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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등록금 천만원 시대 4 - 학력 인플레

세렌게티 초원에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증가하면 그것들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의 개체수도 늘어난다. 그러나 마냥 늘어나는 게 아니다. 부지런히 잡아먹어 초식동물이 줄면 육식동물의 개체수도 감소한다. 이렇게 ‘저절로’ 조화와 균형이 맞춰진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는 줄고 공급은 저절로 늘어난다. 그러면 가격은 다시 떨어지게 마련이고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이 줄어들고 수요는 늘어난다. 이 역시 ‘저절로’ 이루어 진다. 먹물에서는 이걸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 이라고 그럴듯하게 얘기했다. 한 경제내 재화의 배분과 가격은 저절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소위 ‘명품’의 경우엔 좀 다르다. 그 절대 독점적 지위엔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비슷한 제품의 공급이 늘어도 특정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면 수요는 더 늘어난다. 이게 명품 마케팅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조화와 균형인 법.. ‘왜곡’되었던 그 배분구조는 곧 균형을 되찾는다. 바로 짝퉁의 등장과 그 작용이다. 짝퉁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그제서야 작용한다. 무서운 대자연의 섭리다. 아무리 단속을 해봐야 사라지지 않던 짝퉁은, 명품의 가격이 내리고 공급이 늘면 그제서야 저절로 없어진다.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자연의 섭리는 그 누구도 거스르지 못한다.


근데.. 이 자연의 섭리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 한군데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의 교육부문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란다고 판단하고 '인위적으로' 공급을 늘린 적이 있었다. 김영삼과 신한국당이다. 근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이렇게 공급을 많이 늘렸는데도 그 이후 수요는 더 많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대학엘 안간 사람'이 그냥 '보통사람'인 세상이었다. 근데 대학이 많아지면서 앞집 개똥이도 뒷집 소똥이도 다 대학엘 가니 나만 안 갔다가는 나 혼자 바보소리 듣게 생겼다. 그래서 등 떠밀려 나도 대학에 가야만 했다. 원래는 대학에 가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이놈 저놈 다 대학엘 가겠다고 나서니 대학가기가 슬슬 어려워졌다. 그랬더니 다행히 정부에서 대학을 팍팍 늘려줬다. 이제 앞동네 뒷동네 통 털어 대학에 안간 애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대학은 이제 대한민국에선 ‘준 의무교육’이 되어버렸다.

대학의 상징성이나 희소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이제 예전에 누리던 ‘대학생’의 떡고물을 좀 먹으려면 그냥 대학만 가지고서는 택도 없다. 적어도 속칭 일류대여야만 한다. 일류대를 나와야만 ‘준의무교육 껄렁이’가 아닌 ‘대학 교육’을 받았다는 징표가 된다. 이러다보니 일류대로 아이들이 몰린다.

예전엔 대학생 60만명에만 끼어 있어도 대학생 소릴 들었는데 이젠 그 대학생이라는 종자가 전국에 360만명이다. 그냥 '대학생인데요'가 먹어줄 리가 없다. 이젠 명문대 '몇만명' 안에 들지 않으면 그냥 ‘시시껄렁한 애’ 소릴 듣는다. 열심히만 공부하면 그런대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일류대가 이젠 ‘하늘에 붙어있는’ 대학이 되어버렸다.

예전처럼 한 집안에 자식이 대여섯 있었다면 까짓거 포기하는 자식이라도 있을텐데 이젠 자식이 많아야 둘인 세상, 하늘이 무너져도 내 자식은 일류대를 보내야 하는 사명감에 이글거린다. 금쪽 같은 내 새끼.. 무슨수를 써서라도 일류대 넣어야지.


대학이란 재화의 공급은 급격하게 늘었지만 오히려 명품(일류대) 재화의 가치는 홀로 치솟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발생했다. 명품의 희소가치가 치솟으면 짝퉁이 나와 시장을 조정하는 법이거늘, 우리나라 교육에 이 짝퉁은 안 통한다. 당연히 움직여야 할 ‘보이지 않는 손’ 은 없다. ‘속보이는 검은 손’에 의해 뎅강 잘려 나갔다. '속보이는 검은 손'? 결코 나누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탐욕이다. 양극화로 기득권이 더 공고해지는 그들의 계산이 '속보이는 검은손'으로 작용하여, 대자연의 섭리인 ‘보이지 않는 손’을 뎅강 잘라버린 것이다. 나라가 절딴나기 전엔 이 검은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하늘에 붙어 있는 일류대를 미리 포기한 학부모들은 이제 외국으로 눈을 돌린다. 기껏 '한국의 일류대 나부랭이'보다는 '미국의 평범한 대학' 졸업장이 더 먹어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학력 인플레와 명품병은 결국 ‘조기유학’ 과 ‘졸업후 유학’ 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게 했다.

그 돈에 그 시간에 그 노력에.. 하지만 유학간 내 아이와 마누라는 돌아올 줄 모르고~ 유학가서 성공한 내 아들은 숨막히는 고국을 마다하고 저 여기서 결혼할래요~ 기대완 달리 끝없이 답답한 일들만 생긴다.


한편, 끝없이 몰려드는 입학 지원자들에 대한민국의 일류대는 쾌재를 부른다. 공급(입학정원)은 일정한데 수요(입학지원자)는 많아 아우성이라면.. 가격은 당연히 오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여기선 아주 즉각 작동한다. 일류대 등록금은 아무리 올려도 문제 없다. 아무리 올려도 수요는 계속 증가한다. 미국 명문대의 일년 등록금은 3~4만불이다. 한국의 네배가까이 된다. 각오해라. 준비해라. 한국의 명문대 등록금, 이렇게 오를 날 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류대가 아닌 다른 대학들의 등록금은 왜 덩달아 올랐을까? 여기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안했다. 학력 인플레때문에 대학교육이 '준의무교육'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해당 연령층의 84% 가 대학생인 나라.. 대학 안 나오면 바보되는 세상이라 안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1 – 등록금이 아깝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2 – 세계에서의 한국대학 위상
→ 등록금 천만원 시대 3 – 대학생이 너무 많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4 – 학력 인플레
→ 등록금 천만원 시대 5 – 기부금과 적립금
→ 등록금 천만원 시대 6 – 대학들도 무한경쟁
→ 등록금 천만원 시대 7 – 순위로 늘어선 미국대학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짜투리 – 미국의 대학 평가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