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전날 밤 벼락치기 공부 중 너무 졸립다. ‘딱 5분만 자고 다시 공부하자’ 하곤 책상에 엎드렸다. 하지만 곧 화들짝 일어났다. 잘못하다 아침까지 자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때는 이미 아침이었고, 난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 미국생활이 이렇다.
16년째인데도 느낌은 마치 작년쯤 미국에 온듯 하다. ‘과정의 기억’들이 없는거다. 여러 기억들이 점이 되고, 그 점들이 모여 線이 되고 세월이 되는 법인데, 애당초 점들이 없으니 선도 워낙 짧아, 16년 세월이 뭉텅 접혀버린 것이다. 내 인생의 거의 1/3이 그렇게 축지법 쓴듯 흘러가 버렸다. 아니 사라져 버렸다. '잃어버린 16년'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건사고들은 꽤 많았었다. 별의별 사람,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었다. 그런데도 기억이 없다? 있긴 있다. 다만 즐겁지 않았으니 잘 떠올려지지 않는 것일 게다. 이민 초기는 ‘고통’이었고, 그 이후부턴 ‘지독’하기만 했었으니 말이다.
16년전.. 미국에 오자마자 바로 담배를 끊었다. 당시의 기록적인 초고환율로 인해 한국보다 다섯배 가까이 비싼 담배를 도저히 피울 수 없었던 거다. 술 한잔 들어가면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길래 술도 같이 끊었다. 거기에다가 남들은 미국에 와서 시작하는 골프마저 난 미국에 와서 끊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처지에 한가로운 라운딩은 오히려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술 담배 골프만 안한게 아니었다. 이민생활 인간교류의 핵심인 종교활동도 안했다. 시도는 해봤었는데 도저히 생리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이민생활 인간관계형성에 가장 중요한 '술 골프 교회'를 안했으니 인간관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민 4-5년차에 또 한번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관계는 더 좁아져 버려, 소처럼 일하는 것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이 습관으로 굳어져버려 형편이 풀리고 난 이후 지금까지도 난 탈출구를 찾지 않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었다. 게다가 성장을 보여주는 자식마저 없다보니 내 이민생활은 무미건조 그 자체였다.
답답한 미국생활에 본격적으로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던 무렵, 가장 가깝게 가장 자주 연락하며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갑작스런 빈자리는.. 인간관계 거의 없이 지내던 내게 큰 충격이었다. 상실감에 무너져버린 벽 뒤로, 16년동안 깊게 패인 외로움과 그리움이 드러났다.
앞으로 또 한번 축지법같은 16년이 흐르면 칠순이 바로 코앞..ㅎㅎ
혹은 이번에 알았듯.. 16년이 없을 수도 있고..
이래저래 가슴이 철렁한다.^^
더 늦기전에 돌아갈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내 인생 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