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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좌파척결' 빌미를 주는 후진적 시위문화

1980 년대 
굵은 선이 강조된 민중화, 그리고 학교의 이름과 구호가 쓰여진 ‘큰 깃발’들이 휘날리고, ‘독재타도’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독재타도 독재타도 독재타도’ 구호를 삼창한다. 그리곤 ‘한복’을 걸친 사람의 선창으로 ‘흔들리지 않게’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 그리곤 거리로 뛰쳐나가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쏘는 전경들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가전투를 벌인다.


단체의 이름이 적힌 큰 깃발들은 ‘봐라 우리가 이 만큼이나 많이 왔다' 를 알려 소속감을 고취시키고 타인들과의 동류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다. 땀 흘리지 않는 자본가와 달리 땀 흘리는 노동자는 머리띠를 한다. 머리에 동여맨 붉은띠는 노동자들의 표상이었다. 손짓과 구호는 모여든 노동자들의 분노를 하나로 결집시켜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었다. 삭발과 한복은 결연한 의지와 애국애족의 표현이었다. 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해도 그것만이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그것을 존중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가고 김영삼과 김대중도 가고 그리고 노무현도 갔다.
강산이 거의 세번 바뀌었다.


2009 년
섬뜩한 구호와 손과 발을 크게 그린 민중화, 그리고 단체의 이름이 쓰여진 ‘큰 깃발’들이 휘날리고, ‘단결투쟁’이라고 쓰여진 ‘빨간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조끼나 잠바’를 입고 다리를 벌린채 서서, ‘삭발’한 사람의 선창에 따라 주먹을 허공에 ‘끊어진 필름처럼’ 찌르며 ‘oo 하라 oo 하라 oo 하라’ 구호를 삼창한다. 그리곤 ‘한복’을 걸친 사람의 선창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장엄하게 제창한다. 그리곤 거리로 뛰쳐나가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화염병과 최루탄만 없지1980년대와 거의 똑같다. 세월은 30년이 흘러 강산이 다 변했는데 시위대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 당연히 대중들과 멀어졌다. 사회에서 ‘고립된 섬’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이걸 모른다. 행태로만 본다면 보수도 이런 보수가 없다. 수구도 이런 수구가 없다. 이런 모습들.. 이젠 지긋지긋하다. 아니 소름이 끼친다. 그들이 그렇게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입장을 이해하기보단 넌덜머리부터 난다.

전투적인 이런 시위문화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평화적으로 촛불시위나 문화제를 여는 현장에도 이 시위문화는 나타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깃발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을 해도, 머리띠를 풀라고 부탁을 해도, 평화와 질서를 지켜달라고 요구를 해도 이들은 듣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깃발에 시뻘건 머리띠를 두르고 확성기로 선창을 하면서 주먹질 구호 삼창을 유도한다. 그리곤 무의미하게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다.


아집과 관성과 독선과 오만의 시위문화
사람들은 이런 시위를 보며 '왜 깃발을 들고 난리야? 왜 띠를 두르고 자빠졌어? 왜 구호삼창을 하고 호들갑이야? 왜 길을 막고 지랄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른다. 그건 아집이다. 사용자가 변하지 않았으므로 우리 노동자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은 우물안 청개구리의 아집이다. 어찌 자신은 털끝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남이 변하길 바란다는 것인가. 관성이다. 노동자들의 시위는 이래야만 한다는, 이래야만 그들에게 겁을 줄 수 있는 걸로 아는 무지한 관성이다. 독선과 오만이다. 시민의 불편이나 상인들의 피해, 그리고 대중의 염증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독선과 오만이다

이 아집과 간성과 독선 오만은 약자들의 사회적 연대를 지향한다는 좌파의 취지에서도 한참 벗어난다. 시위문화 하나 못 바꾼 꼴통들이 주장하는 진보와 개혁이 영리한 대중들에게 먹힐 리 없다. 대중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는 조선일보에게 받는 스트레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이런 시위문화는 이제 반국가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극한 시위문화는 국가 이미지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조선일보의 해악은 국내에 머무르지만 이건 국제적으로 뻗어나간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으로 떠올리는 국가 이미지의 1번이 바로 이 무시무시한 전투노조다. 대한민국의 전투노조는 대한민국 전체를 전체적이고 교조적인 폐쇄국가로 인식하게 할 우려가 있다. 국가 브랜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대에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국가 발전에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이런 시위문화는 수구의 빌미
이런 시위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수구들로 하여금 건강한 보혁대립을 좌우이념대결로 모략하게 하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시위문화의 관성에 젖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오늘도 그 시위문화를 그대로 답습한다. 그래야 시위가 되는 줄 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삼창한다. ‘oo 하라 oo 하라 oo 하라’ 그러면 여지 없이 ‘저거 봐 빨갱이 새끼들 맞잖아.’ 를 자초한다.

총을 거꾸로 들고 방아쇠를 당기는 꼴이다. 내가 총에 맞는다. 급소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싸움에 나서는 꼴이다. 시작도 못해보고 급소를 가격당한다. 깊은 구덩이를 파놓고 그 앞에서 선 꼴이다. 상대가 톡 치기만 해도 구덩이로 떨어진다.


멍청한 짓은 이제 그만
죽지 않는 불사조들이 고개를 들고 다시 목청을 높인다. 좌파의 준동으로 국가가 위태하니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단다. 친일을 반공으로 포장하여 목숨을 부지했듯, 독재와 숭미를 애국으로 변장시켜 다시 연명한다. 늘 그랬듯 총궐기하여 좌우 이념전쟁을 또 벌인다. 이 지긋지긋한 좌우대결 동영상은1945년 이후 무려 65년째 재방송중이다.

2009년 재방되는 이념전쟁의 원흉은 물론 조선일보이다. 하지만 또 있다. 그 조선일보에게 큰 힘을 주는 멍청한 자들이다. 조선일보에 넙죽넙죽 빌미를 주는 넌덜머리나는 시위문화다.

깃발
삭발
머리띠
조끼
OO 하라 OO 하라 OO 하라
허공주먹
민중가요제창
도로점거


이젠 제발 좀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