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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묘지공화국에서 필요한 에코다잉

흔히 ‘망언’으로 취급되는 문제의 책, ‘추한 한국인’에도 사실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 많이 있다. (작년 광복절날 블로그 대공습을 당한 내가 다시 한일간 정서문제를 끄집어 낼 만큼 바보는 아니다. 다른 얘기다.) 그 책의 저자가 한국인 ‘박태혁’이든 한국인으로 위장한 일본인 ‘가세 히데아키’이든 그가 지적한 것중 내가 100% 공감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묘지문제이다. 그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묘지를 가진 나라’이며 ‘묘지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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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평범한 묘지들이 하나씩의 평균면적으로 봤을 때 진짜 세계에서 제일 넓은지, 전국토 중 묘지 비율이 진짜 우리나라가 제일 높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나라의 묘지문제가 심각한 것만은 사실이다. 시골에 가면 어느 동산에나 묘지들이 즐비하고, 도시 근교의 을씨년스런 공동묘지들을 보면 그것들이 전 국토를 뒤덮은 느낌이다. 묘지로 쓰이기 위해 해마다 여의도만한 땅이 잠식되고 있다니 우리가 ‘묘지공화국’이란 오명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죽은 자들을 눕히기 위해 해마다 여의도 면적만큼의 땅이 묘지로 쓰인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무덤의 기원
동물이 죽었다. 짐승이 와서 그 시신을 뜯어먹고, 새들이 와서 쪼아먹고, 남은 찌꺼기는 곤충과 미생물이 먹는다. 이게 자연의 순환원리이며 섭리이다. 짐승이나 새가 없으면 시체들이 통째로 부패하며 병균들이 창궐할 것이고, 벌레나 미생물이 없으면 시체가 썩지 않아 지구는 시체 찌꺼기로 넘쳐날 것이다.

인류의 조상들도 처음엔 그냥 시신을 버렸을 것이다. 그러다 죽은 사람에 대한 ‘禮’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시신을 아무데나 버려 짐승이 뜯어먹게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들은 시신과 짐승의 직접적인 먹잇감이 되는 것을 회피하려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신 위에 돌을 쌓든, 시신을 땅속에 묻고 비석이나 봉분을 위로 올리든 했을 것이다. 시신을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버리되 최대한 예를 갖춰 버린 것이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돌속이나 땅속에 모셔진 시신을 보게 되며, 그 시신이 참혹하게 벌레들에 의해 썩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벌레(미생물)에 의한 썩는 과정에서 돌림병이 돌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시신을 불에 태우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란 것을 전해 들었으나, 그렇게 시신을 불태우는 것이 사람을 한번 더 죽이는 것이라는 오해와 ‘지옥의 불구덩이’라는 몽매한 관념을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시신을 밀폐하여 더 깊숙히 묻고 위에 봉분까지 올려서 그것을 차단하려 했을 것이다. 그것을 ‘백골이 진토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훈육했을 것이다.


무덤에 집착하는 민족
사람이 죽은 걸 혼백(魂魄)이라고 한다. 혼(魂)은 정신이고 백(魄)은 시체이다. 둘의 관계는 '백은 혼의 집'이다. 따라서 죽으면(백이 죽으면) 혼은 당연히 백을 떠난다. 집이 없는데 그곳에 계속 머물 이유가 없다. 혼이 떠난 백은 그저 고깃덩어리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중 일부는 이 혼과 백이 계속 함께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혼이 떠난 백(시신)이 그저 ‘고깃덩어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집이 있어 방도 있고 대문도 있고 지붕도 있다. 죽은 영혼도 똑 같다. 이 죽은 영혼의 집이 묘(墓)이다. 이걸 풍수에서는 음택(陰宅)이라고 한다. 둥글게 솟은 봉분은 지붕이며 백이 들어 있는 관(棺)은 방이다. 산소 둘레의 언덕은 담장이며 산소 앞의 비석은 대문이다. 산소 앞의 당은 마당이 되며 산소 앞의 상석은 손님을 맞이하는 대청이 된다.. 묘지에 백은 그대로 있어도 혼(魂)은 수시로 외출을 한다. 혼은 백을 드나들면서 묘지를 나와 후손들의 일상을 감지하고 집안의 길흉을 관리해준다. 모든 것을 꿈을 통해 후손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백이 누운 자리에 물이 있거나 나무뿌리 벌레들이 들끓으면 이것을 알리려 후손들을 괴롭힌다.]

우리의 조상들이 가졌던 이런 생각들.. 이것이 바로 조상 묘자리를 잘 써야 후손이 편안하다고 주장하는 풍수의 음택이며 전 국토가 묘지로 몸살을 앓는 첫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명당과 흉당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려 드린다. 백이 자기 누운 자리 괴롭다고 혼을 통해 후손에게 하소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백이 깨끗이 썩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이 깨끗하게 썩어 없어졌으면 백이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 백이 괴롭지 않으면 혼이 그걸 알리려 후손들을 괴롭힐 이유도 없다.

죽은 후에도 혼이 백을 드나들기 때문에 그래서 묘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백이 없으면 혼이 그곳에 드나들 이유도 없다는 말이다. 즉, 혼이 제 갈 길을 간다는 말이다.

