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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아끼다 썩혀버린 장조림

어떤 분이 고맙다며 장조림을 담가서 가져왔다. 물건으로 받은 치료비다.^^  

빙그레 떠오르는 옛날 일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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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근덕이다. 장조림을 각자 한근씩 해오기로 했다. 장조림이 가득 담긴 네개의 커피병을 각자 배낭에서 꺼내면서의 그 뿌듯함. 이렇게나 많지만 그래도 아껴 먹어야 한다.

근데 이거 어디나 놓지? 먼저 다녀간 팀들이 남겨놓고간 된장 고추장 밑반찬들로 찬장은 만원이다. 눈에 너무 잘 띄면 자꾸 먹고 싶어 지니까 안쪽에 넣어두자. 근데 이거 이렇게 더운데 그냥 둬도 안 상할라나? 장조림 상하는 거 너 봤냐? 한번도 못 본거 같다.

도착한 첫날 저녁이니만큼 고때만큼은 특별히 각자 한 덩어리씩 먹기로 했다. 칼로 잘게 썰기전의 그 덩어리. 집집마다 씨알의 편차가 커서 공평하게 한 병에서 네개의 덩어리를 꺼냈다. 작은 자두만한 장조림 덩어리를 밥위에 얹어놓고 뜯는 맛이라니.

눈 깜짝할 새에 덩어리가 없어지고.. 한 덩어리 더 먹을까 말까 논쟁을 벌이다 가까스로 참고 눌렀다. 두고두고 아껴 먹어야지 오늘 다 먹으면 안된다. 갯수를 대충 세어보니 한끼에 한덩어릴 꺼내서 넷이 노나 먹으면 얼추 될 것 같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반찬도 거의 없이 밥을 먹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띠바 우리 장조림 있잖아’ 아 맞다. 우리 장조림 있다. 왜 그걸 잊어먹고 있었을까? 첫날 저녁 한덩어리씩 꺼내먹은 후 한번도 안 먹고 있었다. 와아- 탄성이 터지고 보물을 찾은 듯 신나는 마음에 부리나케 찬장에서 병 하날 꺼내와 뚜껑을 열었다.

근데 아뿔싸 온통 속이 하얗다. 어? 이게 뭐지? 이거 상한 거 아냐? 띠바 장조림은 안 상해. 그럼 니가 함 먹어봐라.. 결국 옆 방갈로 아다 어머니께 갔다.

‘완전히 상했다. 버려라.. 어째 한놈도 이거 있는걸 기억 못했냐? 쯔쯔 녀석들 하구는..’
'우쒸- 장조림도 상하나요?..'
'이 더운데 안 상하는 게 어딨어?'

청천벽력. 허탈해서 말이 안 나왔다. 이 아까운 장조림을 입도 못대고 다 버려야 하다니.. 띠바 차라리 첫날 한덩어리씩 더 먹을걸.. 그랬더라면 이렇게 속상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을 잊은 채 상한 장조림만 들여다 보고 있다. 상한 장조림보다도 더 속이 상한다.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아이고 이 장조림 이 장조림..

그러다 갑자기 식사당번을 도맡던 앤초비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이것도 안 보고 모했냐? 맨날 찬장 들여다 보는 셰이가. 아 띠바셰이’
‘머가 어째? 그러는 넌 머했는데?’
‘이 따바넘이 뭘 잘했다고..’
‘띠바넘아 너 여기와서 한게 모있어..쳐먹기밖에 안하는 셰이가’

ㅋㅋㅋ



장조림때문에 속상해서 싸우던, 가난했던 그때가 더 행복했나, 아니면 원하는대로 뭐든지 먹을 수 있게 된 요즘이 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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