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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꼴통 목탁도 개독만큼이나 역겹다

싯다르타
불교의 시작이 어디인가.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현실에서 도피하여 저만 행복하자고 나섰다가 깨달은 바 있다며 제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게 바로 불교의 시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누라 자식 팽개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따윈 나몰라라 팽개치고, 자기 혼자 머리 맑고 맘 편하고 고상하게 살겠다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종교다. 불교에 귀의하면 자기 혼자는 행복할지 모르나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는 황당해진다. 머 저런 이기적인 쉐이가..

싯다르타가 내뱉은 첫마디부터 의문이다. 싯다르타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일곱 발짝을 걸어가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게(偈)를 외쳤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말까지 했다는 건 그냥 애교로 봐주기로 하고..(나야 애교로 봐주지만 만약 부처님 당신께서 이런 말이 떠돌고 있는걸 아시면 아마 굉장히 역정을 내실 거다) 난 아직껏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천상천하에서 내가(나만) 제일 존귀하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소름끼치도록 싸가지 없는 갓난애가 있단 말인가? 태어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우주만물 중에서 내가 가장 존엄한 존재다? 참 맹랑하기 짝이없는 얼라다. (我가 나 하나만을 뜻하든, 인간 전체를 뜻하든 싸가지 없기는 매한가지다.)

물론 불교에서는 이 말이 그렇게 싸가지 없는 말이 아니라 '인간자체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한다. 근데 어거지 같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다. 이 말은 흔히 ‘천하에 나만큼 잘난 사람은 없다’는 착각과 아집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실제로 싯다르타가 철이 든 후에 인도말로 이렇게 외쳤는지 아니면 나중에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그건 알 수 없으나, 나같은 사람이 느끼기엔 되레 부처님을 멀어지게 만드는 나쁜 말 같다. 


자연과 역행하는 가르침
게다가 불교의 가르침은 자연의 이치와는 완전히 역행한다. 책임이고 조시고 버리고 훌훌 털고 나서라 하고, 한대 맞아도 웃으라 하고, 화가 나도 가라앉히라 하고, 빼앗고 싶어도 내려놓으라 하고, 먹고 싶어도 먹지 말라고 하고, 섹스하고 싶어도 참으라 한다. 이 모든 게 원래 있지도 않은 마음 탓이니 그걸 내려 놓으란다. 하지만 속세에선 이거 아무리 해도 안 내려놓아진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출가하란 말이냐?  

소유욕, 성욕, 식욕 같은 것들은 하늘이 내려준 본능이다. 전 인류가 섹스를 안하면 인류는 멸종이다. 그러나 '인간' 싯다르타는 ‘하늘’이 내린 이런 본능들을 찍어 누르란다. 글쎄다. 이건 완전한 바보가 되기 전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경지로 보인다.


중들은 연기자
좋다. 사랑의 실천과 인류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선 인류중 일부는 이런데에 빠져있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바로 중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불교가 추구하는 이런 경지엔 그 어떤 중들도 그 누구도 도달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절이 불타고 있어도 모른체 공부를 하고 있다가 불이 꺼진 후 나타나 화로에 담을 불씨만 달랑 가져가는, 초극도의 이기주의자도 이런 경지엔 끝내 이를 수 없었다. 그가 죽을때 이 것을 고백했었다. 깨달은 척 했을 뿐 실제로는 그 언저리에서 방황하다 그냥 간다고. 모르면서 아는 척 떠들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최고의 존경을 받던 고승이 이러할 진대 하물며 일반 중들의 마음고생이 어떠할지 안쓰럽다. 성철스님쯤 된다면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해도 괜찮지만, 모래알 같이 많은 하찮은 중 주제에 '나는 모른다'고 하면 그 중은 바로 무시당한다.

그래서 중들은 늘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 답변을 해야 한다. 이 쉐이가 아는지 모르는지 그걸 모르게.. 최대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어야 한다. 뭔가 있는데 자기가 짧아서 이해를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헷갈리는 말장난을 ‘화두’라며 붙들고 앉아 몇 달을 고생한다. 근데 나름대로 답을 구해봐야 어떤 중은 무릎을 치고 어떤 중은 콧방귀를 낀다. 종잡을 수가 없다.

중들.. 이러다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 이젠 더 공부하고 배운다는 게 슬슬 부끄럽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를 봐서 득도한 척 ‘체’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한 신도들과 말싸움을 해도 웬만해서는 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드디어 그때가 온거다. 거울보고 연습한 '해탈한 얼굴'로 누가 물으면 도통한 듯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모든 게 마음의 장난입니다. 그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실현 불가능함을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중 노릇하면서 계속 먹고 살려면.

