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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스키 도전기

야채가 다니던 회사에서 직원 전부 스키장에 가는데 나도 같이 가잰다. 그렇게 그 회사 직원들끼리 가는데 꼽살이 껴서 처음으로 스키장이라는 델 가봤다. 콘도에서 짐을 풀고 나눠준 스키복을 받아 갈아 입는데.. 띠바 이런 걸 스키복이라고.. 싸구려 티가 나도 너무 난다. 반면.. 사장 식구들이 입은 스키복, 우리 꺼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띠바쎄이가 이왕 샘플로 납품하고 남은거 주는거면 우리꺼도 지들꺼랑 비슷한 걸로 줄 일이지. 그 사장은 스키복 주고, 콘도비용 대고, 스키장 비용 다 댔으면서도 두고두고 욕 먹었다.

(지산 스키장 - 처음 머리 올린 곳. 골프 머리올린 곳도 지산 골프장.. 지산과 인연이 깊다)

강사에게 교육을 받는다. 이 불편한 걸 발에다 끼우고 어찌 눈길을 타고 내려온단 말인가.. 길다란 스키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어느 정도 방향전환이 되고 정지가 되고.. 드디어 초보자 코스로 올라간다. 사타구니에 접시 같은 걸 끼우고 올라가는 리프트, 사타구니에 어중간 걸치고 가다가 그게 빠졌다. 나는 뒤로 자빠지고.. 리프트가 통채로 섰다. 쪼그만 애들도 잘 타고 가는데.. 완전히 새됐다.

올라가다보니 거리도 얼마 안되고 경사도 거의 없다. 겨우 이정도라면 여기서 서너번 타고 바로 초급코스로 넘어가기로 맘 먹었다. 드디어 초보자 코스 위에 섰다. 그러나 이럴 수가.. 아래에서 봤을땐 평지같더니 위에서 내려다 보고 서니 까마득한 절벽이다.

‘먼저 내려가시죠’
‘아니 따라갈 테니 먼저 내려가세요’
야채네 사장과 서로 미루다가 결국 내가 먼저 출발을 했다. 무서웠지만 뒤에서 보는 눈이 있어서 직진을 했다. 아뿔싸 너무 빠르다. 그냥 자빠졌다. 안되겠다. 사선으로 가야겠다. 그러나 이번엔 방향전환이 안된다. 할 수없이 방향잡고 한번 가다 끝에서 망에 걸려 넘어지고, 일어서서 반대로 방향잡고 한번 가다 그 끝에서 또 넘어지고.. 이거 꼴이 말이 아니다. 야채네 사장도 나를 따라 똑같이 하고 있다.
‘왜요 펄펄 날아 내려가신다더니..’
‘사돈 남말 하십니다’

스키장이 푹신푹신한 눈밭인줄로 알고 있다가 그게 얼음가루 덮힌 얼음덩어리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양쪽 팔뚝이 얼얼하다. 넘어질때 팔뚝이 하도 아프니 이제는 넘어질 때 몸으로 그냥 넘어진다. 몸 전체가 쑤신다. 그래도 했다. 내 언제 내 돈내고 또 오겠노.. 오늘 뿌릴 뽑는거다. 둘째날 오전에 드디어 초보자 코스에서 문제없이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초급 코스로 가기로 했다. 근데 이놈의 스키장.. 초보자 코스와 초급 코스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 죽는 줄 알았다. 뿌리를 뽑긴커녕 골병만 심히 들었다.



우리 대빵이 모대학 스키부 출신이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스키부 후배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석에선 회장님이지만 사석에선 그냥 형이다. 서클생활을 같이 해서 그런가, 공유하는 얘깃거리가 많은지 지들끼리 할 얘기들도 많다. 선배를 믿고 까부는 스키부 후배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는 게 많다. 띠바 스키부 쉐이들. 날 잡아서 손 좀 봐줘얄텐데.. 암튼 스키부 패거리들 땜에 스키라는 거에 주눅이 들고 한이 맺혔다.

어느날 대빵의 대학 후배가 또 하나 들어왔다. 삼성에 근무했었다는데 경력으로 쳐서 지금까지 들어온 자 중 제일 낫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데 그 놈이 들어왔다. 나란히 선다. 아 따식 나 다 끝난 다음에 눌 일이지..
‘혹시 너도 스키부 출신이십니까?’
‘전 아닌데요.’

이놈이 독일병정이다. 당시엔 고등학교까지만 족보를 캐어보고 말았었는데, 어느 술좌석에서 이놈이 다른 놈들을 붙들고 상도중학교.. 어쩌고 하는걸 듣고서야 중학교후배인줄 첨 알았다. 넌 이제 나한테 죽었다.



몇 년 후, 스키 바람이 불었다.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스키셋트와 스키복을 샀다. 내 부츠에 스키로 내 스키복을 입고 뒹구니 드디어 맛을 조금 알겠다. 찬바람을 가르고 내려오는 얼얼한 그 맛이 일품이다. 좋다. 올해 스키를 마스터 하는 거다. 콘도회원권을 사용치 않던 친구를 꼬셔 내 이름으로 콘도 사용자 명의 변경도 했다. 토요일마다 스키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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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스키장 - 명의 변경한 콘도회원권덕에 제일 뻔질나게 가던 곳)

그렇게 스키장을 콘도를 향해, 통나무집을 향해 다니던 여행길. 송충이가 그리워 하는 그 여행길들이다. 알프스 음악 들으며 다니던 그 여행길들. 담에 그 추억도 짚어보자.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 - 이름이 예뻐서 한두번 가본 곳)

열심히 하지만 아직 A 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거 영 폼이 안 난다. 운동은 폼이다. 무조건 일단 패럴럴 턴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A턴을 버리니 또 다시 넘어지기 시작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바람만 스쳐도 몸이 아프다. 밤새 아파 끙끙 앓는다. 그러나 담날 아침 일찍부터 오전스키를 탄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능력 이상의 코스에서 뭉개다 패트롤에게 경고를 먹고 쫓겨났다. 이 치욕.. 잊지 않겠다.

