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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마당에 전갈!

전갈 1
90년대 초중반, 요르단 중부 황무지 사막지대, 사방 한시간이내엔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 국내 모 회사의 유전개발현장에서 CF 촬영.. 감독 왈, 이곳이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를 표현하기 위해 전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전갈이 기어가는 땅으로부터 멀리 시추봉을 찍겠다는 거다. 근데 전갈을 어디서..

전갈은 베두인(Beduin)족에게 부탁해서 얻기로 했다. 며칠 전 베두인 족 텐트에 놀러갔다가 그들이 아주 쉽게 전갈을 잡는 걸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갈 잡는 법은 아주 간단했다. 전갈이 숨어있는 구멍에 물을 조금 부으면 이삼초후에 전갈이 스스로 밖으로 기어나온다. 그때 잡는 거였다. 조그만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갈을 잡는다. 당시 같이 있었던 현지 안내인의 말로는 베두인족 사람들은 전갈독에 면역이 있어서 쏘여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전갈을 담아 올 빈 물병을 잔뜩 가지고 베두인족의 천막이 있던 곳으로 갔다. 자동차로 십분정도의 거리.. 근데 베두인족들이 없다. 그들은 이미 딴 곳으로 이동한 뒤였다. 아직도 유목을 하는 오리지널 베두인 족이다.


‘우리가 직접 잡읍시다’

잠시 침묵.. 알다시피 사막의 전갈은 맹독이다. 물렸을 때 병원에 가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경과시간이 삼십분 정도라고 했던 것 같다. 근데 우리가 있는 그곳은 삼십분을 나가야 겨우 길이 나오고, 주변 한시간 이내엔 인적이 아예 없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큰 도시 '암만’까지는 꼬박 네시간을 가야하는 황무지 복판..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전갈에 찔리면 100% 사망이다. CF 촬영이 대관절 얼마나 중요하길래 거기에 목숨을 걸어? 미친 짓이다.

하지만 사막생활 일주일에 심심해 죽을 것 같던 네 남자, 하루 세끼 냄새나는 양고기만 먹으며 이성을 상실한 네 남자, 문명과 일주일 격리되고 겁을 완전히 상실한 네 남자.. 전갈을 직접 잡기로 했다.

길다란 집게가 있어야 하는데 차안을 아무리 뒤져도 나무 젓가락 밖엔 없었다. 아 띠바 이건 너무 짧은데.. 하지만 전갈은 작기 때문에 나무젓가락으로도 제대로 잡기만 하면 찔릴 위험은 없다. 옮기다가 손바닥에 떨어뜨리지만 않는다면. 그래 이거면 됐다.

이제 남은 문제는 전갈구멍과 뱀구멍을 구분하는 것.. 뱀은 극도로 위험하댄다. 크기도 크고 워낙 빨라서 자칫하다간 물린단다. 현지 안내인의 과장으론 ‘물리고 5분’이면 죽는댄다. 그래서 '뱀구멍일리가 없는' 작은 구멍들만 공략하기로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지프차에서 내렸다. 온 사방이 걸프전 당시 탱크들의 바퀴자국으로 어지럽다. 벌써 몇년이 지났는데 탱크자국이 그대로..

베두인족에게 배운대로 구멍에 물을 흘려넣고 기다리니 전갈이 머리를 쏙 내민다. 구멍 열개 중에 두세개 정도? 그때 잽싸게 나무 막대로 전갈을 구멍 밖으로 완전히 끌어내고 못 움직이게 살짝 누른 다음 젓가락으로 집어서 빈 물병에 집어넣으면 된다. 처음엔 등골이 오싹하더니 예닐곱마리 넘어가니 여유가 좀 생긴다. 우리가 잡고 있는게 가재인지 전갈인지..ㅋㅋ 병 하나에 한마리씩 넣고 작은 숨구멍 하나 뚫고는 마개를 확실히 꼭꼭 닫았다. 퉁탕거리며 차가 달리는 동안 마개가 열려서 밖으로 기어 나오면 큰일 나니까. 한마리 잡을때마다 전갈의 숫자를 정확히 셌다.

