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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흑석동 벽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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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도록 빈 벽돌 속에 시를 점화하며,
수신자 불명의 편지만 켜켜이 쌓여가던 세월,
그 아이는 떠나고 벽돌집도 이내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가슴속 노을 한 채 지워지지 않는다
내 구워낸 불들 싸늘히 잠들고
비록 힘없이 깨어지곤 하였지만


고색 창연한 오지벽돌집과 그 벽돌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뒤덮고 있던 담쟁이 덩쿨, 꽤 넓었던 마당을 윗쪽과 아래쪽에서 꽉 채우고 있던 아주 커다란 아름드리 푸른단풍 그리고 빨긴단풍 두 그루와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온갖 풀들 꽃들, 진도개 한마리. 봄부터 가을까지 그 동산은 언제나 갖가지 색의 온갖 나무와 꽃들로 항상 붐볐고, 나는 그 동산 이곳저곳을 '惡姬'와 뛰어다니곤 했었다.

어느 봄날, 이미 개나리는 동산에 많이 있었다. 그래서 개나리의 노란색에는 분홍빛의 진달래와 철쭉이 있어야 한다고 그것들을 캐러 안양(산본)의 산에 갔었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있는 이른 봄날, 꽃망울 진 작은 진달래와 철쭉을 트렁크 가득 실었다. 산 전체를 차에 실은 듯 뿌듯팜.. 한그루 한그루 정성스레 심었다. 한 오십그루쯤 되었었을까. 살아남아 뿌리를 내린 그것들이 피기 시작했을때, 집의 뒷동산은 노란 개나리와 분홍빛 진달래, 철쭉으로 가득했었다. 개나리의 노란색은 역시 분홍의 진달래나 철쭉이 있어야 더욱 예쁠거라던 엄마의 말씀이 딱 들어맞았다.

노란 개나리와 분홍 진달래, 영산홍, 철쭉이 같이 피어있는 자그마한 동산은 엽서속 예쁜 그림이었다. 지나가는 비나 안개라도 걸쳐지면 그대로 한폭의 수채화가 되던 곳. 저녁과 새벽에 울리던 뒷산 작은 암자의 종소리. 안개낀 새벽, 창밖으로 나무들이 어슴프레 보이는 그사이로 먼 산속에서 들리는 듯 그 범종이 울리면.. 어린가슴에도 그것은 감동의 서정시였다.

하지만 우린 그 집을 떠났었다. 아주 아프게 떠났었다. 한동안 가지 않았었다. 가슴이 아플까봐.. 꽤 오랜시간이 흐른 후, 내 마음속 그 '아름다운 동산'을 다시 찾았다. 아름답던 벽돌집, 울창하던 뒷동산은 간데없고 회색빛 썰렁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벽돌집은 헐리고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아! 다시 찾지 말것을..' 그러나 이미 내 눈과 가슴은 날카롭게 베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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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는 어느가족들의 모습을 TV에서 보다가 그 옛날 아름답던 흑석동집이 생각났다. 이제는 간데 없이 사진속에만 남아있는 그 집. 집의 전망은 환상적이었다. 반포쪽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그것도 풍수지리에서 쳐준다는 '들어오는 물만 보이고 나가는 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백점짜리 臨水. 요즈음 시세로 한강이 잘 보이는 아파트 한채값이 18억원 이라네. 그렇다면 대지 250평, 건평 64평의 삼층 벽돌집.. 요거 잘 간수했으면.. 미국에 와서 살지 않아도 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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