같은 해였는지 다음해였는지.. 독일병정, 따식 어디서 배웠는지 좀 탄다. 하지만 나보다는 조금 못 타는 것 같다. 근데 이놈은 자기가 나보다 좀 잘 타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웃기는 놈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누가 더 잘타냐?’ ‘둘이 비슷해’ 어? 아직 내가 저 정도밖에 안돼? 기분 나빴지만 그놈은 나보다 더 기분 나빠한다. 하튼 웃기는 넘이다. 나랑 비슷하다면 기분 좋아해야 할 넘이..

폴포트네 부부도 함께 갔다. 근데 이놈 리프트에서 일어나서 내릴 때 꼭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치고 일어난다. 이넘때문에 리프트 꼭대기에서 전부 넘어져서 망신을 당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송충이와 합의했다. 우리가 먼저 저놈을 밀쳐버리자. 그놈 혼자 망신 당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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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 피닉스 파크 스키장 - 폴포트가 구해준 할인 숙박권으로 다니던 곳)

코스를 내려오다가 중간쯤에 모여서서 숨 몰아쉬며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도 즐겁다. 펄펄 날 줄 알았던 송충이가 좀 더디다. 모든 운동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발달한 놈이 이상하게 스키는 좀 더디다. 아마 겁이 좀 많은가 보다. 본인도 인정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거 같다고. 고소공포증? 속도공포증이겠지.. ㅋㅋ

이제 중급코스에서도 다리가 그렇게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속도를 조금만 줄이고 신경을 좀 쓰면 무릎이 거의 붙는다. 슬슬 스키의 맛을 알겠다. 어느 스키장엘 가도 중급코스는 재밌다. 중급코스에서 얼쩡거리는 초짜들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아 셰이들 연습 좀 더하고 일루 올 일이지.. 거 되게 방해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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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평 스키장 - 이름을 좇아 몇번 가본 곳)

‘야 고급코스 어때?’ 패트롤이 뜸한 야간을 틈 타 고급코스로 올라갔다. 이건 진짜 절벽이다. 이걸 어떻게 내려가나.. 각도를 완만하게 잡자니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각도를 급하게 잡자니 턴하기가 힘들다. 겨우 내려온 다음에 결론 지었다. 고급은 좀 더 연습한 다음에 와야겠다. 이젠 스키장에 대해 겸손해지기까지 했다.



마지막 해, 스키를 아주 잘 타는 사람을 꼬셔 같이 왔다. 진짜 잘 탄다. 스키선수들 모양새가 그대로 나는 사람이다. 그에게 레슨을 받고 배운대로 연습하며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는데 독일병정이 어디선가 급하게 나타나서 외치고 지나간다.
‘지금 형수가 누구랑 부딪혀서 기절하신거 같거든요. 빨리 따라오슈’

급하게 내려가는 그 놈을 따라 가봤더니 진짜로 야채가 눈위에 힘없이 앉아있다. 직활강으로 내려오던 수준 미달 넘이 직빵으로 부딪혔는데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바로 깨어났댄다. 독일병정은 리프트 타고 가다가 이 장면을 직접 봤고. 구급대가 올때까지 기다리려는데 괜찮다며 직접 내려 갈 수 있댄다. 천천히 내려와 의무실에 눕혔다.

근데.. 마눌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신경은 밖으로만 쓰여진다. 아 띠바 시간이 자꾸 가는데.. 조금만 하면 드디어 마스터인데.. 눈치를 챘는지 야채가 입을 연다. ‘난 괜찮으니까 나가서 타’
몇번 거절하는 척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뒷통수가 간질간질하긴 했지만, 나와버렸다.

‘아니 형수님 의무실에 누워계시는데 옆에 안 계셔도 됩니까?’
‘괜찮답니다. 근데 독일병정 어디 갔습니까?’
‘지금 열심히 연습하고 있던데요’
아니 이놈이.. 형수가 누워계신데 그틈을 타 혼자서 연습을?


그때였었나, 아니면 그 다음에 갔을때였나.. 내가 내려오는 걸 슬로프 밑에서 그가 유심히 지켜보다가 정말로 기쁜 말을 내게 해 주었다. 입이 찢어져라 웃게 만들었던 그의 말.

‘이제 자세 아주 좋으시네요.. 무릎도 전혀 안 벌어지고. 이렇게만 계속 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니 그런 과찬의 말씀을.. 근데 진짭니까?’
‘정말입니다. 아주 좋으세요’
‘우하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독일병정은요?’
‘그분도 좋으신데 조금 더 하셔야 될거 같아요. 이 말씀 독일병정에게 하지는 마세요.’
‘알았습니다. 우하하하.. 우하하하..우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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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한창때의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ㅋㅋㅋ  * 경고 ! 독일병정 악플 절대 금지)


한국에 함박눈이 정말로 탐스럽게 왔다며?
스키장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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