이십마리 정도 잡았던 거 같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어 사냥을 마치고 차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전갈의 숫자를 확인하던 사람, 목이 터질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튀어나간다. ‘밖으로 나와요!’ 영문도 모른 채 우리도 황급히 차 밖으로 뛰어나왔다. ‘왜 그래요?’ 사색이 된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전갈 한 마리가 없어졌어요’

그가 잘못 셋겠다 싶어 다같이 다시한번 전갈이 든 물병을 확인했다. 띠바.. 진짜 한마리가 모자란다. 차 안 어딘가에 전갈 한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얘기다. 그 황당함 공포감.. 한동안 망연자실 서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자동차로 십분거리이니 걸어서 한두시간이면 된다. 하지만 여긴 요르단 황무지 사막이다.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다. 두툼한 워커라면 모를까 다들 키 낮은 운동화다. 걷다가 재수없이 지나가던 전갈이라도 스치면 바로 찔린다. 그게 다가 아니다. 암만 지사의 한국인 직원들이 겁주던 말까지 떠오른다. ‘저녁이면 들개 떼 같은 것들도 돌아댕깁니다. 거기..'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그들의 뻥이었다.)

차 안에는 전갈이 무서워 못 들어가고, 차를 두고 걸어가자니 전갈 뱀 들개 떼가 무섭고, 밤이 되어 사람들이 우릴 찾으러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자니 일행들 만나기 전에 절딴날 거 같고.. 실로 진퇴양난 사면초가였다. 지나던 전갈에 찔릴까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그렇게 삼십분정도 시간이 흘렀다.

‘혹시 물병을 통째로 흘린 거 아닐까요? 아니면 아예 차에 안 실었거나..’

맞다. 그럴 수 있다. 다들 전갈을 잡던 지역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오분도 안되어 발견했다. 덤불 뒤에 얌전히 놓여져 있는 물병 하나..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안에 전갈 한마리 있다. 아 살았다. 그늘에 세워둔다고 거기다 뒀던 걸 미처 차 안에 싣지 않았었던 거다. 우린 그걸 포함해서 우리가 잡은 전갈의 전체 숫자만 기억하고 있었고. 



전갈 2
2010년 9월 4일, 먼지가 심하게 나는 작업 때문에 잠시 비닐로 덮어둔 풀장, 바람에 날려왔는지 비닐 위로 자잘한 찌꺼기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나뭇 이파리들과 잔 나뭇가지들.. 그것들을 걷어 올리는데 한쪽 구석에 뭔가 움직이는 게 있다. 귀뚜라미가 빠졌다가 비닐이 미끄러워서 못 올라가고 있는거라 생각하고 가까이 갔는데.. 아뿔싸! 전갈이다.

바둥대는게 불쌍하다. 기어 올라올 수 있게 작은 나뭇가지로 길을 내주려 하는데 이놈 꼬리를 확 구부렸다 젖힌다. 전갈의 공격동작이다. 허긴 얘가 내가 살려주려한다는 걸 알 턱이 없지.. 근데 생각해보니 얠 살려주기가 좀 그렇다. 전갈이 집마당 어딘가에 돌아다닌다? 맨발에 슬리퍼로 돌아댕기는 곳인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끌어내어 바로 죽이기로 했다.

아 잠깐.. 죽이기 전에 먼저 야채에게 이 전갈을 구경시켜줘야겠다. 야생의 전갈을 직접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전갈 있다아 나와서 봐라’

야단만 맞았다. 도망가면 어떡할려고 그냥 왔느냔다. 일단 빨리 죽이기부터 하랜다. 맞는 말이다. 가재도 아니고 전갈을 마당에 그대로 살려두고 왔다니.. 그래서 다시 급히 전갈에게로 돌아왔다. 죽이러.. ‘미안하다 전갈아’ 근데 그 잠깐 사이에.. 띠바 전갈이 없어졌다. 이게 어떻게 빠져나갔지? 가만보니 내가 전갈에게 길을 내주려고 놓아두었던 작은 나뭇가지가 그대로 걸쳐져 있었다. 아차 저걸 치웠어야 했던건데.. 멀리는 못갔을 것이다. 빨리 찾아서 빨리 죽이자.

못 찾았다.
아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