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팜트리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다. 밖을 내다보니 팜트리의 죽은 이파리가 바람에 날아가려고 한다. 

잠시후 내다보니 날아가고 없다

  

바람에 떨어지는 팜트리 이파리를 보다 그와 비슷할 LA 팜트리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LA 가로수는 팜트리(Palm Trees)가 많다. 명실상부한 LA의 Iconic Tree다. 파란 하늘과 팜트리.. 여기저기 많지만, 팜트리 가로길중 가장 일품은 아마 베벌리힐즈의 길일 것이다. 고급주택들과 어우러진 팜트리들의 행렬은 여행자들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대형 팜트리는 부잣집의 상징이기도 하다. 팜트리가 고급 휴양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부자들이 이걸 많이 심는다. 굉장히 비싸다. 이식이 가능한 대형 팜트리는 한그루에 2만불이 넘는다. 밑둥이 굵은 수종은 5만불짜리도 있다. 아무나 갖다가 심을 수 있는 나무가 아닌 것이다. 

근데 이 팜트리들이 과연 LA 토종일까? 주장이 엇갈린다. 먼저 그렇다는 주장이다. 1920년대 찍힌 LA 인근 오아시스의 모습인데 팜트리가 자생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또 모두 외래종이라는 주장도 있다. 1920년대에 베벌리힐즈에 가로수로 팜트리를 심은 모습인데. 이 나무들 모두 유럽에서 들여와 키운 것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그리 중요한 거 아니니.. 토종 약간과 대부분 외래종인 걸로 결론. 중요하고 놀라운 건.. 1920년대에 이렇게 '도시 조경수'의 개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일찍 깨인 덕에 LA가 지금과 같은 ‘팜트리 도시’가 되었는데.. 근데 요즈음 이게 문제가 많은 모양이다. 

 첫째, 유지관리가 힘들다. 팜트리들은 죽은 이파리들이 웬만해서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붙어 있다. 죽은 이파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팜트리는 미관상 아주 안좋다.

  

그래서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서 이걸 하나하나 잘라줘야 하는데, 키가 삼사십미터씩 되는 팜트리들에서 초대형 이파리들을 정리하는 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그래서 베벌리힐즈 같은 부자 도시는 늘 깨끗하게 정돈되어 휴양지 느낌을 주지만, 가난한 도시들에선 방치되어 흉물이 되기도 하다. 

둘째, 위험하다. 정리되지 못한 이파리들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한두개씩 떨어지기도 하는데, 만약 이걸 정통으로 맞으면 중상을 입기도 한단다. 저 이파리 하나가 성인남자보다도 크다. 물기가 있는것은 부드럽지만 바짝 말라있는 경우엔 그냥 단단한 나무토막이다. 머리에 맞으면 중상이다. 또 팜트리들이 무슨 곰팡이를 퍼뜨린다는데, 이게 하도 독해서 이에 감염된 나무는 100% 죽는단다. 

셋째, 비효율적이다. 팜트리는 이파리가 전혀 무성하지 못하다. 산소공급, 열기흡수, 수분보전, 목재가치.. 비슷한 수령의 활엽수들에 비해 1/7정도의 자연 가치밖에 없다고 한다. 뜨겁고 건조한 LA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LA가 미국 전체에서 제일 공기 나쁜 도시로 꼽히는 가장 큰 원인이 이 팜트리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 

 넷째,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이 나무들이 거의 죽을 때가 되었단다. 팜트리들의 수령이 대개 100년 안팎이라는데 죽고 난 후 뒷처리가 문제다. 워낙 나무가 큰데다가 도로변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뿌리를 그냥 놔둔 채 자르는 수밖에 없다. 가로수는 사라지고 그루터기들만 남는 것이다. 새로운 나무를 심기가 아주 애매한.. LA시에서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한다.

 

LA의 선조들이 도시 조경수의 개념은 일찍 가지고 있으셨지만, 안타깝게도 조경의 개념'만' 있으셨던 것 같다. 100년 후 문제를 전혀 예상치 못하셨으니 말이다. LA의 팜트리들이 1920년대부터 심어지기 시작한 것들이라고 하니, 앞으로 이삼십년 후이면 상당부분의 팜트리들이 죽을 것이다. 밑둥이 잘려진 그루터기들만 남을 것이고, LA의 도로변, 특히 헐리웃지역과 베벌리힐즈 지역의 도로는 여러군데 이빨 빠진 듯 공백이 보여 흉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다른 나무들을 심기 위해 팜트리 뿌리를 캐내려고 한다면.. 도로 포장도 일시적으로 걷어내었다가 뿌리를 캐낸 후 도로를 새로 깔아야 할 것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휴양지 필 낸다고 선조들이 심으신 팜트리들이 후배들에게 엄청난 골칫거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바람에 날아가는 팜트리 이파리를 보다가 별걸 다 생각해봤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