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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국영수'가 왜 중요한지 이해했더라면

수학
예비고사 340점 만점에 국영수의 비중이 왜 150점이나 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싹부터 꺾어버리는 ‘국영수’위주의 한심한 교과과정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특히 수학.. 띠바 미적분을 어따 써먹는다고..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 수학시간이 어떤 날은 하루에 세시간 있기도 했었다. 치가 떨리게 싫은 놈과 매일 만나 상당시간 동안 같이 있어야만 하는 지옥같은 시간들이었다. 수학에 대한 이 극심한 스트레스는 맘잡고 공부를 시작한 고2 말 무렵부터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었다. 한 문제 푸는 데에 이삼십분씩 걸리는 본고사 수학문제들을 과연 내가 풀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수학 잘하는 샌님새끼들이 좋은 대학 가는 이 조까튼 나라..


수학 1 - 본고사 폐지
고3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전두환 각하께서 대입 본고사를 전격적으로 폐지하셨다. 본고사를 몇 개월 앞두고 수학 때문에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던 내게 각하의 그 조치는 생명의 빛이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으로 보였던 수학이 드디어 사정권에 들어왔다. 그래서 비록 늦기는 했지만 수학에 매진했다.

수학 2 - 예비고사 선전
‘대입 예비고사’ .. 모의고사 때완 달리 그날 ‘실전’에선 신기한 경험을 했다. 문제 하나하나를 꼼꼼히 붙들고 앉아 풀었었고, 그랬더니 답이 나왔고, 그 답은 네가지 보기에 어김없이 들어 있었다. 그 전엔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모의고사든 문제집 풀이든 난 수학에서 25점을 넘겨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근데 예비고사 당일 날 난 수학에서 ‘무려’ 44점을 땄다.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었다. 더 희한한 게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수학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예비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내겐 수학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학 3 - 수학의 이해
대학 1학년 교양필수과목 중에 ‘대학수학’이란 게 있었다. 아 띠바 대학에 와서도 또 수학? 대부분의 강의를 빼먹던 시절, 내가 그 수학시간에 들어갔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시험 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었기 떄문에 기말고사는 수학과 교수실에서 나 혼자 치렀었다. 시험 보다 말고 심부름 나가서 담배도 사오고, 주전자에 물도 떠오고, 할아버지 교수도 내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면서 피차 마음 편하게 시험을 치르던 중 용기를 내어 평소 늘 궁금하던 걸 물어봤었다.

‘교수님은 수학이 재밌으세요?’ 노교수가 빙그레 웃는다. ‘왜? 넌 재미없냐?’ 그리곤 몇마디를 해 주샸었는데.. 그 내용은 다 잊어먹었지만 그때 그 교수가 난생 처음으로 수학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게 해줬었다. 그토록 혐오하던 수학이 왜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지, 그래서 수학 공부는 ‘대학의 입학’ 때문이 아니라 ‘대학과 그 이후의 평생 공부’ 때문에 한다는 걸, 또 대학들이 입학생들의 수학능력을 변별하는 데는 국영수가 가장 유효하다는 것을 그 때 이해했었다. 아 --- 깨달음의 희열로 벅찬 감동이 솟았었다.


수학에 억눌려 꿈을 잊고 살았던 세월
그러나 그 벅찬 감동은 잠시, 교수실을 나서자마자 욕이 나왔다. 중고등학교 때 거쳐간 여섯명의 수학선생들에 대해서다. 수학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그걸 이해시켜 준 선생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거다. 그들이 해 준 말이라곤 단지 이거였다. ‘이거 시험에 많이 나온다’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내가 이해했었더라면 수학공부로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수학에서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았더라면 내 인생에서 어쩌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지긋지긋한 수학과 씨름하며 괴로워하느라 내가 진정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이건 비단 수학뿐만이 아니다. ‘국영수가 왜 중요한지’ 이것을 이해했었더라면 내 청춘은 훨씬 더 따뜻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나는 어쩌면 지금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지나간 일들이었지만 이거 억울했다. (물론 그때 수학이나 국영수 스트레스가 없었더라도 내 인생에 별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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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영수 더 강화
내용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과정 개편안이 ‘국영수’가 오히려 강화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모양이다. 국영수.. 지금 다시 들어도 징그럽다. 치가 떨린다. 이 국영수를 흔히 도구과목이라고 부른다. 모든 학문들의 1차적 수단이 되는 기초과목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 과목은 중요하다. 하지만 난 학창시절 내내 이걸 몰랐었다. 국영수위주의 교과과정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영수가 주름잡던 학창시절 내내 몹시 힘들어 했었다. 띠바 억지로 하느라.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과외를 받고 학원을 다녀야만 따라갈 수 있는 국영수 위주의 이 교과과정을 혐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영수를 공부하느라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을 깡그리 묻어버린 채, 친구들을 경쟁자로, 교실을 전쟁터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꿈이 무엇인지는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전투력 향상을 위해 국영수에 매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다. 아이들을 이렇게 내모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근데.. 이 정부는 그 망할 놈의 국영수를 더 강화한댄다.

국영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대학들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변별하는데 이 국영수가 가장 유효하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국영수라 한들 이것이 더 강화된다는 소식엔 속이 상한다. 지금도 아이들이 국영수 때문에 질식할 듯 힘들어 하는데, 이걸 더 강화한다니, 지금도 사회전체가 이 국영수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데 이걸 더 강화한다니..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까짓거 좀 힘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국영수 교육을 강화한다는 데에 이에 대해 이의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금의 교육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심각한 ‘병리적’인 상황이다. 정상적인 룰과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 교육문제 때문에 전 국민이 미쳐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위기라는 인구감소도 바로 이 숨막히는 교육현실에서 기인한다. 질식할 것 같은 미친 교육 현장에 아이를 내몰고 싶지 않아서, 미친 사교육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어서..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거다.

근데 국영수를 오히려 더 강화하겠단다.


이런 학교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학교가 ‘전쟁터’가 아니라 ‘놀이터’라면 좋겠다. 그곳은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협력하여 아이들 저마다의 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가르치고, 떠밀기보다는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곳이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숨 쉴 공간이 넓어져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이런 꿈을 꾸던 대통령을 돌팔매질로 죽인 국민들 아니든가. 짓밟고 일어난 자들이 나라를 이끄는 것이며, 그런 자들만 잘 살아야 한다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 아니든가.

국영수가 더욱 강화되고 아이들간의 피 튀기는 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걸 막을 수 없을 거다. 이 잔혹한 시대에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거라곤 겨우 이거다. 아이들에게 ‘국영수가 왜 중요한지’ 이것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이해시켜 줬으면 좋겠다. 그걸 이해하면 최소한 아이들이 질식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