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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개인의 이혼에 국가는 어디까지 참견?

4년 섹스리스 부부, 이혼 불허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A씨가 부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05년 혼인한 A씨와 B씨는 미국으로 함께 출국했다가 A씨가 공부를 마친 뒤 귀국해 A씨의 본가에서 부모와 함께 생활해왔다. 이들은 신혼여행 기간은 물론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고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A씨의 부모가 부부관계를 갖도록 노력해 보라고 했지만 그 후에도 맺지 않았다. A씨는 2007년 이혼소송을 냈고, 재판중 진행된 조정 화해절차에서 A씨는 B씨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A씨는 강력하게 이혼의사를 밝히고 있었고 B씨는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전문적인 치료와 조력을 받으면 정상적인 성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시적으로 성기능 장애가 있거나 부부간 성적인 접촉이 단기간 없어도 그 정도의 성적 결함만으로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이혼을 최종 불허했다.

부부간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이 기사만 보면 2005년 신혼여행에서부터 4년 이상 부부간 섹스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거다. 여자가 왜 섹스를 거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거 심각한 상태다. 속말로 ‘섹스를 안할거면 결혼은 왜 했대?’다. 자손 번식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자식을 원하는데 부인이 섹스 자체를 거부한다면 이거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근데 대한민국 법원은 ‘이 정도의 성적 결함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최종 판결하고 이들의 이혼을 불허했다. ‘제발 이혼시켜달라’고 계속 상고하는 사람을 ‘넌 섹스하러 결혼했냐? 띠바새끼’ 해버린 거다.


Fault Divorce vs No-Fault Divorce
이혼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크게보면 딱 세가지다.

①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안 맞는다. 서로 노력해 보지만 도저히 안된다. 하루하루가 피차 지옥이다. 그래서 상호 합의하여 이혼한다. - 합의(상호동의) 이혼

② 배우자가 딴 살림을 차렸거나, 도박이나 종교에 미쳤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혼 소송을 내어 이혼한다. - 유책이혼

③ 그 인간은 내가 좋단다. 아니 적어도 싫지는 않단다. 하지만 나는 저 인간이 갈수록 싫다. 특별히 잘못하는 것은 없지만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싫다. 합의 이혼하자고 했는데 그 인간이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이혼 수속 밟아서 이혼한다. - 무책이혼(파탄이혼)

합의이혼은 간단하다. 상호동의하에 가볍게 이혼해 버리는 거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물론 자녀들의 정서문제, 양육문제, 재산 분할문제 등은 논외로 한다.) 두번째 유책이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혼의 사유가 명백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또라이 짓으로 부부관계 유지가 어렵다는 걸 증명해야 이혼이 허락된다. 마지막 유책이혼(파탄이혼)은 누구의 잘잘못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일방이 이혼을 요구하면 국가는 이혼 이후의 재산문제와 양육문제만을 판단한 후 이혼을 허락한다.

유책이혼(Fault Divorce)과 파탄이혼(무책이혼 No-Fault Divorce).. 가능한 한 이혼을 어렵게 만들어 가정을 지키자는 것이 Fault Divorce의 취지고, 이혼을 쉽게 만들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자는 게 파탄이혼 No-Fault Divorce의 취지다.


우리나라는 Fault Divorce
우리나라는?.. 당연히 Fault Divorce를 채택한 나라다. 어느 한쪽이 이혼하고 싶다고 맘대로 이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상대방의 잘못이 반드시 국가가 정한 사유에 해당되어야 이혼이 가능하다. 남녀의 이불 속까지 간여하는 간통죄가 아직 남아있는 나라이니 이렇게 개인들의 혼인관계를 국가가 규제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 민법 제840조에 나와있는 이혼 성립 사유는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간통죄로 쳐 넣는 게 1항이고.. 5항도 재밌다.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생사가 불분명한 배우자라도 3년은 기다리라는 말인데.. 아무튼 1에서 5항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6항이다.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이렇게 애매모호한 표현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렇다면 법관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을 할까? 이혼 소송의 판례를 참조해 보자.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 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하며,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혼인 계속 의사의 유무, 파탄의 원인에 관한 당사자의 책임유무, 혼인생활의 기간, 자녀의 유무, 당사자의 연령, 이혼 후의 생활보장, 기타 혼인관계의 제반 사정을 두루 고려한다’

다시 4년 섹스리스 부부 케이스로 가보자. 국가가 여러가지를 두루 고려하더니, 목석 같은 아내와 그냥 계속 같이 살라고 판결했다. 이미 파탄 난 부부관계는 아무리 같이 살아봐야 회복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이 부부를 억지로 같이 살게 했다. 아무리 가정이 중요하지만 이건 뭔가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나라는 No-Fault Divorce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차이는 약간씩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Fault Divorce를 포기하고 No-Fault Divorce를 채택했다. ‘실질적으로 결혼관계가 깨졌으면 그것이 곧 이혼사유’가 된다. 4년간 섹스를 거부해 부부관계가 깨졌으면 이건 당연한 이혼사유다. 세계적인 추세는 이미 No-Fault Divorce다. 국가가 개인들의 사생활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라지고 없다. 이혼은 전적으로 개인들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다.

