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1. 01:01

돈 떼먹은 중

삼십여년 전, 돈 문제로 힘들어하던 사람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쩨쩨하게스리 공치사로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저도 경제적으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며 갚을 필요없다고 호기를 부렸었기 때문입니다. 몇달후 그가 돈을 갚겠다고 했을때에도 술이나 한잔 사라라고 한번 더 호기를 부렸었습니다. 전형적인 마초 컴플렉스였습니다. 제딴엔 폼나게’ 질렀으니 제가 이걸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진짜 폼나려면 이것조차를 잊어버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이십여년 후 그와 우연히 인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만날때마다 옛날 얘기를 많이 했는데 어느날 제 마음속에서 찌질함이 꿈틀댔습니다. 그가 예전 제 도움을 한번은 언급하며 고마웠었다고 할법도 한데, 단 한번도 그 얘길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슬쩍 옛날 그 일의 언저리를 맴돌며 힌트를 줬습니다. 근데 그래도 그는 아무 말을 안합니다. 따식이 완전히 잊어버린겁니다.


그때 돈 갚겠다고 했을때 차라리 돈을 받을걸 그랬나.. 쩨쩨함이 점입가경입니다애당초 돌려받을 생각자체를 안했던 거긴 했지만 도움 받은 상대가 그 사실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다니 왠지 서운 괘씸.. 마음이 쩨쩨하게 흐르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 무렵 한 중의 얘길 듣고 쩨쩨함을 헛웃음으로 감췄습니다.

 

절을 지으면서 자금문제로 어려워하는 중에게 돈 많은 신도가 돈을 빌려줬답니다. 시주를 한게 아니라 빌려줬다니 이 신도도 좀 쩨쩨합니다. 몇년 후 절이 크게 번창했는데도 중은 도통 돈 갚을 생각을 안하더랍니다. 그래서 신도가 중에게 물었습니다. ‘돈 안 갚냐?’ 중이 대답합니다. ‘갚았잖아황당한 신도가 되묻습니다. ‘언제? 난 받은 적 없는데그러자 중이 이랬답니다. ‘꼭 너한테 갚아야 하냐? 다른 사람에게 갚았다’ 그제서야 신도가 무릎을 치며 깨닫고 머리를 숙였답니다. 

신도의 돈을 떼어먹은 중이 말장난을 하는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신도는 그 일로 뭔가 깨달았다니 좋은 얘기일 겁니다. 근데 뭘 깨달았다는 걸까요? 다신 누구에게 돈 안빌려준다.. 중도 믿지마라.. 돌고 도는게 돈이다.. 공수래공수거.. 나눔과 베품, 사랑과 평화..?  

 

며칠 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던 분이 전화를 해서 드디어 기반을 잡은 거 같다며 기뻐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습니다천성이 진실하고 착한 분입니다. 곧 사람들에게 빌린 돈도 갚을 수 있을 거 같답니다. 누구에게 얼마, 누구에게 얼마.. 근데 제 이름이 안 나옵니다‘어? 이 양반이?’ 


이걸 또 쩨쩨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그분의 상황도 급박했었지만, 공교롭게도 저도 일을 새로 오픈한 상태라 경제적 여유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돈 빌려주는 문제로 아내와 큰 이견을 보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빌려줬던건데 그걸 잊어먹어? 쩨쩨함이 다시 꿈틀댑니다그래서 돈 빌려주던 무렵 언저리에서 힌트를 줬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모릅니다. 잊어먹은 겁니다. 그리 적은 액수도 아닌데 띠바 ㅋ

 

찌질하게 마음이 흐르려고 하는 저를 급히 타일렀습니다.

꼭 너한테 갚아야 하냐? 다른 사람에게 갚아도 되잖아.

 

십몇년전 중의 얘길 들었을때엔 사실 온전히 알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다시한번 새겨보니 세상이 진짜 그랬더군요. 도움을 주고받는 상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도와주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러다 누군가가 절 도와주고.. 이렇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그걸 까맣게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거구요. 지난번엔 그냥 한귀로 흘려보냈었던 중 얘기가 이번엔 진짜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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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샌디에간 2015.03.11 02:41 address edit & del reply

    제 막내동생,
    다니던 개척교회가 자립한다고 계획한 Project(?)에 돈 빌려 줬다가 다 떼었죠.
    목사말이 헌금이라고 생각했다고... 덕분에 아파트까지 빼앗기고.
    마음 독한 제가 대뜸 말했습니다.
    '그것 참 잘 되었네. 걸핏하면 속없이 돈 빌려주고 집어주고 하더니..'
    사는거에 지장이 없을 정도만 빌려주고,
    주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혹 상대가 잊어버려도,떼어 먹어도 그냥 서운하고 말 정도로..
    말만 이러지 저도 매년 한.두번씩 샙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져도 ^^

  2. 동감 2015.03.11 03:40 address edit & del reply

    돈 거래후 신뢰가 더 두터워질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은 드뭅니다. 대부분 소원해지거나 원수지간이 되죠. 오죽 급했으면 나한테까지 돈 얘길 할까 싶어 깊은 고민과 갈등에 빠지는 경우가 있죠. 그럴때 참 난감합니다.

  3. ㅎㅎ 2015.03.11 04:22 address edit & del reply

    인명재처, 처화만사성, 처하태평, 진인사대처명, 회개하라 처국이 가까웠느니라..

  4. 싣니 보이 2015.03.11 13:06 address edit & del reply

    드디어 달관의 경지까지 가셨군요. 조그만 더 노력하시면 가능할것도 같네요. ^^

  5. jeremy 2015.03.12 02:00 address edit & del reply

    다른것도 그렇지만 금전문제에 있어서는 무슨일이 있어도 사모님 말씀을 따르세요^^

  6. 싣니 보이 2015.03.12 08:46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대학교 다닐때 학비가 모자라다던 후배에게 돈을 빌려준적있습니다. 당시한달 하숙비였는데요.
    몇년동안은 당연 못받았고 나중에 그 후배가 취직했음에도 돈을 안갚더군요. 몇번봐도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외국을 가게되고 가끔 한국갔을때 다른친구통해 (그 친구는 제가 빌려준걸 봤거든요) 물어보라고 했는데 기억을 못하더랍니다.

    진짜 궁금합니다. 정말 잊어버린건지 이제와서 그 얘기를 꺼내는게 못마땅한건지.

    전 잊어버렸다는걸 도저히 믿을수 없거든요.

  7. 2015.03.13 00:30 address edit & del reply

    세상을 자기위주로만 보는 후배일 겁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어렵게 대학공부를 마쳤다는 성공신화에 선배의 도움따윈 자리잡을데가 없는거죠. 모든것이 내가 잘나서 내가 잘나서.

  8. 광야에서 2015.03.13 07:35 address edit & del reply

    싣니보이님,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보시(布施)했다고 생각하십시오, 쿨하게~
    그게 현명하게 사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ㅎㅎ

  9. ㅎㅎ 2015.03.13 08:50 address edit & del reply

    아무리 보시했다고 여긴다해도 궁금할거 같은데요. 잊은건지 잊은척 하는건지^^

  10. 싣니 보이 2015.03.13 15:01 address edit & del reply

    받은생각은 별로 없는데요.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네요. ^^
    물론 주면 당근 받아야죠. ㅎㅎ
    그돈으로 술한잔 하면 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