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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등록금 천만원 시대 6 - 대학들도 무한 돈 경쟁

축제 기간 노천극장에서 쌍쌍 파티가 있는 날, 우린 종이로 만든 썬캡을 떼어다 팔았었다. 하루는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오늘 썬캡장사 땡쳤다. 띠바. 그러나 그때 불현듯 썬캡을 도매로 떼어왔던 곳에 비닐우산도 있었다는 기억을 해냈다. 남은 썬캡을 모조리 들고 가서 그걸 반납하고 그 금액만큼의 비닐우산을 받아왔다. 너무 비싸게 파는게 아닐까 걱정될 가격을 불렀지만 비닐우산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상당한 수익이 났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당시 대학 1학년이던 우리.. 그 공돈을 들고 다같이 대폿집으로 가서 소주를 걸쳤을까, 아니면 그걸 나눠 가졌을까? 우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돈을 들고 또 비닐우산을 사러 뛰어갔다. 그리곤 또 그걸 미친듯이 팔았다. 액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날 우린 꽤 큰 액수의 수익을 올렸었다. 조금 뗴어서 꼬불칠까 하다가 우린 그 돈을 2학년 임원단에게 전부 넘겼다. 1학년들로부터 그 돈을 넘겨받은 2학년 임원단.. 예정에 없던 회식을 했을까? 아니면 회비가 두둑해졌으니 회원들의 다음달 회비를 깎아주거나 면제해 줬을까? 아니다. 모두 회비에 적립했었다.

그 해 가을, 드디어 피아노를 한대 사서 서클룸에 들여 놓았다. 이젠 더 이상 피아노를 찾아 음대 강의실에 숨어들거나 강당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신입생을 모집할 때 당당하게 우리 피아노를 보여줄 수 있었다. 악기하나 없던 꾀죄죄한 서클에서 피아노까지 자체 보유한 럭셔리 써클로 거듭났다. 흥망이 불투명한 조직에서 저금과 투자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 이건 스무살 아이들도 알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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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사립대들의 한해 적립금 증가액은 평균 617억원이었다고 한다. ‘CEO 총장들이 정말 발에 땀나도록 뛰었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얼마나 안 썼으면 저리 쌓였을까..’ 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교육여건 개선에는 전혀 안 쓰고 재단이 그냥 쌓아두기만 하고 있었다고. 앞서 알아본대로 이화여대 5421억원을 필두로 수천억원씩의 적립금으로 쌓아두었으니 등록금이 천만원에 육박하는 이때에 대학의 적립금을 좀 풀어서 등록금 인상요인을 상쇄해야 한다는 주장.. 당연하다.

한편..
바야흐로 세상이 바뀌어 우리나라도 수험생보다 대학입학 정원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다. 수험생은 60만인데 대학입학정원은 65만이란다. 저출산의 여파는 앞으로 이런 역전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드디어 우리나라 대학들도 조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경쟁력이 뛰어나거나 재정이 튼튼한 학교는 버텨날 것이고, 밋밋하거나 재정이 빈약한 학교는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은 학생들의 등록금인데 지방 사립대의 경우 신입생 등록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단다. 등록금 수입이 줄어 재정이 악화되어 투자가 줄면 교육여건이 악화되어 신입생은 더 줄어들고.. 그래서 할 수없이 등록금을 올리면 재학생들마저 편입을 통해 다른 대학으로 빠져 나간다. 이런 학교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서울의 사립대들, 아직은 학생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러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대학 구조조정으로 입학정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 추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FTA로 교육시장이 개방될 경우 국내 대학교육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지금 누리고 있는 절대적 지위를 그때까지도 계속 누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학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게 있다. 바로 대학간의 돈 싸움이다.


요즈음 한국의 4대 종합병원은 아산병원,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이라고 한다. 직접 가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병원의 시설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라고 한다. 호텔 같은 시설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아산병원은 현대의 자본, 삼성병원은 삼성의 자본이 들어온 결과다. 돈의 힘이다. 근데 여기서 눈여겨 볼 게 있다. 돈들여 병원을 키워놓으니 덩달아 학교까지 상승했다는 점이다. 바로 아산병원의 울산의대와 삼성병원의 성균관대이다. 

대학도 이미 자본이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금만 뒷받침되면 투자를 통해 언제라도 수직 상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걸 바꿔말하면 아무리 지금은 명문대라 할지라도 투자에 소홀히 했다간 언제 어떻게 추락할 지 모른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몇십년 쌓아온 명성인데 우리가 추락해?’ 이건 자멸의 전주곡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학들의 역사가 짧은 나라에선 아직 대학의 명성이란 것 자체가 형성되기 이전이라고 봐야한다. 

첨단시설과 우수한 교수진, 쾌적한 환경, 전폭적인 장학제도로 무장한 학교가 나타나면 서열은 금새 뒤바뀐다. 명문의 수식어를 얻느냐 잃느냐는 이제 앞으로의 돈 싸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수한 교수를 초빙하려해도, 첨단 실험기자재를 들여놓을래도, 쾌적한 건물을 지으려해도, 학생들에게 장학혜택을 주려해도.. 이게 다 돈이다.

돈 없어서 투자에 소홀하면 한참 뒤에 있던 대학에 순식간에 추월을 당할 수도 있고, 거대 외국대학들과의 싸움에서 힘한번 못 써보고 무너질 수도 있다. 대학들이 믿을거라곤 이제 돈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마다 앞다퉈 등록금을 올리고 있고, 기부금 모금에 혈안이 되어있고, 적립금을 비축하는 중이다. 불투명한 미래 교육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대학의 적립금은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쌓아두는 생명자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의 등록금을 보전해주기 위해 대학의 적립금을 꺼내 쓰자는 것은 
대학들이 듣기엔,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생활비로 쓰자는 것과 똑 같은 말이다.
배가 고프다고 논밭에 뿌릴 씨앗을 먹자는 얘기와 같은 말이다.


새 정부는 교육분야에서의 자율과 경쟁을 수도 없이 천명했다. 게다가 국민들도 정부의 그 방침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우리 대학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무한 경쟁의 장으로 더더욱 내몰릴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대학들은 앞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아마 십중팔구 미국을 따라갈거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1 – 등록금이 아깝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2 – 세계에서의 한국대학 위상
→ 등록금 천만원 시대 3 – 대학생이 너무 많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4 – 학력 인플레
→ 등록금 천만원 시대 5 – 기부금과 적립금
→ 등록금 천만원 시대 6 – 대학들도 무한경쟁
→ 등록금 천만원 시대 7 – 순위로 늘어선 미국대학들
→ 등록금 천만원 시대 짜투리 – 미국의 대학 평가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