혹가다 ‘스님, 그러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귀찮게도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외우고 있던 선문답 몇 개를 나열해 준다. 그러면 대부분 질문이 쏙 들어가지만 그래도 꼬치꼬치 더 캐묻는 귀찮은 놈이 있으면 ‘거사님이 지고 계신 마음의 짐이 참 무거워 보입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 해버리면 된다. 그리곤 반응을 살핀다. 반은 수긍하고 반은 ‘땡중새끼’ 하며 욕할거다. 반이라도 건졌으니 선방한 거다. 똑똑한 신도들 틈에서 땡중들 먹고 살기가 참 힘들다.


일반인들의 한계
그래도 중들은 이해해 줄 수 있다. 이게 직업이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일반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해탈한 듯 도통한 듯 구는 사람들.. 일반인들과 속세와 떨어진 중들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중들은 도통한 착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건 수행이 모자라거나 마음수양이 덜되어서가 아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과 현실세계라 하는 것은 애시당초 서로 공존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속세에서 마음을 완전히 비운다는 것은 현실세계에선 곧바로 실패를 의미한다. 인간군상들과 지글지글 싸우면서 마음 버리기가 과연 가능할까? 이건 절대 불가능하다. 일반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경지는 가끔가다 그 뜻이나 되뇌이면서 분노와 욕심을 약간 가라앉히는 정도일 뿐이다.


꼴통목탁
그런데.. 일반 불교신자들중에 마치 도가 튼 척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부처님 말씀, 고승들 말씀 수백개를 외우고선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혜안이라도 생긴 듯 굴며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 이건 명백한 사기다. 그러다가 말씀을 외우기만 했을 뿐인데 말씀들이 자신의 깨달음인양 사기를 치는거다. 이런 사기꾼들은 일상생활 전부가 부처님 말씀이다. 블로그나 홈페이지도 부처님 말씀으로 도배를 하고, 글을 써도 말을 해도 부처님 말씀만 한다. 기독교로 치면 바야흐로 '미친개독'의 단계다.

그러나 이 꼴통목탁들은 개독보다 훨씬 더 가관이다. 꼴통목탁과의 언쟁은 개독과의 언쟁에 비할게 아니다. 실체가 분명해서 '계속 상대할지 아니면 무시해 버릴지' 판단이 쉬운 개독들과는 달리 이들은 시종일관 애매모호한 말장난과 달관한 표정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무식하고 불쌍하다고 무시하기엔 머리속에 외운 게 너무 많다. 그것도 좋은 말씀 들로만. 하지만 그들이 참뜻을 깨닫고 말하는 게 아니고 그저 외워서 주둥이만 나불대는 거라는 건 바로 안다.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면 말수가 적어진다. 말 대신 귀감이 될만한 몸짓과 행동이 많다. 물어 물으면 부끄러운 듯 한마디 하는 것이 마음의 정곡을 찌른다. 존경의 표현마저도 거절한다.그래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반면 외우기만 한 이들은 사람들에게 못 보여주어 안달을 한다. 그럴싸하게 법명을 지어 그 이름을 쓰고,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한복을 입는다. 표정이 단아하고 말투가 느리고 나즈막하다. 대부분 단전호흡을 많이 하고 시간만 나면 앉아서 참선을 한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도사님이시다. 하지만 이런 자들은 언행일치가 없다. 색 밝히고 돈 밝히고, 싸움 좋아하고 감투 좋아한다. 고기좋아하고 술 좋아한다. 그리곤 ‘이걸 못 끊어서 내가 중이 못 된거야’ 이런다. 그 수준에 딱 맞는 추종자들은 이런 자를 숭배한다. 가짜도사는 이런 인간숭배를 즐긴다.


절에 나가지 말자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해서 나불대는 안하무인 개독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둥이로만 나불대고 가오잡는 이런 꼴통목탁이 더 역겹다. 개독이나 예수쟁이는 그저 ‘영혼이 마비된 불쌍한 것들’ 이렇게 보아주면 되는데, 꼴통목탁들은 그 정도로는 퇴치가 되질 않는다. 참다 참다 역겨움이 밀려오게 만든다.

물론 꼴통목탁들을 상대하노라면 잠시나마 마음공부를 하게는 해준다. 근데 가능하면 이런 사람들과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절에 안나가고 무슨무슨 마음수련원, 무슨무슨 회.. 이런데에 안 나가면 된다. 그런데 가면 별의별 '거사님' '보살님' 투성이다. 때론 장로님 집사님보다 더한게 바로 이 거사님 보살님들이다. 어디 나가서 이런 자들과 어울리면 부처님이 노하신다.



아 참..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좋아한다. 실천은 못하지만 가끔이나마 마음을 내려놓는 기회를 가짐으로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로서의 삿된 불교는 기독교만큼이나 싫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말씀만큼이나 좋아한다.

부처님 그리고 예수님이다. 보다시피 인도사람과 중동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