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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Epitaph] - 그녀를 만나게 되는 신통력

이상한 음악이 하나 있었다.

1. 친구네에서 재미로 도리짓고땡을 치고 있었다. (이팔장이란 이름이 우연히 나온게 아니다. ^^) 마침 그 집에 내가 좋아하던 음악의 귀한 LP판이 있었기 때문에(이 음반이 없는 음악다방도 있었는데 이 집엔 있었다) 이게 웬떡이냐 품질좋은 오디오로 그 음악을 계속 틀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름과는 아예 인연이 없는 내가 그날만큼은 계속 돈을 딴다. 친구들이 생각해도 이상했나 보다. ‘아무래도 저쉐이 저 음악을 계속 트는게 수상하다. 듣기도 싫은데 음악을 끄자’ 한 놈이 그 음악을 꺼버렸다. 그러자 정말 내 끗발이 죽어버렸다. 한동안 잃기만 하다가 슬그머니 음악을 다시 틀었다. 끗발이 다시 붙기 시작한다. 결국 그 음악을 트네 끄네 실랑이를 계속 해야만 했었다. ‘음악 때문에 끗발이 붙고 떨어진다는게 말이 되냐’ 근데.. 그날은 진짜로 그랬었다. 이 음악은 내게 돈을 불러다 주었었다.


2-1. 우리집 앞 84번 버스의 반대쪽 종점은 화계사입구였다. 그곳 어디에 그녀가 산다고 했었다. 둘째 이모 댁이 바로 그 근처라 어느날 이모댁에 갔다가 화계사 입구쪽으로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었는데 마침 정류장 앞 레코드방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온다. 웅장한건지 스산한거지.. 이상스런 전주부분.. '이 노래를 이렇게 우연하게도 다 듣네..' 생각하며 그 노래가 끝날때까지 서서 그 음악을 듣고 있는 찰나.. 거짓말처럼 그녀가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어? 나 만나러 온거야?’ 사실 이모댁에 왔다가 우연히 한정거장 걸어 올라오고 우연히 그 음악이 나와서 그걸 끝까지 듣느라 서 있었던 건데.. 그녀가 워낙 반색을 하자 난 그냥 엉겁결에 싱긋 웃고 말았다. 꼭 진짜 그래서 그랬던 것처럼. ‘어? 좋아한다던 이 음악 나오고 있었네.. 이 음악 듣고 있었어?’ 아무것도 아닌 그 사건으로 인해 난 그녀와 아주 각별한 인연들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 음악에 신통력이 조금 있는 듯 했다.


3-1. 대학 1학년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를 소개받았다. 근데 띠바.. 상당히 괜찮다. 앤초비 정말 고맙다. 니가 못먹을 감, 안 찔르고 그대로 내게 주다니.. 여자친구와 히히덕 거리면서 같이댕기는 남자들을 가장 한심한 놈으로 여기던 때였는데 그녀를 소개받으면서 내가 변절을 했다. 근데 친구들에겐 뭐라고 해야 하나.. 친구들에겐 비밀로 하고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그날도 종로 2가 3가를 떠나 종각 반대쪽 친구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던 후미진 곳 경양식집 커튼 드리워진 방 안에서.. 그녀와 호젓하게 썰을 풀고 있는데 느닷없이 커튼이 확 젖혀지며 좋지 않은 인상에 후즐근한 군용 야전잠바를 입은 두 남자가 들이닥쳤다.

‘껌 사세요’
‘됐습니다.’
‘그러지 말고 껌하나 팔아주쇼’
‘됐다니까요’
‘아 띠바 껌하나 팔아달라는데 띠바 도또..’
‘머? 띠바 도또? 야 띠바셰이들아 안 산다자너.. 안나가?’

