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20년만의 하니브로 엠티 1

공항가는 길은 늘 약간 싱숭하다. 사람을 떠나보내러 가는길이야 당연히 그러하지만 사람을 맞으러 나갈때도 역시 조금은 그러하다. 금요일 늦은 밤인데도 공항은 차와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참 갈곳들도 많다. 띠바 난 LA에 박혀 비행길 타본지도 벌써 오륙년, 공항 냄새맡는 것도 이렇게 사람 데릴러 올 때뿐인데.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위치를 좁혀 한 점을 정했는데도 그곳에 애덜이 없다. 어딨는거야? Arriving은 일층, Departing은 윗층이다. 그렇다면 애덜은 당연히 아랫층에 있어야 한다. 근데 플로리다 팀들은 윗층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댄다. 비행기에서 내려 사람들 따라 가다보면 당연히 아랫층인데.. 이런 애덜 첨 봤다. 역시 ‘기똥’찬 애덜이다. 기혜경과 동대영.

다섯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밥을 안 줬댄다. 엠티 전야제 업된 분위기로 식당대신 한 구이집에서 안주로 끼니를 대신하기로 했다. 돼지갈비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나.. 마침 한쪽에 추억의 마산집 도라무통 테이블도 있다. 디게 반갑더구만. 거기에 앉았다. 반가운 얼굴들이 도라무통에 둘러앉아 옛날 얘기꽃을 피우니 시간도 훌쩍 술병도 훌쩍 비워진다.

같은 학교에, 같은 서클에, 같은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하면서도 서로 놀랍고 신기하다. ‘아니 이 사람이 어떻게 이걸 알지?’ 도통 서로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틈에 살다가 보면 이렇게 나와 과거를 공유하는 사람이 오히려 낯설다. 한국 사시는 분덜 이말이 이해가 되실려나 모르겠다.

오늘은 술을 너무 마시면 안되는데, 탬파 촌년.. 툭하면 ‘자- 원샷!’ 질이다. 날이 바뀌자 바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6월 23일
토요일 일을 마치고 출발준비를 시작하니 시간이 벌써 두시.
‘근데 람보기니 어디갔어?’ ‘인원이 모질라서 그냥 팔아버렸지’ ‘우씨 그거 내껀데’
하나마나한 잡담들. 람보기니가 어딨냐? 그냥 주차장에 서 있던 모르는 찬데.

장보러 갔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남으면 가지고 오면 되지만 모자라면 분위기 깨진다. 그래서 넉넉히 샀다. 술은 어떡하나.. ‘똥’의 고군분투로 결국 술도 넉넉히 담았다. 오징어 사러 갔다가 통북어도 하나 샀다. 귀신타령 늘어놓은 사람들의 악담이 못내 찜찜해서다. 

출발이다. 엠티 출발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저 마냥 좋다. 청량리역 광장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가든, 미국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SUV를 타고 가든, 엠티의 출발은 예나 지금이나 시끌벅적 똑 같다.



가는 내내 차안에서 오징어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오징어를 사자고 고집한 기데보라, ‘난 하나도 안 나는데..’ 썩을년.. 가서 오징어 얼마나 먹나 보자.

잠을 못자 피곤 할만도 한데 피곤한 기색들도 없다. 미국생활에서 뭐 그리 참았던 말들이 많은지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그렇게 달리길 한시간.. 왼쪽으로 누런 색 민둥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우리가 가는 길이 그쪽으로 향해져 있다. 이제부터 산길을 따라 한시간을 더 가야 한다. ‘미시령에 굴이 생겨서 이젠 몇십분만에 고성으로 간다더라, 어떤 언덕이 젤 멋있냐 하면.. 진고개가 제일이야.’ 산길로 가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강원도 얘기가 나온다. 그렇지.. 한국의 강원도.. 거기가 제일이지. 암.

미시령보다 더 심하게 꼬불거리는 일차선 길. 악명이 자자한 엘에이 지역 운전자들, 그런 꼬불거리는 길에서도 속도를 좀처럼 줄이지 않는다. 그 흐름을 쫓아가다보니 자연히 뒷좌석에선 멀미를 한다. 드디어 한 아짐이 길다란 침묵에 빠진다. 멀미가 심한 모양이다. 괜찮냐고 묻는데 괜찮댄다. 그래서 그냥 계속 가기로 했다. 7000FT에 오르자 드디어 오르막이 끝나고 자잘하게 오르고 내리길 반복한다.

