일부 어글리 코리안들.. 이들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인종을 구분한다. ‘백인은 우리보다 위, 나머지는 무조건 우리보다 아래’다. 그래서 백인들에겐 비굴하게 굴면서 타인종들은 함부로 대한다. ‘깜둥이새끼, 멕작년’과 같은 나쁜 단어가 입에 붙었다.

일부 몰상식한 한인들 중에는 아직도 히스패닉 종업원을 하인이나 종 부리듯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영어도 못하고 신분도 불법인 그들의 약점을 처절하게 이용해 먹는 것이다. '멕시칸들은 천부적으로 게으르고 무책임해서 조져야 한다'고 말한다. '근데 힘은 쎄서 막일시키는 덴 최고야'라고 말한다. 천성적으로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해서, 돈이 조금만 모이면 그 돈 다 쓸때까지 일 중단하고 먹고 마시고 논단다. 버는 돈의 대부분을 그렇게 먹고 마시고 노는 데 쓴단다.  미래가 없는 애들이란다.

물론 실제로 흑인과 히스패닉계에 이런 아이들이 있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우리 한인들을 자기들보다 위로 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결코 아시안 인종을 자기들보다 우월한 인종이라 생각지 않는다. 원숭이 같은 체구에 못생긴 얼굴, 수학을 잘해서 돈만 잘 버는 수전노라고 여긴다. LA 흑인폭동의 시발은 분명히 흑백간의 인종갈등이었다. 근데 정작 불똥은 한인들에게 튀었었다. 흑인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히스패닉계도 한인에 대한 공격에 가담했었다. ‘조또 아닌’ 한인들에게 당한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이다.


아시안은 넘버투?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우리가 보는 멕시칸들이 멕시칸의 전부인 것으로.. 하지만 아니다.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연간 50만명의 멕시코인은 그 나라에서 최하 빈민층들이다. 즉 제일 못 배우고 가난한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해서 들어오는 것인데, 우린 그들을 보면서 ‘멕시코인들이 다 저럴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는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영토와 인구는 물론 경제규모도 우리보다 훨씬 큰 나라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우리가 두배 정도 많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서 먹고 살기 어려운 최하층 빈민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우리가 '부리며 무시하는' 멕시칸은 모두 그들이다. 

한인들은 이런 히스패닉계의 존재로 인종적으로 덕을 본다고 생각한다. ‘백인 - 아시안 - 히스패닉 - 흑인’이라는 인종 서열을 멋대로 정하고 스스로를 상위그룹의 인종이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즉 오야붕은 아니지만 밑에 꼬붕을 둘이나 둔 '넘버투'라는 착각. 히스패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자리다.

(물론 인종에 따라 우열을 따지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여러 인종이 섞여사는 곳에선 어쩔 수 없이 이런 바보 같은 짓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것이 잘못된 선입관이든 잘못된 편견이든 사람들은 인종으로 우열을 나누게 마련이다)


백인들에 대한 열등감
‘우리 동네엔 우리 집 하나 빼곤 전부 백인들이예요’ 자기 사는 곳을 설명할 때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거 여러가지 의미다. 먼저 ‘한인촌에 안 산다’ 라는 뜻이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나 촌스런 한인촌에서 살지 자기처럼 세련된 사람은 그런 데서 안 산다는 얘기. 또 ‘동네가 깨끗하고 안전하고 조용하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진짜 핵심사항 ‘우리동네는 비싼 동네다’라는 뜻이다. 집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팩터중의 하나가 바로 동네 이웃들의 인종분포이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얘기지만.. LA 주택가의 변천은 이렇단다. 백인들이 살던 마을에 한명두명 한국사람들이 들어오면 백인들이 슬슬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시작하고, 그러면 집값이 떨어져 한인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그러다가 이번엔 그 동네에 히스패닉이 한명두명 들어오기 시작하면 한인들이 이사 가기 시작하고, 그러면 집값이 더 떨어져 히스패닉들이 점령하고.. 히스패닉들이 점령한 동네는 다른 거 다 떠나서 일단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다만 좀 멀리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가능하면 백인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가길 원한다. 백인들의 외모와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다. 쌍커풀을 만들고, 광대뼈를 깎고,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다. 그들처럼 먹고, 그들처럼 집을 꾸미고, 그들처럼 행동을 하려 한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오는 걸 싫어하고 있는데 그 속도 모르면서 ‘맘씨 좋은’ 백인 이웃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 ‘우리 동네엔 우리빼곤 다 백인들이예요’ 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넘버투 아시안이 흔들린다
어쨌든.. 자신들이 넘버투라는 아시안들의 이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멕시칸 중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소위 치카노)을 상대하다 보면 지금껏 가지고 있던 히스패닉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깨지며 오히려 움찔해지기까지 한다.

우리가 히스패닉계라고 부르는 인종은 상당부분 스페인계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들이다. 따라서 체격과 외모에서는 아시안들보다 ‘보기에’ 좋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거 엄연한 사실이다. 체격면에서 황인종들은 사실 꼴찌다. 백인종 흑인종 히스패닉을 따라갈 수가 없다. 외모에서 그나마 흑인종들 덕에 꼴찌를 면하는 정도다.

비록 겉으로 드러내 말하진 않지만 외국의 한인들이 만약 인종적으로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의 9할은 체격과 외모에서 오는 콤플렉스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경제력이 있고, 우리 민족이 머리가 좋고 기술력이 뛰어나고 문화적으로 우수한다 한들, 아무리 그래도 외모에서 오는 콤플렉스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자존심때문에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근데 우리가 좀 무시하는 히스패닉계.. 속상하게도 체격과 외모에서 그들이 우리보다 ‘괜찮다’. 어떤 혼혈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가 쭉쭉빵빵에 이목구비도 또렷한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한인들 중에 이들 히스패닉 이성과 동거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속이 좀 상하지만 그들이 체형면에서 우리보다 낫다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그들에 비해 우등하다고 여기고 있는 건 경제력과 교육열인데, 만약 그들이 교육에 열심이고 그에 따라 장기적으로 경제력도 상승한다면? 그렇게 성장한 히스패닉들의 숫자가 계속 많아진다면? 아니 이건 만약이 아니다. 실제로 주변에는 엄한 부모밑에서 제대로 교육받아 번듯하게 성장한 히스패닉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다. 그들에게선 가난한 멕시코 밀입국자의 비참한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세련된 매너와 외모, 철저하게 미국화된 생활습관.

이쯤 되면 스스로를 ‘인종 넘버투’라고 자위하던 아시안들의 자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에게까지 멸시당하는 처지로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넘버쓰리'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생긴다.

그들이 있어서 넘버투였는데 어쩌면 그들로 인해 넘버투 자리가 흔들 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아시안들의 심경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