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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샌하신토 실패, 무서운 고산증

얼마전 샌하신토 산에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2,800m정도 되는 곳에서 한두시간정도 걸어다녔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때 고산증을 만만히 봤습니다. 페루 쿠스코의 고도가 그 높이임을 안 후 잉카트레일 고산증 걱정도 전혀 안했습니다. 무릎만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그곳 Mt. San Jacinto(3,302m)를 본격적으로 등산하다가 죽는줄 알았습니다.

 

길이 늦어져서 열시 첫 트램을 놓치고 열한시 트램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세시간 반이 걸린다고 하니 샌하신토 정상에 도착하면 두시반.. 해 지기전에 내려오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했습니다. 그래서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후다닥 출발했습니다. 너무 사람이 없어 호젓하고 무서운 산을 힘차게 올라걷기 십여분.. 몸이 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모래주머니 몇개 매단듯 걸음걸이가 무거웠던 겁니다. 며칠 운동을 쉬어서 그런거라 생각하고 힘내어 걸었습니다. 그런데 숨은 점점 더 가빠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불현듯 고산증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아닐겁니다. 지난번 이곳에서 아무렇지도 않았었으니 말입니다. 꾀가 나서 이런것이니 더 힘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보폭과 속도가 줄어듭니다. 10분걷고 5분쉬기를 반복합니다. 그제서야 그것이 확실히 고산증이란 걸 알았습니다. 앉아 쉬면 아주 조금 나아지긴 합니다만 너무 추워서 쉬는것이 오히려 더 힘듭니다. 그래서 가쁜숨과 두통을 참으며 억지로 걷습니다. 출발한지 두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제 겨우 4분의 1정도 왔습니다. 배낭 때문에 어깨가 너무 아파서 배낭무게도 줄일겸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김밥 세줄, 아내는 두줄.. 저희가 잠깐 미쳤었습니다. 이게 지옥으로 들어가는 사단이었습니다.

 

고산증으로 가뜩이나 힘든데 뱃속에 차가운 김밥이 우루루 들어갔습니다. 호흡은 더욱 가빠지고, 속은 뒤집힐 듯 더부룩하고, 다리는 천근만근.. 가장 힘든건 두통이었습니다. 약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좀 참으면 나아지겠지.. 하지만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표정을 봤는지 하산하던 사람 하나가 알려줍니다. '좀만 힘내. 삼거리까지 15분 남았어'  그가 말한 Wellman’s Divide.. 대략 중간지점입니다. 좋다. 15분 남았다니 일단 거기까진 가서 거기서 결정하자.. 그런데 삼십분을 넘게 걸어도 안나옵니다. 우리 걸음이 이미 정상적인 걸음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십분쯤 걸어서야 겨우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 한쪽에 아내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걸려있다는걸 오늘 알았습니다. 저는 경치사진을 찍는다고 찍은건데..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암튼 그곳에서 아내 얼굴이 샛누렇다는 걸 발견했습니다저도 속이 뒤집히게 불편했는데 아내는 훨씬 더 심했었던 겁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무리일것 같았습니다. 표지판을 확인하니 여태껏 올라온 길 3, 앞으로 정상까지 2.7.. 

겨우 반 왔습니다. 게다가 정상까지는 고바위길만 남았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고도를 낮추면 고산증이 곧 없어지겠지..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이젠 눈까지 침침해지고 다리가 완전 풀려서 자꾸 미끄러집니다. 몇번이나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두통과 구역질은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도 수없이 쉬어야했습니다.

 

내리막길 3마일이 그렇게 멀줄 몰랐습니다. 지옥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해가 거의 질무렵이 되어서야 트램타는 곳에 내려왔는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때 극한의 두통이 몰려왔습니다. 정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습니다. 아내는 참다못해 구토를 했습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케이블카 한대는 그냥 보냈습니다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빨리 밑으로 내려가야 살 수 있다.. 다음 트램을 억지로 타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주차장 우리 차에서 신발을 벗고 뻗었습니다. 삼사십분후 화장실을 가려고 차 밖으로 나왔는데.. 휘청합니다. 움직이는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이 몸으로 LA로 운전해서 돌아가는 건 무리.. 한동안 차안에 더 누워있다가 깜깜한 밤에 간신히 차를 팜스프링스로 끌고 내려와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오늘까지도 두통이 남아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몸이 전체적으로 힘든 시간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고통스런 경험이었습니다. 고산증.. 정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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