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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미국 시골에서 만난 중국집

이십여년 전, 요르단의 황무지 유전개발 현장에서 일주일 머무르던 때다. 툭하면 모래 폭풍이 몰아치던 황량했던 땅..

첫날 아침, 함밥집에 가보니 메뉴는 '양고기'였다.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희한한 맛이라 열두어명 일행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점심때에 가보니 또 양고기였다. 또 맛있게 먹었다. 저녁때에도 또 양고기였다. 그 다음날도 양고기, 그 담날도 또 양고기.. 일주일 내내 메뉴는 딱 한가지, 양고기였다.

이삼일째 접어들자 함밤집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 낙오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서울서 가져온 라면 두어박스는 피튀기는 경쟁속에 금세 동이나 버렸다. 황무지 복판에서 한국인들은 생존을 위해 과일과 야채, 쥬스로 근근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딱 두명 있었으니.. 단 한끼도 거르지 않고 함밥집에 나타나 양고기를 먹으며 쟤네들 왜 저래?’하던 두 남자.. 그 중의 하나가 나다.

 

중동지방의 이상한 향료로 요리한 것이다 보니 냄새가 좀 나긴 했다. 하지만 난 일주일 내내 그 양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이 김치를 그리워하며 절규할때에도 난 함밥집의 이상한 야채샐러드를 먹으면서 그들을 비웃었었다. '따식덜 촌스럽긴..' 내 식성은 이 정도로 글로벌하게 강력했었다.^^

 

 

미국에 산지도 꽤 되었으니, 남들이 나를 보면 어느 정도 미국문화에 적응하고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식성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젊은 시절 그렇게 강력했던 글로벌 식성이 미국에 오래 살면서 오히려 완벽한 한국토종이 되어버린 것이다. 천만 다행인건.. 부부가 똑 같아져서 구박받지 않고 산다는 점이다. 이번 워싱턴주 여행은 '은퇴하고 살만한 곳'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 한국토종 식성때문에 지역선택의 첫번째 조건은 '한인마켓이 한시간 이내 거리일 것'이었다.^^ 


이번 여행 길.. 아침은 그냥 호텔에서 먹는다. 숙박비에 포함된데다가^^ 가벼워서 먹을만 하니까. 그리곤 출발하기 전 주유소보다 먼저 한인마켓으로 간다. 점심때 먹을 '김밥'을 사기 위해서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는 자동차 여행을 할 자신이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이름모를 미국의 시골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먹는 김밥의 맛.. 이거 죽인다. 


셋째날이었다. 차를 빌려준 분이 동행을 하겠다고 한다. 여느때처럼 김밥을 사가지고 가자고 할까 하다가 '유난스럽단' 소릴 들을 것 같아 그냥 출발했다. 중간에 큰 도시에 가면 '비장의 음식'이 있으니 굳이 수선을 피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장의 음식이란 바로 '중국음식'을 말한다. 미국의 웬만한 도시엔 중국음식점이 반드시 있다고 봐도 된다. 중국인들.. 정말 대단한 민족이 아닐 수 엄따. 비록 한국식 짬뽕 짜장면은 없지만, 볶음밥이나 국수를 잘 고르면 그런대로 한국음식 먹듯 개운하게 먹을 수 있다. 그날도 이렇게 할 요량이었다.

 

워싱턴주 서부.. 오전에 큰 도시를 하나 지나쳤는데 점심을 먹기엔 시간이 좀 일렀다. 큰 도시가 또 나오겠지.. 하지만 오산이었다. 가도 가도 큰 도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집은커녕 그 흔한 맥도널 햄버거집도 없는 작은 시골 마을들의 연속. 지도를 보니 다행히 Forks라는 큰 도시가 머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조금만 참았다가 저기 가서 중국음식 먹읍시다.. 그렇게 도착한 Forks라는 도시.. 하지만 그 역시 맥도널이 있을까 말까한 작은 도시였다. 지도에 글씨만 컸지.

전날 오랜만에 먹은 소주때문에 속도 느글거리는데.. 낭패였다. 띠바 점심은 할 수없이 미국음식 먹어야겠구만.. 어디로 갈까.. 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글자 金門.. 달리는 자동차라 그냥 스쳐 지나갔을 만큼 아주 작은 글자였는데, 그 작은 글씨가 기적처럼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짱개집이다아!’ 운전을 하던 분이 화들짝 놀란다. 내 고함 소리가 너무 컸단다. 하지만 모두들 입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이 시골마을에서 중국음식점을 만나다니.. 정말 그건 기적이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얘네들은 어떻게 이런데까지..^^ 


안에 들어서니 중국인 주인이 맞는다. 어떤말로 인사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더니 'Hi-'한다. 다행히 내가 중국인처럼 생기진 않은 모양이다. 미국의 시골도시에서 동양인을 만나니 서로 반갑다.^^ 볶음밥과 매콤한 국수를 개운하게 먹었다. fortune cookie의 글귀들이 신기하게도 각자의 생각과 너무 맞아 떨어져서 또 한번 놀라고..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연신 싱글벙글. 역사상 가장 반갑게 만난 중국 음식중의 하나였다.

 

혹시 Rialto Beach를 보러 가셨다가 갑자기 한국 음식이 드시고 싶은 분들.. 

이 식당에 가시기 바랍니다.^^ 워싱턴주 서부 북쪽 도시 Fork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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