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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지단 퇴장 유감 1 - 신체폭력 vs 언어폭력

자연상태에서 물리적인 힘의 행사는 가장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생존수단이다. 먹이를 얻기 위해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물리적 힘의 행사’나 때에 따라서 ‘살생’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누구를 때려서 상처를 입혔다거나 누구를 때려죽였다거나 하는 것들이 전혀 죄가 될 수가 없었다.

내가 배가 고픈데 어떤넘이 음식을 잔뜩 가지고 맛나게 먹고 있다. 좀 나눠먹자니까 그넘이 거절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넘을 좀 때려서 음식을 뺏기로 했다. 근데 이넘이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다. 할 수 없이 그넘을 때려 죽이고 그 먹이를 뺏어서 내가 먹었다..

이거 전혀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본능을 억제하고 살기로 다들 약속하고 모여 사는’ 현대사회에서는 누가 이랬다간 그넘은 살인마로 형장에서 죽는다. 길거리에서 싸움만 해도 경찰서로 붙들려 간다. 억울하게 몇번 가봤다.

사람들이 맨정신에 주먹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었을 때에나 혹시 그럴지 몰라도 정상적 상태에서는 이런 본능적인 힘의 행사를 늘 자제하고 산다. 본능적으로는 이런 물리적인 힘의 행사가 상대를 제압하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현대사회에선 ‘물리적 힘의 행사’를 가장 야만적이고 미개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본다.
우린 이걸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엔 정말로 많이 맞으면서 자랐다. 나만 많이 맞았는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맞았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존나게’ 맞았다. 평생 가장 많이 맞은때를 되돌아봤을 때 누구나 당연히 떠올리는 훈련병, 이등병시절이나 치떨리던 군기교육대도 아니다. 내게는 바로 고삼때였다. 부러진 마대자루가 몇 개인지 모른다. 나는 웬만하면 아무리 더러운 놈들이라도 지나간 건 다 좋게 기억하려고 애쓰고 또 대부분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바꿔놓는다. 그러나 고삼때 담임선생만큼은 아직도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를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용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나의 이해하기 어려운 해묵은 원한(?)을 내 친구들은 다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 정도로 그넘은 내게 잔인하게 악독했다. (사실 한넘 더 있었다. 생물선생-똥짜루새끼. 근데 이넘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신적 결함이 있는 넘이었다. 내가 용서해 버리고 말았다.)

근데, 이후 삼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넘을 악독하고 치 떨리는 놈으로 기억하며 용서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워낙 많이 맞아서? 그때 맞은게 몸 여기저기 상처로 남아있어서? 그때 잘못 맞은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생하고 있어서?

맞으면 아프다. 많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극도로 심하게 맞지 않으면 웬만큼 맞아도 곧 낫는다. 통증이 없어지면 분도 삭는다. 상처가 비록 남아도 잊는다.

떠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소위 우반이었던 우리반에 내가 맨꽁찌였다. 당시 담임선생이 ‘모시던’ 육성회장님의 아들과 내가 제일 친한 친구사이였다. 나는 별로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그 무렵 우리집이 망했었다.
그림이 조금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그와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되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특수지 학교에서 벗어난 이후 신흥명문으로 학교를 키우려던 이사장과 교장의 특별한 관심속에 조성된 우반의 담임을 맡았으니 책임감이 무거웠겠다. 반의 공부 잘하는 대부분 학생들과는 좀 다른 놈이 하나 끼어 있는데 꼴찌로 들어온데다가 하필이면 육성회장님의 아드님과 제일 친한 친구라서 그 순진한 아드님을 꼬드겨서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서 우리아들 잘 봐달라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없다. 결정적으로 본인자체가 별로 고분고분하지 않다. 당연히 나는 그에게 눈엣 가시였겠다. 웬만큼 정신적으로 수양이 되어 있지 않고서는 당연히 나를 때리고 싶어지겠다. 그래 그럴땐 당연히 때려야지. 그래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시범케이스도 보여주지. 니들도 말 안들으면 이렇게 개처럼 맞는다. 조심해라 니들도..

그래 좋다. 선생이니까 학생을 때릴 수는 있다. 아무리 심하게 때려도 까짓거 남자니까 그럴 수 있다. 어금니 꽉 깨물면 웬만큼은 참고 버틸 수 있다. 이것도 극기훈련의 하나다. 그러나 참기 힘들만큼 아팠던 게 있었다. 그건 그의 주먹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이었다. 그 모멸감은 그 어떤 가혹행위보다도 훨씬 더 아팠었다.


그렇다. 내가 아직까지 그를 용서하지 않고 ‘넘칭’을 하고 있는 건 그때 그의 입에서 토해져 나왔던 잔인한 말들 때문이다. 치떨리는 기억이 다시 떠오를까 여기에 옮기진 않는다.


그 어떤 폭력보다도 사람에게 심각한 충격과 상흔을 남기는 것이 바로 언어폭력이다.
언어폭력이란 말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않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 깊고 오래가는 내적인 흉터를 남긴다. 주로 지성을 갖추지 못해 상대를 논리로 설득하지 못할 때 이런 언어폭력을 늘어놓는다. 자기의 행위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정당성이 없을때 그걸 얼버부리는 것이 바로 이런 언어폭력이다.

→ 지단 퇴장 유감 1 – 신체폭력, 언어폭력
→ 지단 퇴장 유감 2 – 언어폭력이 더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