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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히스패닉 없는 미국은 없다

나란히 있는 세개의 캘리포니아
미 서부 지역엔 ‘영어가 아닌’ 이름의 지명이 참 많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두 도시인 Los Angeles, San Francisco를 비롯하여 San Jose, San Diego, Santa Barbara..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Las Vegas, El Paso.. 이거 탁 봐도 영어가 아니다. 스페인어다.

Los는 스페인어 남성 정관사 El의 복수형이고, Las 는 여성 정관사 La의 복수형이다. 또 San은 聖人이란 의미의 Saint이고, Santa는 그것의 여성형이다. 서부지역에 이렇게 스페인어 지명이 많다는 건 분명히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스페인 혹은 멕시코와 관련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캘리포니아라는 지명 역시 스페인어인데 희한한 건 똑 같은 지명이 멕시코에 두개나 더 있다. ‘바하 캘리포니아’와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라는 지역이다. 그것도 나란히 차례대로 있다. 대체 무슨 관계일까?

1776 독립전 미국은 3개의 식민지로 분할되어 있었는데, 동부 1/3은 영국 식민지, 중부 1/3은 프랑스 식민지 그리고 서부 1/3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스페인 왕실은 서해안 일대를 깔리포니아(California)로 명명하였는데, 가장 윗쪽을 알따 깔리포니아(Alta California), 그 아래를 바하 깔리포니아(Baja California), 그 아래 남쪽을 다시 바하 깔리포니아 쑤르(Baja California Sur)였다. 나란히 붙은 세 지역이 다 나온 지도는 못 구했다.


그러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821년부터 이 지역은 멕시코의 땅이 되었다. 멕시코는 184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북아메리카 남서부지역의 땅을 모두 빼앗겼는데 그때 ‘알따 칼리포니아’도 빼앗겼었는데 그게 지금의 미국 캘리포니아다. 윗 지도의 맨 윗부분에 있는 티후아나(Tijuana)가 미국 샌디에이고와 연결된 국경마을이다. 즉 거기서부터 위가 알따 깔리포니아(미국의 캘리포니아)다.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과 자세한 영토분쟁은 스토리가 너무 길어서 생략한다. 아무튼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멕시코 인들은 캘리포니아를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자기들의 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인지


멕시코는 영토회복 중?
영토회복에 모두 열심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쓴다. ‘왕성한 번식’이다. 십대 중후반부터 시작해서 서너명 기본으로 낳고, 마흔쯤엔 손주들을 본다. 서른 즈음에 결혼해서 한둘 낳을까 말까 한 다른 인종들은 도저히 그들의 번식력을 따라갈 수 없다. 150년전에 빼앗겼던 영토를 ‘머릿수’로 되찾게 될 것 같다.

머릿수만이 아니다. Chicano(치카노)라는 말이 있다. '멕시코계의 이민 2세대'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캘리포니아는 이 치카노들이 정치무대의 전면에 섰다. 현재 LA시장도 바로 이 치카노 1세대인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Antonio Villaraigoza)다. 시 의회도 이들 치카노들이 상당부분 장악했다. 지속적인 히스패닉계 인구의 증가로 인해 앞으로 LA에서 비 히스패닉계 시장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캘리포니아의 유권자 중 라티노의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들 중 절대다수(72%)인 라티노 아이들이 자라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히스패닉계가 캘리포니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캘리포니아가 머지않아 ‘멕시포니아’가 되고. 이 멕시포니아의 수도가 로스 앙헬레스(Los Angeles)가 되는 게 정말 실현될지도 모른다.


히스패닉 노동력
인구가 많아지면서 히스패닉의 파워가 점차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Day without Immigrant.. 이민자 없는 날? 시끄러운 이민자 없는 조용한 날을 의미하는 말인가? 아니다. 히스패닉 노동력이 노동절 하루에 총파업을 하면서 자신들의 파워를 보여주기 위한 시위 모토다. ‘우리 없이 미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나 봐라’라는 의미다. 물론 이들이 노동절 하루 총파업을 한다고 미국경제가 흔들리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공백을 하루나마 느껴보라는 의미이다.

