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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이사했습니다

에스크로 마감 일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일단 사무실 근처 아파트를 계약하고 지난달 21일 에스크로 날짜에 맞춰 이사를 했다. 갈 곳 없어진 가구들은 그냥 팍팍 나눠줬다.

 

그런데.. 에스크로 마감을 일주일 연기해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래 까짓 거 일주일이야.. 근데 이미 끊어버린 전기 개스 물을 다시 신청해야 한단다. ? 그게 없으면 잔디 풀 나무들이 말라 죽고, 풀장 물이 썩으니.. 알아, 근데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냐고? 나도 피해잔데 당연히 그쪽에서 해야지. 하지만 에스크로 마감 이전까진 집의 관리는 100% 내 책임이란다.

 

그래 일주일만 더 하자. 잔디는 스프링클러를 줄여서 덜 자라게 하면 되고.. 문제는 수영장이다. 화학약품이 없으니 녹조가 난장판이다. 모두 몸으로 때워야 한다. 일주일에 두번 퇴근 후에 가서 노가다를 해야만 했다. 일주일인데 뭐.. 하지만 이후에도 에스크로는 마냥 연기되었다. 또 일주일.. 그리고 나서 또 일주일.. 이제는 짜증보다 불안감이 더 문제였다. 이거 이러다가 다시 이사 들어가야 하는 상황? 지난 넉달간의 그 지리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 숨이 턱 막혀온다. 그렇겐 못할 것 같았다. 만약 그 상황이 오면 위약금 받고 그냥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 살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이 불안하니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닫느라 고생한 ADT, DirecTV.. 새로 열었는데 골치 아픈 Time Warner.. 하지만 모든 스트레스중 최고봉은.. 바이어다. 사과는 커녕 몰상식하게 굴어 나를 급실망시키고 열받게 만든 그. 지금 이 고생이 누구 때문인데..  


복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눈에 띄게 복수를 했다간 거래 자체가 깨질 우려가 있다. 위약금이야 챙기겠지만 결국 내 손해다. 보이지 않는 복수를 찾아야 했다. 방법을 찾았다. 선물로 준다며 놔두고 왔던 내 역작, 미니 Hollywood 싸인을 떼어 가지고 와버린 거다. 그거 없어졌다고 깜짝 놀랄 에이전트에겐 '바람이 심하게 불어 글자 하나가 떨어지면서 쪼개졌길래 지저분해서 다 떼어버린 거'로 얘기했다..

별거 아니었지만 매우 통쾌했다. 때론 이렇게 소심한 복수가 정신 건강에 참 도움이 된다 ㅎㅎ 

이사한 지 한 달이 되어서야 모든 것들이 마무리되고 정리되었다.

 


새 아파트에서의 새 생활.. 

큰 회사에서 새로 지어 직접 관리하는 건물이라 모든 게 세련되고 깨끗하고 편리하다. 그중 가장 환상적인 것은 걸어서 5이라는 점이다. 출퇴근 스트레스가 완전히 없어졌다. 그런데 문제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소음 문제다.. 급하게 구하느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LA에서 교통량이 제일 많은 Wilshire 대로변의 아파트 2층이다. 아파트를 처음 보러 왔을 때엔 낮이었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긴했지만 크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사하고 처음 맞던 밤.. 자동차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오밤중에 웬 차들이 그리 다니는지 첫날은 거의 하얗게 밤을 새웠다. 다음 날부턴 귀마개를 꽂고 잠자리에 들었다.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열흘쯤 지나니 귀가 가려워 도저히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귀 가려운 것 보단 차라리 자동차 소음을 견디는 게 낫겠다 싶어 귀마개를 포기했다. 근데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거 참 대단하다. 버스가 다시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까지는 그런대로 잠을 잔다. 하지만 깊은 잠은 아직 아닌 모양이다. 하루 종일 찌뿌둥한 걸 보면.

 

그리고 좁은 공간 스트레스.. 하우스에 살던 노인들이 은퇴하면서 작은 콘도로 옮겼다가 답답함 때문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길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일하는' 우리에게도 해당할 줄은 몰랐었다. 주말에 정원 일 하러 나가면 워키토키로 통신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이젠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한 시야에 잡히는 작은 공간이다. 하나뿐인 방은 먼젓집 제일 작은 방보다도 작다. 거실과 부엌을 다 합쳐도 먼젓집 부엌보다 작다. 욕실 전체가 먼젓집 안방 욕실의 샤워부스만하다. 발코니는 덱의 1/100도 안된다. 적응하려 애를 쓰고는 있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진 토요일도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놀다 저녁 때 들어간다.

 

그리고 건강 문제.. 불과 한달인데도 몸에 변화를 느낀다. 노가다 바깥 일이 없으니 소파에 뭉개며 TV를 보는 시간이 많다. 당연히 등과 허리가 아프다. 노가다 하며 맘껏 쬐던 햇볕을 거의 보지 못하니 비실비실해 지는 느낌이다. 밤중 코막힘 증상도 다시 나타났다. 일요일 청소기를 돌리면 먼지가 집진통의 거의 반 가까이 찬다. 먼지구뎅이인 것이다. 아무리 에어컨디셔닝을 자주하고 공기청정기를 켜도 그렇다. 첫째 둘째 문제야 곧 적응이 되겠지만 이 건강 문제는 적응 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 



탈출할 그 날을 꿈꾸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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