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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Tomales Point & Big Sur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그 희귀한 미국 출장'이란 걸 다녀왔던 친구가 당시 제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말이 좀 험합니다만 그대로 옮기자면 삼천리 금수강산? 조까라 그래..’ 그 친구로 하여금 겁없이 우리나라 금수강산 아니다라고 자조하게 만들었던 곳은 바로 태평양 연안도로’라고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어딘지 몰랐었지만, 지금와서 보니 아마 San Francisco에서 PCH(Pacific Coast Highway)를 타고 LA로 내려오다 ‘Big Sur’ 지역을 봤었던 것 같습니다.

 

태평양 연안도로.. 한번 스쳐간 적은 있었습니다만 그때엔 제대로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태평양 연안 트레일코스중 한곳을 골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두시간쯤 걸리는 곳에 있는 Tomales Point라는 곳입니다태평양 트레일코스중 가장 조용하다고 하며, 좁고 길쭉한 반도라 양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걷는 시간도 적당합니다. 천천히 걸어도 여섯시간이면 충분하답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숙소, 아침에 일어나니 밖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습니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고 출발했습니다. 도시에서 벗어나자마자 숲이 깊어지더니 바다가 가까워지자 그 숲들이 없어지며 초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초원과 바다.. 사람들이 가장 편안해하는 녹색과 파란색이 나란히 있는 겁니다. 과연 눈이 편안합니다. 창을 여니 바다냄새와 풀냄새가 섞여있어 코도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안개가 문제입니다. 점점 짙어져 급기야 일이십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안개비로 바뀌어 유리창에 흘러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오가는 차 거의 없는 시골길이라 위험하기보단 운치가 있어 좋았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차 한대가 서있습니다. 아무도 없을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이미 하이킹을 출발한 팀이 있는겁니다. 이 안개속 이 빗속을.. 우리도 그렇지만 그들도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한동안 차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안개도 옅어졌을때 후다닥 출발했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영영 출발하지 못할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비옷은 아니었지만 우리 옷의 방수기능을 믿었습니다. 곧 안개가 깨끗이 걷힐거라 말하며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안개는 다시 짙어집니다. 어쩌다 아주 잠깐 안개가 걷힐때에만 바다가 잠깐 보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기대했던 푸른색이 아니라 그저 회색빛 바다입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과 푸른 바다를 기대하고 온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회색빛 안개속을 한시간째 걷습니다. 길가다 만난 엘크떼가 마치 판타지 영화속 영물들로 보입니다

아무리 안개비이지만 과연 가랑비에 옷 젖습니다. 제일 먼저 방수바지가 버티질 못합니다. 속에 입은 tights까지 물기가 들어오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안개는 좀 옅어지는데 빗줄기가 오히려 더 굵어집니다. 얼마안가 상체에도 물기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따뜻한 캘리포니아라고 해도 때는 한겨울 1월입니다. 바닷바람속 비내리는 길을 계속 걷는 건 무리였습니다. 반환점 2/3 지점에서 턴했습니다. 돌아오며 서로 위안합니다. 세상 어느 누가 이런 호젓한 안개 바닷길을 걸어보겠어..

다음날 아침, 샌프란시스코 pier에 들를까하다가 포기하고 바로 PCH로 들어섰습니다. 한시간쯤 내려가자 그 옛날 제 친구로 하여금 감히 대한민국 금수강산 아니다라고 외치게 만들었던 곳 Big Sur에 접어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부터 Big Sur다' 하는 표지는 없습니다. 지형을 보고 짐작할 뿐입니다. 학창시절 기억에 아마 이런 지형을 지리 용어로 해식애라고 할겁니다. 산맥이 바다로 직접 맞닿아 바다쪽 끝이 바닷물로 깎인 절벽지형. Big Sur가 바로 이런 해식애 지형입니다

과연 절경입니다. 달리다 차를 세우고 구경하고, 또 달리다 또 세우고 또 구경하고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그러던 중 재밌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Private Beach' 개인 해변입니다. 해변 양쪽이 절벽으로 막혀있고, 진입로가 단 하나밖에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privacy입니다. 바로 그 근처에 절벽 별장도 하나 있었습니다. 소유주가 같은 사람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미국부자들의 스케일과 그들의 낭만적인 디테일에 다시한번 감탄합니다. 우리나라도 바닷가 해변을 이렇게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Big Sur를 벗어나자 편평한 해변길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절경도 아니고 특별한 표지판도 없는데 자동차들이 도로옆에 서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지나치며 보니 몇사람이 바닷가에서 '바위무더기'들을 보고 있습니다. 바위무더기? 그건 바다코끼리들이었습니다. 물개도 바다표범도 바다사자도 아니고 바다코끼리.. 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행운이었습니다. 사람들없이 조용한 곳이라 야생 바다코끼리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지 열한시간만에 LA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여러번 세우고 구경하긴 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5번도로를 탔다면 5시간 반이면 올 수 있었던 길이니 두배가 걸린 셈입니다. 하지만 그 지루한 5번도로를 포기하고 이리로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한시간의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만큼 멋진 길이었습니다.  


PCH 길가에 수도 없이 많은 trail들과 숙소와 식당들이 있었습니다. 절경의 도로를 달리다 차에서 내려 절경의 바닷가 길을 한두시간 걷고, 그리곤 다시 길을 떠나가다가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맥주 한잔 하고.. 이렇게 편안히 여행하기에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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