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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워싱턴주에 다녀왔습니다

미국 서부의 북쪽 끝 워싱턴주에 갔었습니다. 시애틀 공항에 내리자마자 알싸한 숲의 냄새가 나는 듯, 비록 겨울이라 전형적인 시애틀 날씨 - 아주 우중충한 그런 날씨였었지만 그것도 좋았습니다


그곳에서 하루에 자동차로 약 350마일씩 5일, 총 1,750마일, 대략 3,200 킬로미터를 운전하며 돌아 다녔습니다. 자동차는 아는 분에게 빌린 오래된 X terra였는데.. 탱크를 방불케 하는 엔진소리, 고장난 연료 게이지, 운전석 앞 유리창의 길다란 금.. 아 띠바 그냥 렌터카 빌릴 걸..

 

언제 청소를 했는지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추운 날씨였지만 창문을 열고 히터를 켜고 달려야 했습니다. 앞차 뒷바퀴에서 구정물이 잔뜩 튀었길래 와이퍼와 워셔액으로 닦았는데 워셔액이 없었습니다. 앞 유리창에 회색 페인트칠을 한 셈.. 마침 아찔한 산길이었는데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 언제 기름이 떨어질지 모른다.. 언제 엔진이 터질지 모른다.. 둘째날부터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긴 했었지만, 어쨌든 워싱턴주의 그 아름다운 자연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아주 힘든 자동차 여정이었습니다. 


워싱턴주 시골에서 좀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자가 저희 은퇴 이후 계획입니다.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돌아가는 시기가 훨씬 앞당겨졌었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적은 미리 골라둔 몇몇 시골 지역으로 직접 가서 현실적으로 과연 그곳에 살 수 있겠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직접 현실감을 느껴보는 건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워싱턴주가 자연환경이 뛰어나다 한들 실질적으로 사람 마음이 그곳에 가라 앉지 않으면 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숨막힐 듯 아름다운 워싱턴주였습니다. 시야에 네모를 치면 어디나 그림 엽서였습니다. 눈길 닿는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숲과 산,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강과 바다.. 예전 스위스의 한 시골길에서 받았었던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감탄을 넘어 약이 오르는.. 왜 우리 선조님들은 이런 곳에 자리를 안 잡으시고..ㅋㅋ 가는 곳마다 감탄사.. 집 앞 강에 작은 보트를 띄우고.. wrangler로 산길을 달리고.. samoyed 두마리와 함께 풀밭을 뛰고.. 하지만 모든 감상을 송두리째 깨버리는 어부인의 냉정한 말씀.

 

어쩌다 놀러오는 거하고, 아주 사는 거하곤 완전히 달라..’

사진 윗쪽 조그맣게 보이는 검은 직선이 제 어부인입니다. 시애틀 동북쪽 Skagit River의 어느 강변이었는데.. 와 멋있다~ 가까이 와서 봐라~ 해도 저렇게 안오고 멀리 서있기만 하더군요--:: 사진만큼이나 먼 거리감 배신감--;; 


하지만 지혜롭게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한사람은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걸 싫어하면, 싫어하는 사람의 느낌을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법이것이 결혼생활 22년 동안 얻은 삶의 지혜거든요. LA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어두웠습니다. 오래도록 꿈꿔왔던 길을 잃어버린 상실감 때문인 듯 했습니다

15년간 살고 있는 Los Angeles.. 새파란 하늘따뜻한 날씨많은 자동차,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편안한 우리 집과 편안한 우리 자동차.. 제 터전입니다. 오랜만에 제 차를 운전하니 마치 잔잔한 호수위를 미끌어지는 듯한 그런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하나의 꿈은 접었지만 편안한 이곳에서 다시 다른 곳을 꿈꾸기 시작하면 됩니다. LA의 이 파란 하늘을 다시 좋아하면 됩니다.

 

이래저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새해가 밝았음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요.

넷째날, 우연히 찾아갔었던 북쪽 바닷가(Rialto Beach)의 모습입니다. 스맛폰인데다가 앵글마저 제대로 대지 못해서 전혀 느낌이 표현되지 않고 있는데, 난생 처음 공포감을 느끼게 했던 바다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바닷가로 다가가다가, 쓰러진 나무들 위로 갑자기 나타난 큰 파도를 보고선 너무 놀라서, 바로 뒤로 돌아 너무 놀라지 마라고 경고했을 정도였습니다. 서있는 곳과 바다 사이에 둔턱이 있고 그곳에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데, 바다쪽으로 가까이 감에 따라 둔턱 너머로 갑자기 울렁울렁하는 파도가 보이는 겁니다. 해변엔 새까만 자갈들이 깔려있고. 마치 무슨 지옥의 바닷가같은..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게 후회되었습니다. 정말 멋지고 위압적인 바다였습니다.

노란옷을 입은 조그만 꼬마녀석은 저 곳에서 파도를 뒤집어 썼었는데 그래도 마냥 좋아하더군요. 스맛폰으로 찍은 동영상입니다, 아쉽게도 사진보다도 더 현장 느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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