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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자연의학 4 - 의학에 대한 그릇된 믿음

의학이라는 이름을 빌어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하는 대체의학들을 경계한다. 검증되지 않은 요법을 소개하며 '기적의..' 따위의 수사를 동원한다면 그것은 따져볼 것도 없이 사기다. 기적을 가져다 주는 치료법은 있을 수 없다.

신앙이라는 것을 한번 보자. 신앙을 가짐에 있어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0. 전단계 (Pre-Stage)
엄마와 같이 자기를 보호해 주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단계.
우리엄마 우리아빠가 세상에서 단연코 최고다.

1. 첫번째 단계, 직관적 투시적 신앙 (Intuitive-Projective Faith)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면서 처음으로 자의식을 키워가는 단계,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죽음과 性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2. 두번째 단계, 신화적 문자적 신앙 (Mythic-Literal Faith)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설화 신화등을 그대로 믿는 단계.
상징과 은유의 의미를 알지 못함으로 싼타할아버지를 믿는다.
유태인의 부족신화와 유태인의 부족신 야훼하나님을 아직도 믿는다.

3. 세번째 단계, 종합적 인습적 신앙 (Synthetic-Conventional Faith)
자기가 문자적으로 믿어오던 신앙의 모순을 드디어 발견하는 단계.
그러나 이렇게 모순을 발견한 자신을 죄악시 여기며 그것을 잠재워줄 외적 권위를 강하게 갈구하게 되며 그렇게 얻은 이데올로기의 설명에 안주하고 만다. 안타까운 단계이다.

4. 네번째 단계, 개성화와 성찰의 신앙 (Individuative-Reflective Faith)
그동안 절대적이라고 믿어왔던 자기의 가치관과 신앙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는 단계.
주변의 신앙동지들로부터 배신, 타락등의 손가락질과 공격을 받는다.

5. 다섯번째 단계, 접속적 신앙 (Conjunctive Faith)
이분법적 양자택일이나 대립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양극의 일치를 받아들이는 단계.
상대방 종교마저도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염원한다.

6. 여섯번째 단계, 보편적 신앙 (Universalizing Faith)
어떠한 외적 걸림이나 편견에 구애받지 않는 완전 자유와 무애의 신앙.
거의 성자의 단계로 이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번째 세번째 단계에서 성숙을 멈춰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단계로 성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경영'하는 성직자들이다. 사람들의 신앙이 네번째 이상의 단계에 접어들면, 스스로 자주적 사고를 가지고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의 신앙적 성숙을 원치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을 기억하게 되고, 내게도 닥칠 그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종교가 시작되었고 의학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종교와 의학은 공통점이 많다. 추종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여섯단계를 거친다는 것과, 사람들에게 공포심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단계에서 성숙이 멈춰버린 사람은 몹시 시끄럽다. 자신들의 믿음과 반하는 그 어떤 것들도 용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을 비판하거나 자신들을 다른길로 회유 하려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의 광적인 믿음은 급기야 폭력적으로 변하고 만다.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한 믿음을 가진 그들은 그렇게 고립되어 가며 그들만의 성안에 깊숙히 갇힌채 오늘도 ‘내 믿음 만세’만을 외친다.

종교에 있어서는 다행히 세번째 단계를 거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비록 네번째 단계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세번째 단계에서 인식한 ‘모순’을 그대로 계속 인정하면서 살게 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탈을 뒤집어 쓴 현대의학은 그렇지 않다. 정보를 완전히 독점, 통제하면서 일반인은 결코 이해하기 힘든 온갖 복잡한 메커니즘을 들먹거리며 사람들이 두번째 단계 이상으로 성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난 3월 첫번째 일요일 20주년 LA 마라톤대회가 열렸었다. 이날 마라톤코스가 속한 길은 일시적으로 교통이 통제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였다. 일요일 예배에 방해를 받는 한인교회들이 주일 헌금액 감소를 걱정해 마라톤 대회개최일자를 토요일로 옮기라는 청원을 시에 내고 공청회를 열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마라톤 대회 요일변경 사유는 예배의 보장이었다. 그러나 똑 같은 한인교회지만 어떤 대형교회에서는 목사가 직접 신도들을 이끌고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여 달리는 예배를 보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격분한 날자변경 주장 교회에서 무시무시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는 타락한 교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마라톤대회 참석을 강행하였을 경우 이후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선 각오하라는 공갈협박성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동안 이들간의 공방전으로 시끄러웠다. 주일성수를 고집하는 이들과 마라톤에 참가하는 이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오로지 단 하나, '어떤 목사에 의해 인도를 받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없었다. 사람들을 신앙의 세번째 네번째 단계로 끌어올려주는 목사와 사람들을 두번째 단계에서 묶어두려는 목사, 단지 그 차이였을 뿐이었다.


미리 말한다. 현대의학이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한 그 눈부신 업적은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의사들마저도 성직자로 우러러 받들며 생명을 맡겨벼리는 경향이 있다. 그게 문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의사들은 지성과 교양이 넘치며 늘 직무에 충실하고 양심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인격자들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기실 아는 게 별로 없고 불성실하고 직무에 태만하며, 부정의료를 태연하게 자행하며, 세상에서 돈을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또 자신의 건강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

그들이 늘 보여주는, 세계 유수의 연구소에서 발표된 실험자료들과 연구자료들은 우리들에게 최음제와도 같다. 그러나 미국 같은 나라에선 얼마든지 돈만 있으면 자기에게 유리한 실험결과를 구할 수 있다고는 어느누구도 생각지 못한다. 더 문제인 것은 의사들 자신들은 전혀 확신하지 않는 것들을.. 환자들이 절대적 진리로 맹신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인 확신과 독단은 무지한 자만의 특권이다. 과학적인 학문인 의학의 진리는 전문가인 의사들만 알고, 또 그들을 선택하여 치료받는 우리들만이 지성을 가진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그 착각과 오만은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특권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의사도 질병을 Cure 할 수 없다.
다만 Care 할 뿐이다.

바닷가 한 귀퉁이에서 바닷물 한바가지 떠보고 바다가 이리생겼네 저리 생겼네, 집 뒷마당에서 흙 한삽 파보고 지구가 이리 생겼네 저리 생겼네 한다면 우리는 그넘을 미친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종교와 의학이라는 범주속에 들어가 그 주술에 걸린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이미 자주적 사고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바다가 이리 생겼네’ 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아가 ‘바다는 너무 넓어 그리해서는 볼 수 없다네’ 하는 충고를 묵살하거나 급기야 충고하는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현대의학은 실로 위대하다. 현대의학이 인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학을 종교의 반열에까지 올려놓고 그 종교의 주술에 빠진 사람들은 기독교의 광신도들보다 더 불행하다.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逆天을 진리라고 세뇌하며 우리들을 두번째단계에 영원히 묶어두고 싶어하는 일부 ‘성직자’들을 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진리와는 멀어질 것이다. 順天者는 存이요, 逆天者는 亡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것보다 훨씬 더 문제인 것은 예수를 그릇되게 믿는 것이다.
현대의학을 신뢰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문제인 것은 현대의학을 그릇되게 맹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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