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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장로에게 제대로 당했다.

장로는 명예로운 직분
미주의 한인교회들, 어찌된 일인지 거의 모든 교인이 ‘집사’ 아니면 ‘권사’다. 그냥 ‘ooo씨’라고 불리우는 걸 몹시 싫어하는 한국적 문화 때문에 그러려는 것이려니 했었다. 서로 집사님, 권사님 부르기 좋으라고. 이건 불교도 마찬가지다. 보살님 거사님..

하지만 '장로'는 별로 없었다. 집사나 권사와는 차원이 많이 다른 듯 했다. 하지만 장로라는 직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목사의 근위병’정도? 그러다가 우연히 장로가 영어로 elder,  한자로는 長老이며 ‘교회에서 존경을 받는 연장자들’인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태생부터 ㈜예수의 세속적 경영자일 수밖에 없는 목사와는 달리, 이 장로라는 직분은 '교인들에 의해 추대’된 사람이니, 틀림없이 도덕적 고결함을 갖춘 분들일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장로의 두가지 기준
근데 생각해 보니 김영삼도 장로고 이명박도 장로다. 이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고결? 하지만 이들이 장로가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교회의 입장에서 야당총재나 현대건설 회장 정도의 ‘사회적 명망’을 갖춘 사람에겐 그에 걸맞게 적절한 예우는 필요하기도 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장로라고 함은 다음 두가지 중의 하나를 갖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째, 도덕적으로 고결하거나
둘째,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분 (도덕적 흠결이 있어도) 


장로를 직접 만나다
‘민나 도로보데쓰 (모두 다 도둑놈)’이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곳, 사기와 협잡 도사들의 집합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 놈 혹시 사기꾼 아닐까?’ 의심부터 해봐야 하는 그런 곳, 바로 LA 한인사회다.

그곳에서 가드너를 구해야만 했다. 세세한 언어적 소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인중에 하날 선택할 수 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업소록을 살피다가 ‘x을 xx’이라는 낭만적 상호를 가진 곳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일었다. 대개 ‘oo조경’이니 ‘xx 랜드 스케이핑’이니 삭막하게 이름을 붙이는데 ‘가을xx’이라 이 얼마나 멋진가. 그래서 연락을 해서 만나기로 했다.

근데 사람을 직접 만나보니 낭만적 상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50대 중반의 아저씨다. 감성도 감각도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게다가 인상마저 별로다. 몇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전형적인 가드너(^^)보다도 하류라는 느낌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건대, 이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였다. 

하지만 일단 만났으니 작업에 대해 설명을 하고 견적이나 내 달라고 하곤 얘기를 마치려는데, 그가 웬 종이를 한 장 건네준다. 받아보니 웬 교회의 '주보'다. 토xx xx교회.. 왜 갑자기 교회 주보를? 자기가 다니는 교회인데 그곳에 가면 공사 샘플을 볼 수 있단다. 그리곤 이 말을 덧붙인다.

‘혹시 어떻게 왔냐고 물으면, ‘강장로’ 소개로 왔다고 그러세요’
‘아.. 장로님이세요?’
‘예 허허’


명망가가 아니니 정직한 사람일 것이다
장로님이시란다. 실물로는 처음 본다. 비록 첫인상으론 '아니올시다'였으나 이분이 교회의 장로님이란다. 설마 장로님까지 되신 분이 교회 주보를 돌리면서 자기가 ‘장로’임을 영업에 이용해 먹을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인상은 별로였지만, 교회의 장로님이라니 일단 ‘정직’한 분일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사회적 명망가'가 확실히 아니니, 장로의 또다른 기준인 '도덕적으로 고결한 사람'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은 좀 못 하더라도 정직한게 더 낫지.. (공사를 진행 해본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민나 도로보데쓰' LA에선 일 잘하고 못하고 보다, 정직하냐 아니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그래서 모든 의구심을 떨치고 그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계약서 같은 건 없이 하신다고 하셔서 장로님이라 믿고 그렇게 했고, 선금과 중도금을 많이 줘야 좋은 나무를 살 수 있다길래 장로님을 믿고 그렇게 했었다.


그 장로에게 제대로 당하다
그동안 살면서 별의별 희한한 놈, 별의별 사기꾼 같은 놈들을 많이 봐왔지만.. 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말종은 처음이다. 내가 본 역대 최강이다. 첫인상으로 봤었던 그 판단이 정확히 맞았던 거였다. '장로'라는 직함에 현혹되어 완전히 눈이 멀었었다.

견적과 다른 물건, 견적과 다른 공사, 견적과 다른 일정.. 하지만 백미는 이거였다. 화가 나면 라티노 일꾼들에게 욕을 하면서 ‘발길질’을 하는 거. 내 눈을 의심했다. 미국땅에서 다른 민족 노동자에게 발길질을? 저놈이 미쳤나? 같은 한국인인게 너무 부끄럽고 일꾼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대신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몇번이나 사과를 했다. 그중의 한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아임오케이, 땡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후로도 이어진 장로님의 악행들.. 정말이지 이렇게 뼈속까지 잡스런 자는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장로님이라길래 믿고 계약서도 없이 선금과 중도금을 준 바람에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한인타운의 숱한 사기꾼들에 단련되어 웬만해선 안 당한다고 자부했었지만, 장로임을 칭하는 반 사기꾼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걸려든 거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 했지만
이 자.. 역시 대충하고 일을 마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자의 모가지를 놔주지 않았었다. 이에 대한 그 자의 반응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쌍욕이 오가는 전쟁이었다. 내 와이프는 몇번이나 그냥 포기하고 다른 사람 찾자고 한다. '똥 밟은 셈'치고 그만 하잰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자의 버르장 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정의사회 구현.. 그래서 이 인간말종을 상대하는 게 정말 싫고 피곤했지만 참고 또 참으며 이 자의 모가지를 계속 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힘에 부쳤다. 한국땅이 아닌 미국에선 어쩔 수없이 이 자를 '설득하고 얼르는' 수밖엔 없었는데.. 하지만 상대는 뼈속까지 사기협잡이 배어있는 인간말종이다. 일평생을 그리 살아오면서 죄책감 자체가 아예 없는 자라 상식적인 대화라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 아무리 인내심을 가지고 바른 말로 대화를 하려해도 결국 욕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인간이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이거밖에 없다. '쑤(sue)해, 법정에서 보자고' 그 복잡한 소송절차를 정말로 진행할 각오가 아니라면, 이런 자를 계속 상대해봐야 내 입만 더러워지고, 정신건강만 나빠진다. 그래서 어제 결국 이 자의 모가지를 놔줬다.


도대체 장로를 어떤 방식으로 뽑길래 이런 자가 장로가 될 수 있는 걸까? 또 어떻게 관리를 하길래 이런 자가 계속 장로직에 머무를 수 있는 걸까? 참 요지경 한인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