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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火 참으며 살기

홧병 (火病)
미국 영화 중에 Anger Management라는 영화가 있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화 다스리기’ 나 ‘성질 죽이기’정도가 되겠다. 영화를 보지 못해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제목으로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화’에 대한 고민은 지구상 공통인 모양이다.


화가 난다고 할 때의 화는 바로 火다. 즉 마음 속에서 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평생 이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즉 화를 참으면 산다. 복잡한 도시의 사회인들은 물론 산사에 처박힌 중들도 화 때문에 고생한다. 감정에 대해선 도시인들이 더 용감하고 떳떳하다. 산속의 중들이야 그것을 피해 도망간 비겁한 자들이 아니든가. 이렇게 산속으로 도망까지 가는 걸 보니 화를 포함한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 것임이 분명하다.

풀리지 않은 화가 쌓이고 쌓이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떨리고 머리가 무겁고.. 이게 바로 정체가 불분명한 병 ‘홧병’이다. 스트레스 증후군보다는 왠지 좀 심해 보이는 이상한 것.. 사실은 당뇨병, 고혈압, 피부병, 암, 위장병, 기타 만성염증, 심장병, 정신병 이런 것들이 모두 홧병의 일종이다. 다스려지지 않은 화가 그 원인인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원인을 짚어놓으니, 화만 잘 다스리면 이런 병들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울 수 있겠다.

하지만 의사들은 화에 대해 애매한 말을 한다. 화를 내는 것도 해롭고, 참는 것도 해롭단다. 띠바. 화를 너무 참으면 막히기 쉽고, 화를 너무 내면 터지기 쉽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내지도 말고 참지도 말고 적절히 다른 방법으로 화를 해소하란다. 취미생활이나 운동 같은 것으로. 하지만 이거 동화 같은 얘기다. 화가 취미생활로 풀리길 기대한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현대사회에선 화를 내기도 어렵지만, 다른 방법으로 푼다는 것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렇다면 화를 어떻게 다스리면 되는 걸까?


화는 억울하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화날 때 화내는 것 역시 자연스런 현상이다. 웃거나 운다고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화를 내는 것도 원래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인간들이 지능이 높아지고, 언어를 사용하고, 모여 살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제 멋대로 화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미친놈으로 찍히기 때문에 화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화는 억울하다. 웃음이나 울음과 똑 같은 것인데 나쁜 감정 취급을 받는다. 잘 웃으면 성격 밝다고 하고, 잘 울면 마음이 착하다고 하는데, 화를 잘 내면 나쁜새끼 나쁜년이 된다. 어차피 똑 같은 감정의 표현인데 살상의 감정이니 부정의 홀몬이니.. 화만 나쁜 놈 취급한다. 웃음이나 눈물을 참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무겁듯이 화를 참아도 그렇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웃거나 우는 건 많이 권장하기도 한다. ‘웃으면 엔도르핀, 울면 카타르시스’다. 웃으면 좋은 게 많이 분비되고, 울면 나쁜 게 몸 밖으로 배출된단다.

근데 화를 내면 나쁜 게 많이 분비된단다. 스트레스 홀몬.. 그래서 이게 건강을 해치고, 공부에도 해롭고, 생명을 단축시키고 그런단다. 이거 정말 억울하다.


그냥 화나는 대로 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게 몸에 좋은지 나쁜지는 그리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화가 나고, 그래서 분비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몸에 해로울 리가 없다. 오히려 분노를 해소하고 청소하며 몸에 Booster의 역할을 하는 좋은 작용일 것이다. 따라서 화가 날 때 화를 내지 않고 참으면 오히려 나쁜 기운이 고스란히 내 몸에 축적될 것임이 자명하다. 비유하자면.. 사정과 오르가즘 직전에 ‘이건 부도덕 해요’ 하면서 섹스를 멈춰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화를 낸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확실한 의사표현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감정배설이다. 좌절감, 분노, 질투, 근심 걱정 등을 적절히 배출하는 도구가 바로 화다. 잡다하게 지저분한 쓰레기들이라도 불로 태워버리면 깔끔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우린 화가 나면 적절히 화를 내면서 살아야 한다. 물이 끓으면 수증기가 발생하고, 뚜껑이 적당이 오돌대면서 수증기를 빼내 듯 적당히 화를 내면서 살아야 한다.


구멍이 필요한 압력밥솥
그러나.. 다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인의 생활은 무조건 화를 참아야 한다. 현대생활은 뚜껑이 오돌대는 주전자가 아니다. 수증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압력밥솥, 게다가 밑불마저 꺼지지 않는 압력밥솥이다. 언젠가 거죽이 찢어지며 대폭발할 무시무시한 압력밥솥이다.

이 밥솥의 폭발을 방지하는 방법은 두가지 뿐이다. 불이 없는 곳으로 밥솥을 옮기든지, 아니면 밥솥에 김 빠질 구멍을 여러 개 내든지.

내 인생의 모토는 아주 간단하다. ‘Retire young!’.. 하루 빨리 공기 맑고 물 맑은 곳으로 가서, 사모예드 한쌍 키우면서 숲속에서 기타치며 놀고, 가끔 여행하며 사진 찍으며 사는 게 꿈이다. 그러나 아직은 밥솥을 옮길 팔자가 되지 못하니 아직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곳 저곳 구멍을 냈다.

이래도 그러려니.. 저래도 그러려니.. 저놈도 먹고 살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저짓을 하려니.. 저년이 설마 본성까지 죽일 년은 아니려니.. 근데 아직은 밥솥에 구멍이 모자라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