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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동요는 우리들 엄마의 노래

동요는 아이들의 노래다. 그래서 童謠다. 엄마 아빠 누나 이야기, 꽃이야기, 동물이야기.. 근데 정작 내가 동요의 당사자였던 어릴적엔 이게 참 시시했었다. 판에 박힌 너무나 뻔한 이야기로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게 동요는 그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박자 음정 맞춰서 부르던 교과서의 노래였을 뿐이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예요..’ ‘여름엔 마음이 파랄거라고? 웃기셔..’ 그래서 그때엔 몰래몰래 어른들의 노래를 훔쳐 따라하기 시작했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그러나 내가 왜 동요를 시시하게 여겼었는지 진짜 이유는 얼마전에야 알았다. 내 어릴적 동요를 좋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동요라는 게 바로 어른들, 그것도 중장노년들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문득문득 동요가 흥얼거려지며 가슴이 먹먹해 오는 걸 보고 그제서야 동요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던 거다. 

동요는 아이들의 노래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입을 빌어 어린 시절에의 그리움, 망각과 상실의 아픔 같은 걸 노래하는 어른들의 노래였다. 바로 어른들의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른들의 이런 그리움들을 어린 아이들이 이해할 턱이 없었다. 그저 '솔솔미파솔 라라솔'이었을 수밖에.

어젯밤 기타를 치다 우연히 흥얼거리던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아 이 노래.. 떨어져 앉아 딴 일을 하던 야채가 같이 노래를 한다. '그속에서 놀던때가 그립습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불렀다하면 바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노래, 고향의 봄. 한동안 그 분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해당화 과꽃 따오기, 그리고 가사만 기억나는 노래들..

점점 몸집이 작아지고, 마음이 한없이 맑아지더니. 
열살박이 남자 아이 하나가 엄마를 무척 보고 싶어한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동요를 참 잘 부르신다. 가사가 가물거릴 때 엄마께 물어보면 엄마는 언제나 가사를 정확히 불러줬다. 몇달전에도 ‘따오기’를 부르다가 중간에 다른 노래와 섞여 헷갈릴 때 바로 엄마께 전활했었다. ‘엄마. 또 헷갈리. 따오기가 중간에 다른 노래하고 섞이는 거 같애.. 다음이 어떻게 되죠?’ 갑자기 중간부터는 모르겠다며 엄마는 따오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부르신다. 내가 부를 때 다른 노래와 섞이던 그 부분에서.. 맞아 맞아 이거였지..

손주들이 아직 어릴 때, 고것들이 집에 와 있으면 엄마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들로 산으로 나가곤 하셨었다. 일요일날 나도 엄마집에 와 있을때 조카들이 조르면 나도 그 길에 같이 나서곤 했었는데 엄마는 들길을 걸으면서 늘 동요를 부르시곤 했었다. 그중엔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곡들이 꽤 많았다. 아 맞아.. 저런 노래가 있었지..

‘엄만 어떻게 그 노래들을 다 기억하고 계셔?’
‘니들 어릴때 불러주던 건데 희한하게 아직도 기억이 나네..’

맞다. 그러고보니 엄마 어린 시절엔 그런 노래들이 없었다. 순전히 우리들 때문에 듣고 외우고 부르셨던 노래들이다. 근데 정작 어렸던 나는 기억이 가물한데 어른이었던 엄마는 가사를 잊지 않고 계신다. 역시 동요는 어른들의 노래다.

‘삼촌 어릴 때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노래예요? 근데 할머니는 기억하시는데 삼촌은 왜 기억 못해요?’
조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글거리면서 날 몰아 세운다. 그러게 말이다..


난 요즈음 옛날을 그리워하며 동요를 부른다.
그때 엄마도 그러셨을거다. 엄마 무릎에서 놀던 쪼그만 아들을 떠올리고 계셨을 거다. 그러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 먹먹해하셨을 거다.

나도 요즈음 그렇다. 나보다 훨씬 커다랗던 엄마가 떠오르며 그리워지기 때문에 동요를 부르면 슬퍼진다. 아니 슬퍼진다는 표현은 좀 틀리다. 그립고 아쉽고 슬프고.. 그렇다.

어제, 엄마의 동요를 부르면서, 엄마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한번도 직접 해 본 적이 없었던 말,
‘엄마,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젤 좋아..’ 


맨날 엄마가 보고 싶지만, 동요를 부르니까 엄마가 더 보고 싶다.
동요는 우리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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