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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2009 LA별곡 결산

'형도 한 손으로만 글을 쓰잖수..' 플로리다 동가가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내게 했던 말이다. 오랜만에 소식을 듣고 반가움에 내 블로그를 찾았던 친구나 선후배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곧 기분이 상해 돌아선 사람도 있었을 것임을 안다. 자기의 가치관과 너무나 다른, 때에 따라선 자기의 이념과 가치관을 경멸하는 듯한 글을 읽고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한 사람이 내게 얘기해줬었다. ‘당신 블로그는 너무 치열해서 들어가기가 꺼려져’ 동가의 얘기나 이 사람의 지적이나, 내 글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뜻이었겠다. 그 치우친 글의 주제는 당연히 종교와 정치문제였을 것이고.


종교와 정치의 언급은 금기
내가 가장 부조리하다고 믿는 분야는 바로 종교와 정치다. 그래서 내가 꿈꾸는 이상향은 바로 종교와 정치가 아예 없는 그런 세상이다. 내가 종교와 정치에 대해 할말이 많은건 이래서 당연하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은 사람들마다 철저하게 다르다. 국민의 삼할은 이명박을 ‘구국의 지도자’로 여기지만, 또 다른 국민의 삼할은 이명박을 ‘겨레의 원수’로 여기며 살의를 품고 있다. 국민의 삼할은 예수와 야훼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떠 받들지만, 또 다른 국민의 삼할은 예수와 야훼를 더러운 잡귀신으로 여긴다.

어떻게 같은 대상을 놓고 이렇게 엄청난 시각 차가 있는 것일까? 정치와 종교라는 게 애당초 합리성이 파고들 여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에 발을 들이면 이성은 철저히 배제된 채 그냥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게 된다. 그래서 토론과 설득이 아예 불가능해서 이 주제로 말을 꺼냈다간 결국 서로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아주 위험한 주제다.

나도 이걸 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이 주제들을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누가 아무리 집요하게 접근을 해도 빙글빙글 웃을 뿐 대꾸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정도가 심해지면 그제서야 단칼에 베어버린다. 나의 일상생활에서 종교과 정치의 언급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하지만 블로그에는 어쩌다 실수할 때가 있다. 근데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그 글은 야후의 메인 페이지에 올려지고 난 여지없이 공격을 당한다. 어떻게 내 메일주소를 알았는지 메일로도 온다. 타이르는 글, 조롱하는 글, 인신공격하는 글, 저주하는 글.. 처음에는 이걸 다 읽었었다. 반대의견도 수렴하는 것이 당당한 자세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즈음엔 전혀 읽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도 거기에 익명으로 끼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철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 이런 얘기들은 닥치기로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미주한인교계의 횡포와 부조리에 대해 얘기했었다. ‘종교얘기’가 아니라 ‘사회얘기’니까 별탈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주 호되게 당했다. 며칠 전엔 크리스마스 얘길 했었다. ‘기독교 스스로 인정하는 얘기’니까 별탈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착각이었다. 어젠 ‘남의 공 가로채기’에 대한 얘길 했다. ‘정치얘기’가 아니라 ‘도덕 얘기’니까 별탈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역시 오산이었다. 나를 ‘적 그리스도의 꼬붕’이나 ‘마귀 사탄’이라고 규정한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무척 자숙하고 있는데 그들에겐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싫어하는 건 광신도
나는 기독교나 불교 자체를 싫어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다만 광신도들만을 혐오할 뿐이다. 나는 그들 광신도들을 우리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본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내가 더 암적인 반종교주의자로 비춰질 것임을 안다. 나는 그들을 영혼이 오염된 존재들로 여기지만 그들은 나를 신의 사랑을 모르고 사는 불쌍한 존재로 여길 것임을 안다. 내가 비록 스스로를 인본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눈엔 하나님과 부처님을 능멸하는 마귀로 비춰질 것임을 안다.


내가 싫어하는 건 수구꼴통
나는 보수주의자다. 따라서 나는 결코 한국의 보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다만 60년대 사고에 묶여있는 수구꼴통들만을 혐오할 뿐이다. 나는 그들 수구꼴통들을 국가의 장래를 망가뜨리는 병균으로 본다. 하지만 그들의 눈엔 내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반체제주의자로 비춰질 것임을 안다. 나는 스스로를 미래지향적인 합리보수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눈엔 철없는 사회주의자나 위험한 친북좌파로 비춰질 것임을 안다. 나는 스스로를 낙천적인 이상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눈엔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패배주의자로 비춰질 것임을 안다. 나는 멋 있으라고 옆얼굴 사진을 올린 건데 그들은 그게 내 열등감의 증거란다.


접점이 없다
접점을 찾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과 나 사이에 접점이나 타협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그들 사이만이 아니다. 그들과 또 다른 그들사이도 마찬가지다. 결코 접점이나 타협점은 없다. 이게 바로 종교와 정치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절대절명의 이유이다. 종교와 정치가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준 것이라곤 오직 갈등과 반목뿐이었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전혀 다름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아무리 싫더라도 노무현이 잘한 것엔 박수를 쳐줘야 한다. 노무현이 아무리 좋더라도 노무현이 잘못한 것엔 비판해야 한다. 이명박이 아무리 싫더라도 이명박이 잘한 것엔 박수를 쳐줘야 한다. 이명박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명박이 잘못한 것엔 비판해야 한다. 또 교회가 아무리 싫더라도 교회가 잘한 것엔 박수를 쳐야한다. 교회가 아무리 좋더라도 교회가 잘못한 것엔 비판해야 한다. 절이 아무리 싫더라도 절이 잘한 것엔 박수를 쳐야한다. 절이 아무리 좋더라도 절이 잘못한 것엔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런 게 없다. 한번 좋으면 무슨 호로 짓을 해도 이쁘고, 한번 싫으면 그 어떤 좋은 일을 해도 싫다. 종교와 정치가 극도로 타락한 채 패거리 싸움으로만 얽혀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이 종교와 정치가 명확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종교와 정치가 없는 곳
그래서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 바로 종교 정치가 없는 그런 세상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불교 자체를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없어져 줬으면 그게 더 좋겠다. 군집생활을 하는 인류에게 정치의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없어져 줬으면 그게 더 좋겠다.

하지만 이런 이상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류가 멸종하는 날까지 종교와 정치는 계속 인류를 속박하고 있을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다.


빠져들지 말고 늘 깨어있자
우리가 종교나 정치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으면 된다. 그간 블로그에서 많은 분들을 기분나쁘게 했을 수도 있는 내 주장은 기실 이것 뿐이었다. 종교에 미혹되지 말고, 정치와 이념에 몰입하지 않기. 종교인이되 광신도는 되지 말고, 정치에 관심을 두되 패거리 이념투쟁은 하지 않기다.

하지만 자칫 정신을 놓으면 종교에 빠져들고 정치에 빠져든다. 이게 인간의 속성이며 정치와 종교의 마력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게 그간 내 주장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게 기분 나쁘게 들렸을 수 있다. 인정한다. 그래서 죄송하다. 2009년 내 글로 기분이 상하셨던 적이 있었던 분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사과보다는 감이 더 좋다'는 이상한 사람이 있는 세상이지만, 나를 할퀴셨던 분들도 내 사과를 기꺼이 받아주시리라 믿는다.


2010년은 종교와 정치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