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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의 反이민정서 - 불법체류는 범죄

American Dream
미국에만 가면 체면 따윈 버리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했듯 그렇게 열심히만 한다면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하고 숨막히는 한국을 떠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 미국에서 우아하게 폼나게 살고 싶다. 자식들에겐 지옥같은 한국교육을 피해 미국의 선진교육을 받게하고 싶다. 그들이 원한다면 힘센 나라 미국의 일원으로 살라고 하고 싶다.


영주권자, 합법적 체류신분 유지자, 불체자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행을 감행한다. 하지만 열중 아홉은 얼마 되지 않아 ‘신분유지’라는 어마어마한 산에 부딪힌다. 대부분 ‘일단 미국에 들어가고 보자’며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 세 그룹으로 나뉜다. 영주권자, 합법신분유지자, 불법체류자.

영주권으로 직접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극히 희소하다. 대부분은 학생비자나 투자비자로 겨우겨우 체류신분을 이어간다.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언젠가 좋은 기회를 만나겠지.. 그렇게 기약없이 영주권을 기다린다. 이런 이들에게 영주권은 미국생활 제 1의 목표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도 더 중요하다. 영주권 신청의 기회만 된다면 뭐든지 한다. 닭공장에 가서 생닭을 포장할 수도 있고, 도축공장에 가서 소를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주권은 그리 쉽사리 손에 잡혀주지 않는다. 때에 따라선 돈과 희망만 잃기도 한다.


체류비자로 신분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여간 복잡하고 힘든게 아니다. 활동에 제약이 많고, 시간적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심하게 말하자면 하루하루 신분유지 스트레스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 신경이 신분유지와 영주권취득에 곤두서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영주권취득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곧 될 것 같았는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지친다. 그래서 ‘신분유지’를 그냥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주변의 말을 들어보니 불체자라도 사는데엔 아무 문제 없단다. 언젠간 반드시 불체자 대사면이 있을거란다. 미국에서 불체자를 양성화하지 않고선 미국경제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란다. 불체자가 되었어도 버티기만 하면 영주권을 반드시 받을 수 있단다. 맞는 말 같다.

하루하루 생존에 쫓기다가, 매일매일 신분유지 스트레스에 쫓기다가.. 이제 곧 체류비자 만기마저 다가온다. 그걸 이어갈 방법이 이번엔 보이지 않는다. 아- 어떻게 할까.. 결국 그 힘들고 복잡한 ‘신분유지’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법체류자가 된다.


불법체류자의 고통
막상 불체자가 되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안좋다. 어디가든 신분증을 달라는데 그 신분증이 없는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 영사관에서 '영사관 신분증'을 발급받는다. 하지만 그 신분증은 결국 '나 불법체류자요'하는 증서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차라리 돈이 좀 많이 들더라도 신분확인 없이 운전면허증을 내주는 타주까지 날아가 그곳의 운전면허증을 따온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사람들이 많이 알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주눅이 들어 자꾸 기가 죽게 되고,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을 자꾸 피하게 된다. 멀리 낯선 곳, 특히 국경 근처엔 얼씬도 하지 못한다. 슬슬 미국생활이 감옥살이가 되어간다. 

까짓거 본인은 이런거 모두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커가는 아이들의 앞길을 내가 망쳐놓고 있는 것 같아서 부모로서 면목이 서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엔 괜찮지만 아이가 커서 운전면허를 취득할 나이,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될 때가 문제다. 아이가 좌절할 수 있다. 착하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던 우리 아이가 불체자라는 신분에 막혀 포기하고 좌절하려 하는 것이다. 가슴이 메어진다.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주변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우리 가족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신분문제가 늘 발목을 잡는거다. 그렇게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데도 불법체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니 많이 억울하다. 

다행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더니 이민개혁법안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신문방송에서는 불체자 양성화에 관한 개정법안을 알린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곧 불체자들이 합법적으로 신분을 취득할 날이 올 것 같다. 그러나 난데 없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애리조나 이민단속법 - 反 불법이민, 불법체류는 범죄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 이민법으로 평가 받고 있는 애리조나 주의 이민법이 법제화된 것이다. 불법 체류를 ‘범죄’로 규정하고 경찰의 검문과 체포 권한을 대폭 강화해서, 주 경찰이 체류신분 확인을 위해 불심 검문해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고, 불법체류자로 드러날 경우 강제 추방 된단다.

지금까지는 미국내 불법 이민은 연방 정부의 관할이어서 범죄만 짓지 않으면 체포될 걱정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 불법체류 자체가 '범죄'로 규정되는 바람에 연방 이민국 단속반이 아니더라도 길거리의 모든 경찰이 불심검문으로서 체류신분을 확인해서 체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체자들에겐 공포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 체포되어 추방 될지 모른다. 길을 걷다가도, 햄버거를 사먹다가도, 자동차에 기름을 넣다가도 당할 수 있다.


다행히 언론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 여기저기서 애리조나 주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차별과 폭력, 증오를 부를 수 있는 악법’이라며 극렬히 반대한단다. LA 같은 경우엔 애리조나 주와의 경제교류마저 중단하기로 했단다. 애리조나의 이민단속법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일색이다. 참 다행이다.

근데 이런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애리조나 법과 비슷한 반이민법을 시행하겠다는 주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주뿐만이 아니다. 강력한 이민단속법을 시행해야 한다는 시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단다. 이러다간 불체자들의 엑소더스를 곧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단속이 심한 곳을 떠나는 불체자들의 엑소더스.

여론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언론이 전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민들의 여론은 애리조나의 이민단속법을 지지하는 쪽이 훨씬 더 우세했다. 투표권을 가진 애리조나 주민중 64%가 새 이민법을 지지했고 30%만이 새 이민법 시행에 반대의사를 보였다. 전국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새 이민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51%~61%였다. 반면 이 법에 반대의사를 밝힌 사람들은 불과 30%~39%에 불과했다.

불체자들에 대한 시선이 이제는 '도와줘야할 이웃'이 아니라 '소탕해야 할 범죄자'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불체자들의 입장에선 상당한 충격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생활인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마저 이렇다고 하니.. 더욱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제 언제 어디서 갑자기 경찰에 체포되어 추방될지 모른다. 또 내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자가 마음만 먹으면 경찰에 신고해서 나를 추방시킬 수도 있다. 이제 불체자 신분으론 제대로 거리를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을 수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민개혁으로 불체자 양성화가 되어 영주권을 얻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범죄자 신분이 되어 숨어 살아야 하는 지옥이 앞에 닥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건 反 '불법'이민이다. 반이민정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건 사실 '反 이민정서'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 알기 위해 우선 '라티노'들 얘길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