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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하늘지기의 꿈 4 - 하늘이 좋아 하늘에 지다

죽음과 관련되어 사람들이 가진 걱정은 두가지다.

첫째,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이다. 길어지는 죽음의 과정 때문에 ‘확실하게 정을 떼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래서 어떻게 죽어야 ‘그리운 사람’으로 남을까 다들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부디 내 죽음은 매일 밤 잠에 들 듯 그렇게 편안하고 조용히 가는 죽음이어야 할텐데, 그 누구에게 털끝만큼이라도 폐가 되지 않는 죽음이어야 할텐데.

둘째,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느끼는 때부터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종교의 힘을 빌거나 혹은 먼저 가신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 두려움에 맞서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두려움을 회피할 방법은 없다. 죽음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감이 드리워진 생활,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런 생활은 그리 쾌적한 생활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꿈꾸던 나의 죽음은 이랬었다.
인생의 말년에 ULM을 타고 날다가 창공에서 죽는 것.

물론 생각뿐이었지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다 TV에서 본 미국영화 Secondhand Lions에서 두 남자 주인공이 진짜 이렇게 가는 걸 보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저렇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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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ULM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생겼을 때, 내 훈련 동기가 한분 계셨다. 교관이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회장’이라고 소개하자, ‘내 나이 일흔인데 그 나이 때문에 회장’이라고 웃으시던 분. 그 연세라면 할리 데이비슨도 놀라운데 초경량비행기 조종을 배우겠다고 나선 것이 정말 놀라웠다. 아무렇게나 복장을 입고 간 내가 머쓱할 정도로 일흔의 그분은 감각적인 차림이셨다. 그러나 진짜 놀라웠던 건 그 다음이었다.

'땅에서 백날 달려봐야 답답해. 이젠 하늘도 날아봐야지. 날다가 갈수 있다면 그거 얼마나 행복하겠어?'
놀랍게도 이분,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거다.



첫 훈련이 끝나고 LA에 돌아왔다.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음료수 한잔 하시잔다. ‘어이 윤선생, 비행기는 비행기고.. 우리 동호회(할리 데이비슨)에 들어오지. 내가 회장 추천 특별케이스로 바로 넣어주께’ 그분은 내가 오랜 친구같다고 하셨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십여년의 나이차가 있었지만 편안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이분과의 만남은 유쾌했었다. 그 연세에 그렇게 인생을 즐기며 사시는 그분의 모습은 내가 꿈꾸고 있던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건상 훈련받기가 불가능해 훈련을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알겠다며 포기했던 교관으로부터 전화가 다시 왔다. ‘회장님이 윤선생 진짜 잘 보셨나봐.. 무슨일이 있어도 윤선생 꼭 데리고 나오래요’ 감사합니다만.. 거절했지만 그리고도 계속 이어졌던 회장님과 교관의 전화. ‘어이 윤선생, 내가 윤선생 시간 맞춰줄 테니까 이번에 나랑 꼭 같이 하자구’ 얼마후 교관이 따로 전화를 했다. ‘혹시 비용문제라면 회장님이 좀 보태시겠다네요’ 감격스러울 만큼 감사했지만 결국 난 그 분과 훈련동기가 되지 못했었다. 몇 달 후 카페에서 ‘첫 단독비행 성공’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분께서 기어이 해내셨던 거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그리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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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 무렵, 교관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다시 왔다. 훈련장을 훨씬 가까운 샌버나디노로 옮겼단다. 게다가 회장님이 비행기를 하나 사서 그곳에 보관중인데 그 비행기를 내가 타도 좋다고 하셨단다. ‘회장님께서 그렇게 윤선생 다시 보고싶어 하시는데 이번에 웬만하면 시작하시죠’ 하지만 여전히 여건이 허락하질 않았었다. 감사한 호의를 또 베풀어주신 회장님껜 따로 인사드리기로 했다. 아무때나 놀러오라고 하셨던 사무실로 직접 찾아뵙기로 했다. 근데 아직까지도 찾아뵙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젯밤 한인 TV 뉴스에서 자막으로 소개되는 단신을 봤다.
‘70대 한인 샌버나디노에서 경비행기 추락사’

설마.. 오늘 아침, 가슴을 조아리며 인터넷으로 기사를 뒤졌다. 설마 아니시겠지.. 설마..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분이셨다.
가슴이 울컥했다. 아..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스렸다.
창공을 날다 하늘로 가셨다. 그분이 원하셨듯 그렇게 '멋지게' 가신거다.


→ 하늘지기의 꿈 1 – 다시 꾸다
→ 하늘지기의 꿈 2 – 악전고투
→ 하늘지기의 꿈 3 – 일단 접다
→ 하늘지기의 꿈 4 – 하늘이 좋아 하늘에 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