꽁무니에 보트를 달고 달리는 차가 없더라면 과연 이길 끝에 호수가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산길. 요 모퉁일 돌면.. 저 모퉁일 돌면 나올거야. 하지만 산정호수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눈 앞에 드러난 호수. 와-하기가 무섭게 길은 오른쪽으로 꺾여 호수는 시야에서 없어지고 만다. 띠바 호수 어디갔어? 가는 길에 힐끗힐끗 왼쪽으로 호수가 보인다. 2000미터가 훨씬 넘는 이 높은 산 위에 있는 호수가 넓어바야 을매나 넓겠노. 하지만 꽤 오랫동안 달리는데도 왼쪽엔 계속 호수가 있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산정호수보다는 몇배는 더 넓을 듯 하다.


높은 산에 호수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호수주변으로 이렇게 큰 마을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겨울철 스키장으로 유명한 이곳 빅베어 마운틴, 길 주변은 온통 스키와 관련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모두들 한국에서의 스키장 생각으로 잠시 촉촉해진다. 우리만큼이나 스키장에서 꽤 죽때렸었다는 플로리다팀. 거의 일년내내 여름인 남쪽 땅에서 온 얘네 촌놈들은 이 ‘스키’ 라는 단어를 도대체 얼마만에 떠올려 보는걸까.

‘올 겨울에 스키타러 함 오지?’ 대답으로 한숨만 돌아온다. 

가게며 식당이며 술집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듬성듬성 모여있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의 온 것 같다. 꾸불꾸불 좁은길을 따라 올라가자 드디어 우리가 찾던 곳 ‘작은곰의 안식처’가 눈앞에 나타났다.



띠바 귀곡산장 아니다. 통북어 괜히 사왔다.

집안 인테리어들, 참 예쁘게 잘해놨다. 모든게 '곰' 컨셉이다. 곰 인형에 액자에..모든게 곰과 관련이 있는 인테리어들이다. 벽난로옆에 땔나무 더미가 큰 더미로 아홉덩어리나 있다. Medium(6 bundles)으로 할걸 괜히 Jumbo로 했다. 이렇게 된거 오늘밤 원 없이 모닥불을 피워보리라.


세간살이가 없는 게 없다. 부엌도 완벽하고 세탁기 건조기 진공청소기까지 있다. 먹을 것만 있으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퍼지게 시다 가면 되겠다. 슬쩍 가져갈만한 물건을 찾는다고 ‘똥’이 혈안이다. 집어가기만 해봐라, 절딴을 낼 테니.. 계약서는 내 이름이다. 내가 저놈을 아무래도 잘 감시해야 한다.

저녁 준비합시다. 근데 바비큐 그릴용 차콜(조개탄)과 불 붙이는 기름을 깜박하고 안사왔다. 어떡하나 그냥 나무로 불을 피워서 거기다 구워먹어야 하나.. 아니면 마을로 다시 내려가야 하나.. 찰나, 훔쳐갈 거 없을까 집안을 뒤지던 ‘똥’이 사람들이 쓰다 남겨두고 간 차콜과 오일을 찾아냈다. 똥이 큰거 하나 해냈다. 쓸모가 있다.

똥이 그릴을 펼치고 불을 피우고, 나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기로 했는데.. 작은 나무들이 전혀 없고 모두가 다 넓적다리 만한 큰 덩어리들 뿐이다. 종이를 암만 갔다 대어봐야 저렇게 굵은 통나무에 불을 붙일 재간이 없다. 할 수 없이 장작을 패야 한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도끼가 없다. 아니 다른 건 다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집에 왜 도끼가 없을까..

불현듯 머리에 스친다. 귀곡산장..
모든 게 다 있는데 도끼만 없다? 혹시 무슨 사연이?..

아무리 불장난의 명수라지만 밑불 없이 굵은 통나무에 불을 붙일 수는 없다. 그래서 집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무조각들을 모았다. 종이를 꾸겨서 쇠 받침대 밑에 넣고 가느다란 가지들을 세우고 불을 붙이고, 쇠창살 위에 통나무를 얹었다. 통나무 겉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그러나 은근한 밑불이 없으니 몇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사그러지려 한다. 쉴새없이 종이를 구겨 넣으며 불씨를 이어가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바비큐그릴에 불을 붙이다 머리카락을 태워먹은 똥이 그때 들어왔다. 곰 잡으러 갑시다.


근데 아무리 대웅산이라도 이런 곰은 이제 이곳엔 없을거다.


→ 20년만의 하니브로 엠티 1
→ 20년만의 하니브로 엠티 2
→ 20년만의 하니브로 엠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