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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하늘지기의 꿈 3 - 일단 접다

또 올라간다니.. 가슴이 철렁한다. 그러나 설마.. 비록 첫 비행은 교육생 군기잡는 차원으로 일부러 그랬겠지만 두번째 비행땐 어느정도 기초교육을 시킨 다음에 데리고 올라가겠지.

‘바를 좌우로 움직이면 힘들어서 못해요. 앞뒤로 밀면서 댕긴다는 생각을 해요. 세발자전거도 안타봤어요? 왜 저렇게 감을 못잡지?’

무릎이 탁 쳐졌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죽을똥 살똥 힘들었구나.. 근데 이말을 미리 해줬어야 하는거 아냐? 띠바.. 교관은 그 한마디만 달랑 해주고 다시 회장님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 어? 두번째 비행에도 사전 교육은 역시 없었다. 참 무지막지한 교관이다. 그들이 다시 한바퀴 돌러 올라간 사이 혼자서 가상 연습을 했다. 이렇게 기울면 바를 이렇게 밀면서 잡아댕기고.. 조금 자신이 생긴다. 이번엔 될거 같다. 그러나 문제는 수수깡처럼 힘이 빠진 팔이다. 물을 마시려고 물통을 드는데 팔에 감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올라갔던 그들이 내려왔다. 교관의 눈을 피해 살짝 회장님께 물어봤다. ‘회장님은 힘 안드세요?’ 회장님이 빙그레 웃더니 ‘뭐 이 정도로 힘이 들어’ 절망이다. 이 노인께서는 힘이 하나도 안 드신댄다. 팔에 아직 힘이 없다고 얘기해봐야 교관의 입에서 또 참기 힘든 구박만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교관의 휴식시간이 끝나자마자 기체에 올랐다. ‘이번엔 좀 제대로 좀 해봐요.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영락없는 군대다.

기체가 하늘로 솟구쳤다. 이번엔 바로 바를 넘겨준다. 가상연습 한대로 해봤다. 아! 조금 된다. 아 이렇게 하는거구나.. 훨씬 덜 고통스럽고 약간은 재미있었던 두번째 비행이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팔은 역시 끊어질 듯 아프다. 기체가 완전 정지를 하고 기체에서 내리려는데..

‘이제 겨우 좀 이해를 하네.. 내리지 말고 그대로 있어봐요. 그라운드에서 연습 좀 하게’

기체가 공중에 뜨지 않을 정도의 속력으로 달리면서 바를 컨트롤하는 연습이었다. 바람에 따라, 기체의 턴에 따라 움직이는 날개의 균형을 잡고.. 바람과 날개와 바의 역학구조가 머리속에 쏙쏙 들어온다. 아니 이걸 먼저 시키고 델고 올라갔어야 하는거 아닌가.. 열이 받았다.

‘이걸 먼저 좀 시키신 다음에 델꾸 올라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요..’
‘비행 우습게 봅니다. 생명이 달려있어요. 비행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부글부글 끓던 교관에 대한 반항심 적개심(^^)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이렇게 깊은 뜻이.. 그래도 교육순서에 확실히 문제가 있음은 분명했다.

'뜻은 알겠는데요.. 그래도 최소한의 교육은 먼저 한 다음에 올라가야 하는거 아닌가요?'
'교육과정은 내가 결정합니다. 교육과정에 대해선 아무말 하지 마세요'

교관에 대한 반항심이 다시 일었다. 의견도 말 못하냐? 이가 이러니 동호인 숫자가 안 늘어나지.. 띠바세이야^^

이제 기체를 다시 접어야 한다. 펴는 것만큼이나 시간과 힘이 들어갔다. 삼십분 이상 걸렸다. 트레일러에서 기체를 들어 내릴때보다 반대로 들어 올리려니 힘이 훨씬 더 든다. 게다가 수수깡 같은 팔 아니던가. 손목이 삐끗했다. 아 띠바. 그러나 내색할 수 없었다. 구박이 무섭다. 일흔 노인네보다도 허약한 약골이 되지 않았던가. 내가.

주변정리를 다 한 다음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치 100킬로 행군을 마치고 난 이후처럼 삭신이 쑤셔온다. 야채는 아직도 멀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시간쯤 달려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고 맥도날드에 들른다. 아 그냥 달려서 좀 늦더라도 엘에이 가서 냉면같은거 개운하게 먹자니까.. 띠바. 회장님이 도저치 배가 고파서 안되겠다고 하셨댄다. 목구멍에 넘어가지도 않는 햄버거를 먹는데 그곳에서 의문이 풀렸다.

회장님이 하늘에서 직접 바를 잡은 건 몇초간 뿐이었단다. 아 그것도 모르고 난 노인보다도 기운없고, 노인보다도 감이 없다고 스스로 자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관은 작정을 하고 오늘 내게 일부러 하드타임을 준것이었다네. 제대로 가르쳐서 써먹을라고 그랬다나..

