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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거울속의 나 vs 사진속의 나

녹음기에서 나오던 생경한 내 목소리
아버지가 ‘녹음기’라는 걸 집으로 가지고 오셨다. 앞에다 대고 얘기하면 말하는 게 그대로 녹음이 되어서 우리가 그걸 들을 수 있단다. 거참 희한하다. 자 녹음해 보자.. 어색한 대화로 일단 녹음을 했다. 자 들어보자.. 처음으로 듣는 우리들 목소리다. ‘와아- 우하하하-’ 집이 떠나갈 듯 탄성이 나오고.. 근데 저 녹음기 좀 이상하다. 내 목소리가 다르게 녹음된 것이다. 익숙한 가족들 목소리 사이로 생소한 아이 목소리가 하나가 있는데 그게 나랜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연한 기회에 녹음된 자기 노래를 듣고 크게 실망한 기억.. 이 엄청난 내 목소리의 편차는 과연 뭘까?

우리가 듣는 소리의 전달에는 두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공기를 통해 음파가 귀로 들어와 고막을 진동하여 난원창으로 들어가서 소리를 느끼는 공기전도(air conduction), 다른 하나는 음파가 두개골을 직접 울려서 내이로 직접 전도되는 골전도(bone conduction)다.

남이 내는 소리는 '공기전도'되는 소리만 듣는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는 '공기전도'와 '골전도' 이 두 가지 소릴 같이 듣는다. 게다가 공기보다 고체에서 훨씬 더 잘 전달되는 소리의 특성상 내게 들리는 내 목소리는 골전도의 소리가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객관적으로 내 목소리란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 소리가 다른 사람의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목소리를 전혀 모른채 다른 소리를 내 목소리인 걸로 착각하며 평생을 산다. 이런게 또 하나 있다.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은 다르다
모든 사람들은 얼굴이 좌우 비대칭이다. 증명사진을 꺼내놓고 정 가운데에 거울을 수직으로 세워서 확인해 보면 안다. 왼쪽 얼굴 두개로만 구성된 얼굴과 오른쪽 얼굴 두개로만 구성된 얼굴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자.. 눈으로 확인해 보자. 인터넷 어느 사진강좌에 올려진 사진이다.
 
이거 누구일까? 유명한 미녀 탤런트의 이름이 나올랑 말랑한다. 근데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사진의 이 아가씬 누구일까?

이건 김태희인 것 같다. 근데 어딘가 좀 이상하다. 김태희 닮은 중국여자인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게 당연하다. 이 사진은 김태희 사진이 아니다. 김태희는 이렇게 생겼다.

맨 위의 사진은 김태희의 오른쪽 부분만으로 합성한 사진이고, 두번째 사진은 김태희의 왼쪽 부분만으로 합성한 사진이다. 좌우 비대칭의 정도가 거의 없다는 미인도 이렇게 짤라놓고 보니 좌우가 많이 다르다.



'거울 속 얼굴'과 '사진 속 얼굴'은 다르다
그렇다면 아래 사진은 어떤가? 김태희인건 학실한데 이 사진도 어딘가 좀 이상하다. 이 얼굴은 김태희가 알고있는 자기 얼굴이다. 즉 김태희가 거울로 본 김태희의 얼굴이다.

우리가 거울을 보면 왼쪽 오른쪽을 실제와는 반대로 보게 된다. 거울 앞에서 내가 왼손을 들면 거울 속의 나는 오른 손을 든다. 즉, 거울 속으로 보이는 내 얼굴은 실제 내 얼굴과 좌우가 뒤바뀐 얼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이상한’ 얼굴이다. 두 얼굴.. 분명히 다르다. 김태희쯤 되는 미인들이나 되니까 좌우비대칭이 덜하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다. 좌우편차가 심한 보통사람들의 경우 거울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나의 실제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춰지는 나의 얼굴'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내 얼굴은 거울에 비춰지는 그 얼굴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얼굴을 전혀 모른채 다른 얼굴을 내 얼굴인 걸로 착각하며 평생을 사는 셈이다.



나이 들어 찍은 사진에 왜 그리 놀라나
어릴 때와 젊을 때는 자기 사진을 보고도 그닥 놀라지 않았었는데 나이 들어 찍은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좌우가 바뀐 것이니 그 편차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진으로 보는 자기 모습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너무 흉하다. 이건 또 무엇일까?

사람의 안면비대칭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심해지기 때문이다. 좌우 비대칭 행동들(한쪽으로 씹는 저작습관이 대표적인 경우)이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안면의 비대칭도 점점 심해지고, 따라서 거울 속에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간의 편차도 갈수록 커진다. 즉 내가 아는 내 얼굴과 남이 보는 내 얼굴간에 편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보는 ‘거울속 내얼굴’ 엔 익숙하다. 얼굴이 변하고 나이가 들었지만 그걸 잘 눈치채지 못한다. 열이면 열 스스로를 ‘동안’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느느 자기 얼굴엔 그렇지 않다. 사진속의 ‘실제 내 얼굴’을 보곤 경악한다. 심해진 얼굴 비대칭만큼 사진 속 얼굴은 완전히 생소한 사람이다. '동안'은 간데 없고 나이가 켜켜히 쌓여있는 중늙은이의 얼굴이 사진 속에 있다. 그래서 소스라치게 놀란다. 난생 처음 보는 웬 늙수구레한 아저씨 아줌마. 

그래서 나이가 들면.. 사진을 잘 안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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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회로 모여 오랜만에 사진을 찍었을 친구쉐이들이 사진을 받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랬을 거 같아서 몇자 적어봤다. 넙치쉐이 제 사진보고 얼마나 놀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