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세계의 알러지
국회의원 패거리에 대한 알러지처럼 전 국민이 공히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붉은악마’나 국가대표 축구팀에 대해서도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 박주영이 골을 넣고 벌이는 기도세리머니가 일부에게는 감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 국민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이며 폭력이다. 우리팀 골 넣으라고 바라긴 하지만, 그 짓거리가 구역질나서 제발 저넘만은 골을 넣지 못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특정객체에 대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는 알러지도 있고, 대다수에게는 자연스럽지만 유독 자기에게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객체도 있다. 개인의 의식구조나 취향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자아가 강하거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도 그들에게는 '항원'으로 작용하여 그것 때문에 나의 ‘항체’인 극한적인 증오와 분노 같은 것들을 느낀다. ‘쉐이 언젠가는 무르팍 뼈가 부서질거야’ 길 가다가 교통사고로 뒈질거야’.. 이런 저주의 마음과 증오들이다. 이 항체들로 인해 우리몸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로 들어간다.
정신적 알러지 벗어나기
이런 정신적 알러지의 경우엔 의외의 순간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계동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 있었다 치자. 그는 요즈음 그 증상이 완전히 없어졌을 것이다. 박계동이 느끼한 표정으로 룸살롱에서 여자 종업원의 젖가슴을 주무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새낀 이젠 완전히 끝났네..’
그러나 문제들이 언제나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풀리지는 않는다. 나에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이 '최수종' 하나였을땐 그저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최수종 따라 하희라도 재수 없어지고, 걔네들과 친하다는 이재룡 유호정도 싫어지기 시작했는데 웬걸.. 이것들이 계속 잘 나간다. 그러다보니 걔네들을 캐스팅하는 방송국이 싫어지고 그 방송국에 얼굴 내미는 모든 연기자들이 싫어지고.. 급기야 TV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지고, TV를 보는 모든 사람들까지 싫어지기 시작했다면.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겠지만, 이런 지경까지 간다면 이건 내가 채널을 돌리거나 꼴보기 싫은 사람 피해버리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호불호가 너무나 확실해서 뭔가가 한번 싫으면 죽을때까지 영원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을 다독거려 싫어하던 것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그 정도를 누그러뜨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언제부터인가 예전에는 그렇게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던 것들이 그런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났던 증오감은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받아 들이고 그것들과 익숙해 져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사회에 염증을 느낀다고 머리 깎고 암자에 들어가 사회와 완전히 단절할 수 없듯, 우리도 알러지 항원을 회피하기 위해 무균실에 들어가서 격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숨을 통해, 음식을 통해, 물을 통해 밀고 들어오는 항원들을 무슨 수로 회피한단 말인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정신과 육체는 둘이 아니라고 했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만성기침이 전부 정신적인 원인에서 오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상당부분 마음에서 오는 영향도 있지만 지금은 그 얘기가 아니라 메커니즘이 같으니 접근하는 방법도 같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타협해야 한다.
→ 알러지 길들이기 1 – 왜 갑자기 알러지가?
→ 알러지 길들이기 2 – 알러지는 병이 아니다
→ 알러지 길들이기 3 – 타협하기
→ 알러지 길들이기 4 – 익숙해 지는 훈련
국회의원 패거리에 대한 알러지처럼 전 국민이 공히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붉은악마’나 국가대표 축구팀에 대해서도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 박주영이 골을 넣고 벌이는 기도세리머니가 일부에게는 감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 국민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이며 폭력이다. 우리팀 골 넣으라고 바라긴 하지만, 그 짓거리가 구역질나서 제발 저넘만은 골을 넣지 못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특정객체에 대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는 알러지도 있고, 대다수에게는 자연스럽지만 유독 자기에게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객체도 있다. 개인의 의식구조나 취향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자아가 강하거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도 그들에게는 '항원'으로 작용하여 그것 때문에 나의 ‘항체’인 극한적인 증오와 분노 같은 것들을 느낀다. ‘쉐이 언젠가는 무르팍 뼈가 부서질거야’ 길 가다가 교통사고로 뒈질거야’.. 이런 저주의 마음과 증오들이다. 이 항체들로 인해 우리몸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로 들어간다.
정신적 알러지 벗어나기
이런 정신적 알러지의 경우엔 의외의 순간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계동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 있었다 치자. 그는 요즈음 그 증상이 완전히 없어졌을 것이다. 박계동이 느끼한 표정으로 룸살롱에서 여자 종업원의 젖가슴을 주무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새낀 이젠 완전히 끝났네..’
그러나 문제들이 언제나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풀리지는 않는다. 나에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이 '최수종' 하나였을땐 그저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최수종 따라 하희라도 재수 없어지고, 걔네들과 친하다는 이재룡 유호정도 싫어지기 시작했는데 웬걸.. 이것들이 계속 잘 나간다. 그러다보니 걔네들을 캐스팅하는 방송국이 싫어지고 그 방송국에 얼굴 내미는 모든 연기자들이 싫어지고.. 급기야 TV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지고, TV를 보는 모든 사람들까지 싫어지기 시작했다면.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겠지만, 이런 지경까지 간다면 이건 내가 채널을 돌리거나 꼴보기 싫은 사람 피해버리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호불호가 너무나 확실해서 뭔가가 한번 싫으면 죽을때까지 영원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을 다독거려 싫어하던 것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그 정도를 누그러뜨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언제부터인가 예전에는 그렇게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던 것들이 그런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났던 증오감은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받아 들이고 그것들과 익숙해 져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사회에 염증을 느낀다고 머리 깎고 암자에 들어가 사회와 완전히 단절할 수 없듯, 우리도 알러지 항원을 회피하기 위해 무균실에 들어가서 격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숨을 통해, 음식을 통해, 물을 통해 밀고 들어오는 항원들을 무슨 수로 회피한단 말인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정신과 육체는 둘이 아니라고 했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만성기침이 전부 정신적인 원인에서 오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상당부분 마음에서 오는 영향도 있지만 지금은 그 얘기가 아니라 메커니즘이 같으니 접근하는 방법도 같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타협해야 한다.
→ 알러지 길들이기 1 – 왜 갑자기 알러지가?
→ 알러지 길들이기 2 – 알러지는 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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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러지 길들이기 4 – 익숙해 지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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