‘내가 오늘 심하게 했어요. 게다가 바람도 쎄고.. 많이 힘들었죠?’
‘그럼 제가 못한 건 아닌 편입니까?’
‘첫 비행하고 내려와서 기절한 사람도 있었어요’

아..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등신은 아니었구나.. 근데 날 써먹다니? 무슨 뜻일까?


엘에이에 도착했다. 시간이 벌써 다섯시.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회장님께서 아쉽다며 차 한잔하고 헤어지잔다. 당신이 맘에 든다는 둥..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현실적인 심각한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오는동안 차안에서 내내 머리속에 맴돌던 문제들이기도 했다.

첫째,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한번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애야 하는게 가장 큰 문제이다. 서울 대전의 거리이다. 새벽 다섯시부터 서둘러서 비행을 한번 하고 돌아오면 저녁 다섯시다. 하루가 꼬박 가는거다. 그래서 가까운 곳의 유료 활주로를 빌려야 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둘째, ‘라이센스 딸때까지 교육, 한번 교육 1시간, 최대 30시간’ 이었던 계약조건이 ‘최대 30시간, 최장 3개월’ 로 바뀌었다. 즉 시간날 때마다 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3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3개월에 30시간을 하려면 한달에 10시간씩, 즉 일주일에 두시간 내지 세시간을 해야 하는데 한번교육이 한시간씩이므로 결론적으로 일주일에 두세번을 이렇게 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을 팽개치고 이렇게 시간을 낼 방법이 없다.

셋째, 동호인용 기체를 구입해야 한다. 라이센스 따면 뭐하나.. 그 이후에 이용할 기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라이센스 취득 이후 동호인들이 사용할 기체를 갹출을 해서 사자고 한다. 신품 4만5천불, 중고 2만5천불 정도라니 인원수에 따라서 나눠 내서 사자고. 현재 교육생은 달랑 네명, 그들이 전부 동호회에 가입한다고 해도 한사람이 부담하는 액수가 너무 크다.

넷째, 동호인용 기체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걸 즐기려면 새벽부터 해야 하는 노가다가 장난이 아니다. 이동, 조립, 분해.. 이 시간만 일곱시간이 걸린다. 즐기는게 아니라 노동이다. 근처 바닷가의 유료 활주로에 자체 격납고를 설치해서 잠깐 이동에 조립 분해 전혀 없이 그냥 꺼내 사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이게 엄청나게 돈이 든댄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호인들이 돌아가면서 시간을 내어 일반인 체험비행을 실시해서 돈을 모으자고 한다. 나보고는 인스트럭터 자격증까지 따서 교육까지도 맡아 달라고 하는데.. 날 써먹겠다는 소리가 바로 이거였다.


일단 결론없이 자리를 마무리하고 기체를 보관장소에 내리는데.. 이게 또 삼십분이상 걸렸다. 그렇다면 교관은 새벽에도 삼십분 이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전체 준비시간이 총 여덟시간이 걸린다. 한시간 비행하기 위해 여덟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이 일을 앞으로 석달동안 일주일에 두세번씩 해야 한다? 일주일에 두세번 먹고사는 일을 완전히 접고 이 일에만 매달린다? 기로에 섰다. 과연 내 처지가 이걸 할 수 있는 상황인가. 한달에 두번정도, 총 일년정도 걸릴것으로 예상하고 시작했던 것이지 이렇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시작하지도 못했을 상황이다. 불가능하다.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설사 석달을 일 팽개치고 어떻게든 해서 지나갔다 치더라도 그 이후도 더 문제다. 기체 구입문제, 체험비행 실시문제, 다른 사람들 교육문제..

앞으로 이 일을 업으로 하면서 살아갈게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즐기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빼앗긴다. 내가 스무살 하니브로 회장이라면 하겠지만 지금은 못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오레곤의 원시 바닷가를 지나, 워싱턴의 숨막히게 예쁜 도서지역을 건너 씨애틀에 도착하고, 또 허가만 난다면 국경을 넘어 캐나다 밴쿠버를 지나 알래스카까지 날아 가려던 꿈은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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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고 뒤척이길 몇시간, 시간은 벌써 새벽 세시를 넘어선다. 결론을 빨리 내리지 않으면 밤을 꼬박 새우겠다. 결론을 내리려면 지금 내려야 한다. 그래야 선납한 교육비를 일부라도 돌려 받을 수 있다. 물론 돌려받지 않는 조건으로 교육계약을 한 것이지만 빨리 결정 지으면 말이라도 해볼 수있다. 말리는 야채에게 벅벅 우겨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 하고 포기한다고 말해? 쪽팔리기도 하다. '중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한테 부담갖지마~' 하던 야채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한테 쪽팔려 하지 말고 빨리 포기해서 얼마라도 건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결국.. 15년간 기다려 온 하늘지기의 꿈을 일단 다시 접기로 했다.
팔자 좀 더 좋아질때까지 기다리자. 띠바.


→ 하늘지기의 꿈 1 – 다시 꾸다
→ 하늘지기의 꿈 2 – 악전고투
→ 하늘지기의 꿈 3 – 일단 접다
→ 하늘지기의 꿈 4 – 하늘이 좋아 하늘에 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