사색이 된 그녀가 사태가 극으로 치닫자 바르르 떨면서 입을 연다.
‘제가 살께요.. 얼마예요?’
‘푸하하하 그냥 차한잔 주심 됨다. 푸하하하’

넙치와 짱구였다. 우리 집에 전화 했다가 내가 종로에 나갔다는 말만 듣고 종로일대를 다 뒤지는 중이었다고 한다. 참 집요한 넘들이다. 평소에 이쪽은 한번도 온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가지.. 그데 이넘들 십분이 넘도록 떠들면서 가지 않는다. 바쁠텐데 그만 가라고 했다. 자기넨 하나도 안 바쁘다면서 괜찮댄다. 누가 니네 걱정했냐.. 또 십분정도가 흘렀다. 빨리 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그래도 꿈쩍도 않는다.
‘요팡이 자꾸 가라고 눈짓을 보내는데 우리 그냥 있어도 되죠?’
‘네 괜찮아요..’
‘거봐 괜찮으시대자너’

또 십분정도가 흘렀다. 여전히 갈 생각들을 안 한다.
‘야 띠바들아 이제 증말 가라’
‘왜 니가 지랄이냐? 숙녀분이 괜찮으시다는데.. 우리 여기 더 있어도 되지요?’
‘잘 모르겠어요..호호’
그제서야 넘들은 일어났다.

넘들이 나가자마자.. 그제서야 조용해지고 음악도 귀에 들어오는데.. 어? 그 음악이 흘러나온다. 웬만해선 이곡 신청하는 사람 없는데, 그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제가 젤 좋아하는 노랩니다. 듣기 어려운 노랜데.. 이거 우리 아주 잘되려고 이런가봅니다. 잘 해봅시다. 우하하하..’ 이 노래 신통력이 진짜 있을까?


3-2. 그녀와 연락이 끊겼다. 늘 그랬듯이 '마초' 싱글이 되었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에서 그 음악이 나온다. ‘허.. 라디오 프로에서 이 음악을 다 듣고..’ 예의 그 음산한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나오고 몽환적 분위기의 짧은 어쿠스틱 기타 간주가 나오던 때.. 뒷통수에 꽂히던 말 ‘오랜만이예요..’ 돌아보았다. 그녀였다. 그녀가 같은 버스 반대쪽에 서 있다가 나를 알아보고 내게로 오면서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헉- 숨이 막힌다. 그녀를 버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숨이 막힌 게 아니라, 이 음악에 너무 놀래서 숨이 막혔다. 기가 막힌다.. 이 노랜 신통력이 있어..


2-2. 89년쯤.. 규팔이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한다. 빌딩앞에서 만났는데 부리나케 택시를 잡는다. ‘야 밥먹자면서 어딜 갈려구?’ ‘대학로 가서 먹자’ 자기 여자친구가 일하는 동네로 가서 같이 먹잰다. 그때만해도 서울시내가 막히지는 않을 때, 광화문에서 대학로까지 5분정도 걸렸다. 규팔이의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경양식집에 들어서다 멈칫했다. ‘어? 이 노래?’ 그랬었다. 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 띠바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려구 저 노래가 나오냐..’ 묘한 기대감이 잠시 일었지만 곧 접어버렸다. 그 노래 약발도 잠깐이지 벌써 흘러간 세월이 얼만데.. 빈자리를 찾아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그때였다. ‘혹시 요팡??’ 누군가가 날 부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세상에나.. 화계사입구의 그녀였다. 미국으로 이민갔다고 했었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름이 쫙 돋는다.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나서가 아니라 그 음악때문이다. 세상에 이럴수가 세상에 이럴수가.. 이런 우연이 한두번도 아니고 벌써 몇번째.. 이건 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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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을 잊고 지내다가 몇 년전 벼르고 벼르던 이 음악의 중간 간주부분을 기타로 딴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연주를 하니 그동안 가졌던 몽환적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진짜로 좋아하는 음악은 따면 안돼..가사를 외워서도 안되고 반주를 따서도 안돼’ 근데 느낌만 사라져버린 게 아니었다. 그 소름끼치도록 신기하던 음악의 신통력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있어서도 안되겠고 바란것도 아니지만 ^^ 

며칠전 밴조와 이별하고 오랜만에 기타를 다시 잡으면서 오랜만에 이 음악의 중간 간주부분을 퉁겨보았다. 그 옛날 몽환의 느낌으로 다가오던 부분.. 그녀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던 그 음악의 그 부분. 물론 신통력은 여전히 없었다. 근데 말이지.. 만약 내가 기타로 간주를 따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음악의 몽환적 느낌이 아직 살아있다면 그 신통력이 아직도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