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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서해안 어느 일관제철소

얕은 바다 끝에 얇은 얼음이 얼어 파도가 밀리면 얼음 조각들이 움직인다. 방조제에서였다.
‘띠바 얼마나 춥길래 바닷물이 다 어냐?’ ‘이상하다..아닌데 오늘 그렇게 추운건 아닌데..’ 얼음이 아닐것 같아서 줏어봤다, 얼음이다. 하도 신기해서 그걸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이상한 겨울 날이 당진 바닷가의 첫날이었다.

그렇게 많은 덤프트럭들이 한꺼번에 오고가는 대장관은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으리. 한적한 바닷가 시골의 비포장길 덤프 트럭들의 행진은 정말 장관이었다. 100여미터 간격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트럭들, 싣고 들어오는 차, 부리고 나가는 차.. 카메라를 들이대는 걸 눈치 챈 기사들이 농담을 던지고 지나간다. ‘야 이 띠바셰이들아 우리 모델료 주냐? 우하하’ 우리도 그들 뒷통수에 질렀다. ‘너처럼 조까치 생긴 셰이들한텐 안 준다 푸하하’ 당연히 못들었겠지만 혹시나 듣고 쫓아올까 반대방향으로 부지런히 달렸다.

무시무시한 트럭들 사이, 꽤나 한참을 가다 보니 드디어 왼쪽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근덕의 바다와는 사뭇 다른 이상한 느낌의 바다였다. 곧 사라질 운명의 바다라서 그랬던가, 그 바다는 어두웠다. 머 이런 이상한 바다가 있나.. 왜 이렇게 음산해.

바다에 섰다. 바람이 매서웠다. 맨 얼굴엔 서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그곳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현장엔 덤프트럭들을 바다쪽으로 유도하는 젊은 직원들이 몇 명 있었다. ‘안 추스니까?’ 입이 얼어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 ‘아니니다. 갠찬스니다’ 그들은 군인처럼 대답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전부 군용 워카를 신고있다. 군대식으로 하지 않음 이짓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키십쇼. 위험합니다’ 무식한 불도저가 사람이 있든 말든 밀어 붙인다.

이런 것을 大役事라고 하는가.. 바다를 막아 뭍을 만들어 내는 초대형 간척공사. 트럭 한두대가 돌더미와 흙을 쏟아붓는 거로는.. 바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 요거 맛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돌더미와 흙더미를 삼켜버린다. ‘저게 바닥에 쌓이긴 합니까? 그냥 쓸려갈 것 같은데..’ 백대 정도가 와서 들이부어봐야 조금 표가 날까 말까 한다네. 그들은 이 지리한 작업을 앞으로도 1년이상 더한다고 한다. 대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솔직히 너무 지루하다고 했다. 일도 힘들지만 수도승이 따로 없다고 했다.

‘서울에서 손님이나 와야 우리도 한잔 하지요’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 허름한 식당에선 술자리가 열렸다. 우리가 내겠다고 해도 굳이 내시네. 교도소 위문간 것도 아닌데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환영을 받았다. 서울사람들이 반갑대나 뭐래나. ‘띠바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는 기쁨조가 되어야 했다. 열심히 일하는 역군들을 위해.

그들은 간척지 바닷가 위에 지어진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여기 따신물은 나오겠죠?’
‘따신 물은 나오지만 좆물도 넘쳐 흘러 나옵니다’

젊은 직원 하나가 제 딴엔 재밌으라고 이렇게 대답을 한건데 자기 부장에게 호되게 욕을 먹었다. 어디 점잖지 못하게 그따위로 말으 하느냐고..

‘저 양반 앞이 무거워서 그러는건데 부장님께서 중심 좀 맞춰 주시죠’
그렇게 겨우 젊은 놈도 구하고 분위기도 구했다.


한달에 한번씩 내려가는 그 바다, 갈 때마다 해안선의 모습이 변해 간다. 항상 카메라를 고정적으로 설치하던 매립지 옆 야트막한 산(간척 이전에는 섬이었었다고 했다)에선 그게 보인다. ‘대한민국 지도를 바꾸는 일이지요’ 진짜로 지도의 해안선이 바뀌는 대작업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영토 확장을 하고 계십니다. 광개토 부장님. 우하하’
내딴엔 멋있게 말을 했는데 바람소리에 묻혀 그가 못 들은것 같다. 대답이 없다. 썰렁했다.

‘여긴 맨날 이렇게 바람이 쎄게 붑니까?’
‘아뇨 이상하게 서울분들 오실때만 쎄게 부네요’

바람은 정말로 매서웠다. 여름에도 매서웠다. 반팔 옷이 추울 정도로 바람은 세차게 몰아쳤다. 그들은 그 바람 쎄고 척박한 곳에서 몇년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대한민국의 영토를 넓히고 있었다. 건설역군.. 박통시대 용어. 이런 분들을 두고 건설역군이라고 하는구나. 그래 건설역군.. 바로 이분들이다. 존경하기로 했다.

하루가 다르게 제철소의 위용은 점점갖추어 지고, 우리도 줄기차게 내려가고..카메라맨이 서너번 바뀌면서 줄기차게 내려갔다. 흐르지 않을 것 같던 그 바닷가에도 세월은 흘렀다.

몇년 후, 드디어 그 아무것도 없던 간척지 그곳에 웅장한 제철소가 일부 들어섰다. 일차공정 준공식 날, 한 일이라곤 없던 나도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것도 없던 어두운 바다의 첫삽부터 꾸준히 보아온 터인가.. 내가 한 일도 아닌데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흰 장갑을 끼고 박수를 치는 말끔한 높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니들이 이곳 매립과 건설의 역사를 알어? 난 다 알어, 쭉 보아왔거든..’



내가 현장 사람들과 소금새우 구워먹으면서, 꼭지가 돌도록 소줏잔 기울이면서.. 조때가리 쳐진 건설역군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것이 몇번인데. 그들의 이루어냄이 내일처럼 자랑스러웠다. 너무 흔하게 써와서 감흥이 별로 없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그 말, 이 말 외에는 그때의 그 사업을 표현할 다른 말은 없었다.

그 기쁜날에도 그 바닷가엔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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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다. 투실투실한 남자하나가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이 제철소의 새 주인이라고 한다.



과연 저 사람이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그위에 공장을 그려내던 건축기사들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에도 수십차례 흙과 돌을 퍼 나르던 덤프트럭 기사들을
바다로 함께 쏟아져 내릴 듯 흙더미를 밀어내던 불도저 기사를
코가 떨어질 듯 매서운 바닷바람 속을 열심히 누비던 젊은 토목기사들을
수천개 파일을 박느라 고막이 얼얼하게 현장을 누비던 머리 희끗한 신사를
그 웅장한 설악호와 집채만한 케이슨에 직접 올라타던 주름진 얼굴의 기사를
제철소 공장을 짓느라 몇 년 몇일을 그곳에서 땀 흘리던 현장 관리자들을
최첨단 고로설비를 들여와 그것이 공장에 올라 서는 걸 보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에서 해외에서 뛰던 자금 관리자들을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올 때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던 현장기술자들을

알기나 할까?

나도 이 사진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뭐랄까 죽 쒀서 개 준 것 같은..
그곳에 모든 땀과 열정을 쏟아 붓고 그곳에 인생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 분들은.. 어떨까?

그곳엔 오늘도 그 매섭던 바람이 불고 있겠다.
그 바람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겠다.