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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엘캐피탄 맨손등반, 마음으로 보다

지난주 요세미티에 갔다가 어떤 '역사적 순간'을 육안으로 직접 보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화요일 저녁 요세미티 밸리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가던 중 길가에 방송국 차들이 여러대 서있는 걸 봤습니다. .. 아직 성공 못했구나일주일전 TV 뉴스에서 엘캐피탄 맨손등정소식을 들었을때 주말에 끝날거라고 했었는데, 그게 아직 성공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어슴프레 저녁이 되던 무렵이라 아무리 뚫어져라 올려다 봐도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 무렵 호텔을 출발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Yosemite Valley Loop Trail 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시간 반쯤 후 엘캐피탄에 도착했습니다. 올려다보니 비록 작은 점이지만 육안으로도 돌벽에 매달려 있는 그들이 보입니다. 마침 NBC 방송사가 망원 모니터로 보여주고 있길래 그곳에서 한동안 구경했습니다. 정상까지 삼사십미터쯤 남은듯 보였습니다. 젊었을 때 직접 엘캐피탄을 올랐었다는 아저씨 몇명이 주변에 있었는데 그 아저씨들의 수다에 의하면 '저녁때쯤' 정상에 도달할 거랍니다.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일단 그곳을 떠나 가던길을 계속 갔습니다.

(얘네들이 등반가 Tommy의 조카들입니다. 사람들 사이를 자랑스럽게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행운의 조짐이 하나 있었습니다. Trail을 따라 한시간쯤 걷자 흙길과 아스팔트 도로가 만나는 곳이 나타나길래 길 방향을 따라 왼쪽으로 틀었는데.. 순간 개 한마리와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어럽쇼.. 개 주인이 없습니다. 가만보니 그건 개가 아니라 coyote였습니다. 근데 이놈이 도망은 커녕 길을 막고 계속 서있습니다. 그놈쪽으로 발을 슬쩍 움직였는데도 놈은 꼼짝도 안합니다. 대치상태 일이초만에 녀석이 길 건너편으로 도망갑니다. 제 기세에 눌려 도망갔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ranger 차량이 녀석을 몰아내준거였습니다. 차가 떠나자 녀석이 다시 우리쪽으로 건너오길래 잠시 긴장했습니다만 다행히 곧 제 갈길을 가더군요.

요세미티에 사흘있는 동안 ranger 차량을 본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즉 자주보는 차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코요테와 대치를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거짓말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레인저..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타이밍 죽인다. 어쩌면 등반성공도 직접 보겠는데..하지만 별로 많이 기대치는 않았었습니다.

반환점에 이르러 출발지로 돌아오는 남쪽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거기서도 엘캐피탄이 보입니다만 등반가들이 오르고 있는 면(Dawn Wall)은 안 보입니다. 두시간쯤 걷자 그들이 오르고 있는 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을 멈추고 자세히 찾아봤습니다. 오후 햇살덕에 정상부근에 형광색 작은 점이 하나 보입니다. 아직 성공못한 겁니다. 아침에 코요테 레인저 타이밍도 있고해서 '순간'을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로를 변경해 북쪽길 엘캐피탄 아래로 강을 건너갔습니다

아침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방송국 망원렌즈 모니터를 보니 정상에서 불과 일이미터 아래에 형광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매달려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형광색 점을 육안으로 지켜보고 있던중, 그 점이 꼭대기에 이른 듯 하다고 느낀 순간 마침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재빨리 모니터를 보니 그 형광색옷의 사람이 두손을 치켜들고 있었습니다. Tommy Caldwell 이었습니다

사상 최초로 엘캐피탄을 맨손으로 오른 역사적 순간을 '육안'으로 직접 본겁니다. 더 놀라웠던 건 그때가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지 채 1분도 안돼서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기막힌 타이밍이.. 함성을 치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의 역사적인 성공을 축하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기막힌 타이밍’에 대한 자축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십분쯤후, 주황색 점 Kevin Jorgeson이 정상에 오르는 것도 육안으로 봤습니다

군시절, 어떤 돌벽을 로프도 없이 맨손으로 기어오르다가 중간에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는' 위치에 몇분간 매달려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를 이미 훨씬 지난 이후였기 때문에 잠시나마 소름끼치는 공포였습니다. 그 경험 이후,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을 볼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저 미친짓을 왜 해.. 또.. 이왕 하려면 로프없이 하든가' 솔직히 그들을 무시했었습니다. 로프를 사용해서 돌벽을 기어오르는 그 단순무식한 행위자체를 무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엘캐피탄의 이 사람들.. 90도 암벽에 무려 19일간 매달려 있었답니다. 로프도 안전용으로만 썼지 오르는데엔 절대 사용치 않았답니다. 손과 발로만 900미터 넘는 직벽을 19일간 기어 오른겁니다. 

왼쪽이 Tommy Caldwell(38) 오른쪽이 Kevin Jorgeson(30)입니다. 누가 누군지 방송에서 확실히 구분해주지 않아 헷갈렸었습니다. 형광색 옷을 입고 먼저 오른 사람이 왼쪽 Tommy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사진으론 Kevin이 형광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진으로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먼저 오른 형광색이 Tommy이고, 두번째로 오른 주황색(정상에 오른 후엔 형광색 파카를 입고 있음)이 Kevin입니다.

제 오랜 편견이 깨졌습니다. 


비록 한시간 정도였지만 사람이 암벽을 등반하는 모습을 그렇게 열중해서 들여다보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자 비로소 그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곳을 시도하다 그곳이 안되면 곧 옆으로 이동해서 다른 길을 찾더군요. 이걸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한번 미끄러졌다고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로프에 의지해 좀 먼 시선으로 물러나 가까운 눈으론 보이지 않던 돌의 균열과 틈을 찾는것 같았습니다. 길을 찾아 다시 시도하고, 안되면 다시 물러나 다른 길을 찾고, 끝내 길을 찾아 오르고.. 이 행위를 무려 19일동안 반복하며, 하루에 겨우 50미터 정도씩 올랐던 겁니다. 아래 사진의 흰선이 그들이 19일간 올라간 궤적을 표시한 거랍니다.

체력과 기술도 놀라웠지만 그들의 가공할 정신력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돌벽을 기어오르는 미친놈'들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늘을 오르는 인간승리의 표상'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운 좋게도 엘캐피탄 맨손등정의 역사적 현장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본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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