(물론 조상의 혼을 곁에 두어야 후손들이 보살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백과 흩어진 조상의 혼은 모두 제 갈길을 가셨다. 정상적으로 흙으로 돌아간 백에 남아있는 혼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백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혼은 100% 후손을 괴롭히다가 결국 모두 떠도는 雜神이 된다. 이 잡신에게 다른 분의 이름을 붙이며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즉, 매장을 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소멸된다.
'원'도 없고 '인'도 없다.


나 잘 살려고
이럼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기를 쓰고 명당을 찾아 부모님의 묘를 쓰려는 것은 무슨 고집일까. 세 가지다. 한가지는 부모님께 못한 한을 그걸로라도 풀어 두고두고 자기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묘자리를 잘 써서 조상의 음덕으로 내 인생 편하게 살아보자는 속셈이요, 아니면 순진하게도 오직 매장만이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길이고( 부모님을 화장으로 모셨다고 하면 뭔가 매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아직도 많다.) 그것만이 명절 때 부모님을 찾아 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는 경우이다.

???

전부 자기 좋자고 부모님을 매장하려고 한다. 부모님을 위해 그리 하는게 아니라 자기 좋으라고 그리 한다는 말이다. 원 참..

물론 다른 이유가 또 있긴 있다. 본인이 먼저 묻힌 배우자 옆에 묻히시길 원하시거나, 뜨거운 거 싫으니 화장하지 말고 시원한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거나 하는 경우다. 이건 어쩔 도리가 없겠다. 뜨거워서 싫으니 화장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는 분들.. 의외로 굉장히 많다고 한다. 그래서 땅에 묻어 달라고 한단다. 그러나 과연 땅에 묻히면 시원할까?


땅속에서 살이 썩는다
한두번씩 경험이 있겠지만 고기는 금새 썩는다. 고기 썩는 그 냄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약하다. 혼자 살던 노인이 죽었을 때 그것을 발견하는 것도 다 시체 썩는 냄새 때문이다. 이 썩는다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미생물이 죽은 동물의 시체를 먹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썩는다’는 것을 ‘상한 것 혹은 더러운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걸 싫어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자기가 땅속에 묻히길 원하는 분들은 이걸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 시체가 습하고 어두운 땅속에 묻히면 곧바로 징그런 벌레들이 시체에 몰려 내 살을 뜯어 먹을 것이며, 심하게 냄새가 나면서 더러운 진물이 흐르며 썩어 문드러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매장
썩어 문드러져도 나는 그게 좋다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9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62%가 아직도 매장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일정기간 매장 뒤 납골당 안치 19% 포함)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이길래 뒷일을 생각 못하고 이러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우리의 뿌리깊은 매장선호 문화는 이렇게 무섭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사망하면 화장 뒤 산과 강에 뿌리거나, 납골당에 안치하겠다는 사람이 38%였으나 이 38%라는 수치도 나와 내 배우자의 경우에 그렇지 자신들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다. 부모님도 화장으로 모시겠다는 사람은 이중 절반도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때까지 우리나라 화장율은 22%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죽는 사람 열명중 여덟명은 땅속에 묻히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어 1981년 13.7%였던 화장률이 2003년에는 46.4%로 증가했다고 한다. 열명중 반 가까이가 화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아직 우리 땅중 매년 70만 평의 땅이 묘지화 돼간다.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가 묘지화 되어가고 있다. 산자들이 살아도 좁은 우리 땅을 이미 죽은자들이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토의 묘지화는 자연경관의 훼손뿐만 아니라 산림훼손등에 따른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그게 부모님 편히 쉬게 하는 방법이라고, 그래야 내 마음 편하다고, 명절때 자식들 데리고 갈 산소가 있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린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장 외의 그 어떤 것도 막심한 불효이며 인간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예전에 어떤 젊은 교수 한넘과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매장문화에 대해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넘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하는 말이
‘당연히 매장으로 모셔야죠. 그거 안하면 그게 어디 짐승이지 사람입니까’

소위 대학교수라는 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나를 힘 빠지게 했다.
‘좋다. 네 부모님은 그렇다 치고, 니가 죽으면 어떻게 할래?’
‘당연히 저도 땅에 묻혀야죠. 제 아들이 설마 절 화장하기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형.. 걱정하지 마세요. 백년쯤 지나면 죽는 사람 숫자 줄어들고, 오래된 묘지들은 없어지게 마련이고. 묘지문제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다. 까짓거 아무리 묘지가 늘어나고, 우리 산하가 보기 흉해지고, 자연재해가 좀 있기로서니 백년정도 참고 봐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묘지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 젊은 교수의 말대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줄고 묘지부지가 재활용되어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더 이상 참고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 드디어 몇천년 참아왔던 ‘자연정화’를 시작하는 때일 것이기 때문이다.


에코다잉(Eco-dying)
시신을 화장한 뒤 남은 뼛가루를 산이나 바다에 뿌려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친환경적인 장례를 말한다. 에코다잉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특정 나무밑에 뿌려주는 수목장, 바다에 뿌려주는 해양장, 산이나 동산에 뿌려주는 산골장.. 사람과 자연이 상생한다는 가장 자연적인 이치에 기초해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섭리에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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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묘지공화국 국민 여러분,
깨어있는 우리들이라도 하루 빨리 생각을 바꿔 우리 후손과 지구를 위해 '에코다잉'에 동참할 의향은 혹시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