추정에 의하면 미국 전체 노동력에서 히스패닉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25%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3D 단순노동만을 놓고 보면 경우는 완전히 달라진다. LA지역의 경우 소위 3D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체감적 비율은 히스패닉계가 99%다. 고용구조의 최하층을 이들 히스패닉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상당수는 불법체류자로 추정이 된다. 3D업종뿐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 기술이 필요한 직종도 마찬가지다. 전기 전화 케이블 보안등 기술적인 서비스를 신청했을 때 출장나오는 직원 역시 거의 모두 히스패닉계다. 노동에 대한 인종비율 자료가 없어서 정확하게 말할 순 없겠지만, 히스패닉 노동력이 없는 미국 경제는 한시도 존속할 수 없다는 엄살이 어느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3D 업종에의 노동력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경제적 파워도 만만치 않다. 히스패닉 사업가가 소유한 미국내 기업체 수가 20년 전에 비해 무려 4배나 증가한 2백여만개에 달하며, 그 업체들 가운데 연간 실적이 100만달러를 넘는 곳만도 2만7000개나 된다고 한다. LA 인근 메이저리그 야구 구단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구단주도 히스패닉계다.


* 미국 센서스국이 어제(7/14) 2007년 비지니스 현황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전체 2천7백만개의 사업체중, 히스패닉계 소유 사업체 수가 2백3십만개로 나타났습니다. 아시안 소유 사업체수는 백6십만개입니다. 


히스패닉 구매력
나는 인터넷을 이용해 대부분 물품구매를 하지만, 옷같은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매장에 간다. 갈때마다 놀란다. 저가 중저가 매장 가릴 것 없이 모든 매장엔 히스패닉 구매자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백인 아시안 흑인들은 집안에만 쳐박혀 있는지 그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히스패닉들의 소비력은 놀랍다. 미국인들의 평균 소비율은 세전수익 대비 82%라고 한다. 그런데 히스패닉계의 소비율은 무려 93%다. 참 돈 잘 쓴다.

할러데이 세일이라도 있는 날엔 히스패닉계로 사방천지가 뒤덮힌다. ‘가공할’ 히스패닉 구매파워다. 그래서 이들을 잡기 위해 2004년 미국 광고시장에서 스페인어로 집행된 액수가 무려 55억달러(전년대비 14.4% 성장)라고 한다. 아마 이 비율은 지금은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히스패닉의 구매력은 2010년에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8,325억달러)보다도 훨씬 큰 금액이다. 그들은 이미 '따꼬 많이 사먹는 멕시칸'이 아니다. 미국 제조업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이런 구매파워를 가진 히스패닉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지갑을 닫을 경우 미국의 경제가 휘청거릴 것은 뻔하다. 



히스패닉 아메리카
스포츠계를 보자. 백인과 흑인이 양분한 풋볼, 흑인들이 지배하는 농구, 백인들이 지배하는 아이스하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야구.. 이곳은 이제 히스패닉이 지배하기 직전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중남미계의 진출은 눈부셔서 경기에 따라선 거의 그들의 리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외 문화, 예술, 언론, 종교등 거의 모든분야에서 히스패닉계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그들은 독특하다.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철저한 주인의식을 가지면서도, 그들의 정체성은 좀처럼 잃지 않는다. 둘중 하나는 잃고마는 다른 인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미국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살아가면서도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여지껏 영어가 모국어인 히스패닉 이민 2세중에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영어 못하는 부모에게 꼬박꼬박 영어로만 말하며 무시하는 한인 이민 1.5세와 2세들과 정말 비교된다.

이곳 캘리포니아로만 본다면 미국은 이미 히스패닉이 '하부로 부터 지배'하는 나라다. 비록 아직은 백인들이 지배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언제 그 위치에서 밀려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세로 본다면 그날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캘리포니아뿐만이 아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히스패닉이 미국 제 1의 인종으로 올라서고, 미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제 히스패닉 없는 미국은 상상 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들의 막강한 정치력, 그들의 가공할 경제력.. 이젠 그들 히스패닉이 백인에 이어 두번째의 미국인, 스페인어가 영어에 이어 두번째의 공용어임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그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도모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느 한 구석 찜찜하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