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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성내동 까페 '하얀집'

성내동 버스정류장 근처에 '하얀집'이라는 조그마한 까페가 있었다. 얼마나 하얀지 보자고 처음 들어갔던 곳. 참 작다. 옛날 중대앞 '따지'보다 조금 클까? 테이블이래야 너덧개. 맞아 그집의 피아노가 하얀색이었고 그래서 그집 이름이 하얀집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노래하기를 참 좋아하는 중년의 여자 사장님, 그리고 피아노를 아주 잘 치던 남자와 그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잘 부르던 여자. 나이는 여자가 한참 위로 보였는데 아마 그 둘은 연인사이인 듯했다. 

지하실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고 우리가 그 집에 들어설 때 그들이 진심으로 반갑게 우릴 맞아주는 게 참 좋았다. 그곳에선 모두가 밝았었다. 따뜻하고 재밌는 이야기들만 주고 받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까르르 웃곤 했었다. 낯선 다른 손님이 들어와선 우릴 보고 놀래서 다시 나가기도 했었다. 근데 주인은 그걸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이래서 이 가게 유지될까.. 처음엔 조금 부담도 됐었는데 다행히 사장님이 장사보다는 우리와 같이 노래하고 노는 걸 더 좋아함을 알고는 신경 안 쓰기로 했다. 그 사장님 진짜 직업이 따로 있었으니, 하얀집은 그저 사장님의 감수성 만족용도로 하는 듯 보였었다. 그 사장님의 십팔번은 등대지기.. 가끔 사장님이 그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썩 잘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중년의 여자가 부르는 그 동요는 재즈로 들리곤 했었다. 

피아노를 치며 그들이 그들의 노래를 하면, 우리는 기타를 치며 우리 노래를 불렀었다. 때로는 그들 피아노에 우리가 노래하고, 우리 기타에 그들이 노래하고, 때로는 다같이 노래하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면 열성적인 박수가 있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음악으로 통하니 박수와 환호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던 거다.

공간이 작은 만큼 아주 아늑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 지하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밖에 비가 오고 있습니다’ 하면 밖에는 비가 내렸고, ‘함박눈이 펑펑 나리고 있어요’ 하면 눈이 내렸었다. 비가 오면 비 노래, 눈이 오면 겨울 노래.. 참 레퍼토리도 무궁무진했다. 

그 '하얀집'에서 맥주로만 기분을 올리기에는 주머니가 너무 가볍던 그 때, 미리 들르던 집이 한군데 있었다. 버스 정류장 앞 시끌벅적한 싸구려 횟집. 아나고회 한접시에 쏘주 두어병을 마셔도 만원이 채 안나왔었던 것 같다. 이름은 생각이 안난다. 제목은 횟집이었는데 실제 분위기는 싸구려 선술집이었다. 미닫이 나무 문짝이 덜그럭거리는 곳이라 겨울엔 찬바람이 안까지 그대로 들어오곤 했었다. 안에 연탄난로가 하나 있었지만, 쏘주를 털어넣으며 뜨거운 오뎅국물을 마시고 이야기를 많이 해야 추위를 느끼지 않던 그런 집이었다. 그렇게 별로 따뜻하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겨울 밤 퇴근하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안에서 보면서 '쟤네들 참 춥겠다 밖에서..' 할 정도로 우리 마음으로 따뜻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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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던 성내동 살이에서도 보석같은 즐거움을 주던 이 '하얀집'과 이 싸구려 횟집. 에어컨이 유난히 세게 나오는 날, 팔뚝에 추위가 느껴지자 갑자기 이십여년 전 그때 성내동 정류장 앞 하얀집과 그 허름한 횟집이 떠오른다. 이유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