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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이방인의 노래 The Boxer 1 - 쓰리핑거에만 관심

중학교 때
싸이먼과 가펑클의 빽판에서 처음 들었다. 난생 처음 음악을 들으면서 '전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목뒤로 소름이 돋으면서 몸서리가 쳐지는 느낌. 어떤 노랫말이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저 ‘권투선수’라는 제목으로 보아 어떤 비장한 인생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만 짐작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이나 가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겐 오직 그 노래 뒤에 깔려있던 기타반주만이 중요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인어이야기’로 겨우 세박자 네박자 뜯기 연습을 하고 있던 때에, 도대체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는 현란한 더박서의 반주는 신기루였다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대학가요제에 남학생 둘이 더박서를 번안해서 출전을 했다. 둘이서 기타를 치고 중간 간주부분에 한넘이 피리를 불고.. 기타를 아주 잘 치고 듣기도 썩 괜찮았다. 그래서 나도 다시 그걸 시도해 봤었다. 예전보다는 그럴듯하게 되지만 대학가요제 나온 대학생들보다 못하고 오리지날하고는 아직 한참 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런대로 오리지날하고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았다. 오리지널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 무렵 친구 하나가 기타 잘 치는 아는 형을 소개해 줬다. 밤무대 통기타 가수.. 그때 그로부터 처음으로 ‘투핑거 주법’이라는 걸 보고 배웠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색하게만 들리던 산울림의 ‘기대어 잠들어버린 아이처럼’ 이 투핑거주법으로 하니 제대로 된다. 그때의 그 희열은 오랫동안 100을 깨지 못하던 골퍼가 원포인트 레슨 하나로 그립을 고쳐잡고 한순간에 100을 깨고 90대 초반으로 진입한 기쁨과 비슷.. 그래서 더박서를 해 봤다. 그러나 이건 잘 안된다. 투핑거에서 쓰리핑거로 해봐도 더박서는 여전히 넘지 못할 산이었다. 

물론 가사도 문제였다. 참 안 외워진다. 가사의 의미를 알고 외우면 좀 나을 것 같아 직접 해석을 해보기도 하고 남이 해놓은걸 찾아보기도 했는데.. 단순한 직역으로는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가난한 소년, 비록 내 얘기가 그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줌밖에 안될 말들.. 그 약속들, 거짓말 그리고 농담들에 대해서 저항할 기력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구. 여전히 사람들은 필요한 것만 듣고 나머지들은 무시해버리지..”

무슨 얘기인가?


90년도쯤, C라 아니라 A
당시 거금 27만원을 주고 큰맘 먹고 12줄짜리 기타를 샀다. 손가락에서 쥐가 나려고 한다. 곧 여섯줄을 빼버렸다. 좋은 기타로 더박서를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 동안 안 되던게 기타 좀 바꿨다고 갑자기 잘될 턱은 없었다.

서점을 뒤져서 더박서 악보를 구했다. 더박서, 근데 이거 놀랍게도 A key로 시작한다. (실제키는 B이다.) 이런걸 그동안 C key로 씨름을 했으니 소리가 비슷하게 나올 턱이 없었다. 그 악보 덕에 key를 A로 잡으니 상당부분 오리지날에 근접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전주부분도 정복했다. 그러나 악보피스 나머지부분들이 너무 부실하다. 여전히 오리지날과는 차이가 많다.


몇년전, A가 아니라 C
몇년 전, 작정을 하고 더박서에 달라붙었다. 한달쯤 팠을까, 제법 되기 시작한다. 상당히 오리지날에 접근한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뭔가가 허전하다. 마침 그 무렵 운 좋게도 TV에서 사이먼과 가펑클의 예전 더박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싸이먼은 C key를 잡고 치고 있었다. 지금 장난들 하시나. C로 하다 안되어서 A로 겨우 바꿔서 그런대로 비슷하게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데 정작 오리지날 본인은 C로 잡고 치고 있다니..

다행히 카메라가 그의 손을 자주 비춰준다. 그래서 그의 운지와 주법을 자세히 봤는데 기타소리는 그의 연주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렇구나.. 혼자 치는 소리가 아니었던게다. 어디선가 한넘은 한음 올린 A key로 치고 있고, 사이먼은 한음 내린C key로 치는 거 같았다. 그 둘을 합친게 더박서의 반주였던 거였으니 몇십년을 따라하려고 했어도 늘 허전했었던 거다. C로 잡고 치면 제대로 나오는 소리가 있지만 뭔가 빠지는 소리가 있고, A로 잡고 칠 때도 역시 마찬가지.. 이랬던 거다.


가사를 들여다 보다
기타반주에서 집착을 떼어 버리자 그제서야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 근데 참 이상하다. 내가 예전에 부르던 그 가사가 아니다. 내가 영어가 좀 늘어 의역을 해서 그런지 노랫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혀 다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에선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한다. 이거 웬일일까?

"I am just a poor boy though my story is seldom told. I have squandered my resistance for a pocketful of mumbles such are promises, all lies, and jest. 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When I left my home and my family I was no more than a boy. In the company of strangers, in the quiet of a railway station, running scared, laying low, seeking out the poorer quarters where the ragged people go, looking for the places only they would know. Asking only workman's wages I come looking for a job, but I get no offers, just a "come on" from the whores on Seventh Avenue. I do declare there were times when I was so lonesome I took some comfort there. Then I'm laying out my winter clothes and wishing I was gone, Going home where the New York City winters aren't bleeding me, leading me, going home. In the clearing stands, a boxer and a fighter by his trade and he carries the reminders of every glove that laid him down or cut him till he cried out in his anger and his shame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기타를 내려놓으니 그제서야 노랫말이 보이고, 그 노랫말 안에 바로 내 이야기가 있었던 거다.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보자..


→ 이방인의 노래 1 - 쓰리핑거에만 관심
→ 이방인의 노래 2 - 마음으로 듣기
→ 이방인의 노래 3 - 더박서 기타연주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