(이민가서 느끼는 것중 하나..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 참 많다는 거. 이혼이 자유로와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민생활이 워낙 각박해서 그런건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각박한 이민생활에 부부간 더 싸우게 되는데, 거기에다 이혼 절차까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이혼이 많을 거다.)


딜레마.. 우리나라가 OECD 국가중 이혼율 3위
쉬운 문제는 아니다. Fault Divorce만 인정해주자니 웬수같은 인간과 억지로 살아야 하는 숨막히는 사람들이 생기고, No-Fault Divorce를 인정하자니 너무 쉽게 이혼을 해버려 여러 가정들이 파탄날까 두렵다. 가뜩이나 이혼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는데 금세라도 전 국토가 결손가정으로 넘쳐날 것 같이 걱정된다. 그래서 4년 섹스리스 부부의 이혼도 불허한 것이겠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려는 국가의 이런 노력이 실제로 먹히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통계를 보면 2007년 현재 OECD 국가중 이혼율 3위가 바로 우리나라다. 미국 51%, 스웨덴 48%에 이어 한국의 이혼율이 47.4%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4년 섹스리스 부부의 이혼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도덕의 나라'가 이혼율 3위라.. 

이혼을 쉽게 할 수 있게 해두면 가정이 절딴 날거라는 걱정, 그래서 이혼을 어렵게 해야 가정이 보호된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반증이다. 


이혼이 쉬워야 부부가 서로 존중한다
미국의 남자들은 아내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물론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이겠지만 일면 이런 것도 있다. 이혼 당하면 남자는 거의 패가망신한다는 현실. 집 뺏기고 전처 생활비에 아이들 양육비.. 등골이 휜다. 애 딸려서 이혼당하고 제대로 사는 남자 없다. 그래서 미국의 남자들은 마누라 눈밖에 나지 않으려 각별히 조심한다. 자나깨나 마누라 심기 조심..

하지만 우리나라 일부 남자들.. 배짱이다. '뭐 이혼? 그래 해봐. 그게 어디 니 맘대로 되나' 법에서 정한 것만 조심하면 이혼 당할 염려 없다. 그러니 아내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아 가부장적 부부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없다. 그런게 쌓이고 쌓였다가 황혼에 이혼 당하고 비참한 말년을 맞는다.

역설적이지만.. 이혼이 쉬워야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한다. 


이혼은 개인 가치관에 맡겨야 할 문제 
결혼관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일까? 개인들의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부부간의 애정, 자녀와 가정의 보호, 섹스, 법적인 혜택, 밥줄, 가문간의 전략, 친구 같은 관계.. 다들 나름대로 중요하겠지만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부부간의 애정이다. 아무리 다른 것이 중요해도 부부간의 애정이 없다면 부부관계의 유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는 ‘결혼관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가정보호’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그걸 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발 맞추어 나가라고. 

4년 섹스리스 부부.. 결혼 이후 섹스가 한번도 없었다는 부부.. 이혼하고 싶어했다. 그 부부에겐 이혼으로 상처를 입을 아이들도 없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들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 노력하랜다. 하지만 이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라’고 한 셈이다. 어찌보면 남녀를 떠나 간통을 하거나 매춘을 하라고 부추긴 셈이기도 하다. 그래놓고 간통을 하면 잡아넣고 사창가나 게이바는 단속한다.

물론 이혼을 거부하는 부인이나 죽어도 이혼하겠다는 남편에게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섹스가 중요해요’ 하는 사람에게 ‘새꺄 섹스 없어도 그냥 살아’ 해버린 건 해도 너무했다. '사랑이 중요해요'하는 사람에게 '새꺄 사랑없어도 그냥 살어' 해버린 건 국가의 횡포다.  


국가가 할 일
결혼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부부간의 애정이다. 전혀 국가가 간여할 사항이 아니다. 국가는 이혼 이후, 배우자와 자녀의 복지나 재산분할 문제에만 간여하면 된다. 이혼으로 인해 내동댕이 쳐지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그것만 신경쓰면 된다. 

대한민국 사법부.. 공부만 파다가 법복을 입고있는 당신들에겐 섹스가 '그림의 떡'이거나 '불가능한 과업'인지 모르나,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좀 아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부부의 이혼에까지 간섭하는 그런 시대착오적 비상식적인 권한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는 게 좋겠다. 욕 먹는 거 지겹지도 않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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